‘21’은 MIT 학생과 교수들이 실제 라스베이거스에서 벌였던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다. 당시 MIT 학생이었던 제프 마가 카메오로 출연했다.
1990년대, 은퇴한 MIT 교수와 그의 제자들은 블랙잭의 확률 법칙을 간파하고 카드 카운팅에 관한 자신들만의 법칙을 만들어 라스베이거스를 제패하겠다고 카지노를 누비고 다녔다. 벤 메즈리치가 쓴 ‘MIT 수학천재들의 라스베이거스 무너뜨리기(Bringing Down the House: The Inside Story of Six M.I.T. Students Who Took Vegas for Millions)’에는 갓 스물의 MIT 공대생들이 수많은 카드의 조합을 간파하며 벌이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카드 게임의 세계와 수백만 달러를 번 그들이 누렸던 방탕함의 극치, 라스베이거스 보안 책임자들과 벌이는 두뇌싸움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영화 ‘21’은 바로 이 MIT 공대생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블랙잭 법칙 간파, 라스베이거스에서 치열한 두뇌싸움
MIT 졸업과 동시에 하버드 의대 입학을 앞둔 수학천재 벤. 그의 뛰어난 수학능력을 탐내는 미키 교수는 비밀리에 활동하는 MIT 블랙잭팀에 가입할 것을 권한다. 하버드 의대 등록금 30만 달러가 절실히 필요했던 벤은 결국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팀에 가입한다.
팀의 리더이자 블랙잭의 허점을 간파한 미키 교수는 최고의 수재들만을 선발해 앞으로 나올 카드와 자신의 승률을 예측할 수 있는 ‘카드 카운팅’ 기술, 그리고 팀의 ‘비밀 암호’를 훈련시킨다. 이윽고 이름과 직업을 위장해 주말마다 라스베이거스로 날아가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이는 MIT 수학천재들. 그들은 가지고 싶은 모든 것을 사고 벌고 싶은 모든 돈을 벌어들이며 카지노의 세계를 평정한다. 그러나 화려한 날은 가고, 카드 카운팅을 단속하는 카지노 측의 베테랑 보안요원 ‘콜’이 이들의 비밀행각을 눈치채면서 벤과 블랙잭팀도 풍전등화의 위기에 봉착하는데….
그러나 영화 ‘21’은 단지 도박영화만은 아니다. 영화 제목 21은 바로 블랙잭의 룰, 즉 딜러에게서 2장의 카드를 받고, 점수의 합계가 21점에 가까운 사람이 이기는 게임의 룰에서 따왔다. 그러나 의미심장하게도 21은 등록금 30만 달러를 벌기 위해 도박판에 뛰어든 주인공 벤의 나이이기도 하다.
즉 스물한 살에 수십만 달러를 벌어들인 이들이 과연 돈벼락의 행운을 도덕적으로 튼실하게 버텨낼 수 있을지. 전도유망한 직장보다 더 짜릿하고 쉽게 돈을 버는 카지노판을 떠날 수 있을지에 대한 미심쩍은 질문이 오히려 영화의 관건이다. 그리고 적어도 원작은 이러한 의문점에 대해 펜티엄급 머리의 천재라도 도박에 팔린 영혼만큼은 메가바이트급 욕망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을 흡인력 있는 스토리로 풀어냈다.
그런데 원작과 달리 영화 ‘21’은 허술한 스릴러 공식과 분칠한 창부 같은 밤의 도시, 라스베이거스 도박판의 눈요기적 볼거리에서 좀처럼 벗어나질 못한다. 거기엔 ‘오션스 11’ 같은 혀를 내두르는 두뇌 플레이와 팀워크도, ‘도신’의 뜨거운 의리도, ‘스팅’의 짜릿한 역전도 자리잡지 못한다. 관객들과의 내기에서 번번이 지는 허술한 반전의 조커 패만이 테이블 밑을 돌아다닐 뿐이다.
문제는 이 영화가 너무 많은 곁가지 이야기에 촉수를 뻗으며 너무 많은 것을 주워 담으려 한다는 것이다. ‘21’은 선망의 대상인 아이비리거들의 생활, 벤과 또 다른 팀 멤버인 질의 러브 스토리, 사악하고 피도 눈물도 없는 미키 교수와 벤의 대결, 한 천재의 성공과 몰락 등 소화되지 않는 여러 이야기를 그저 층층이 쌓아둔다.
너무 많은 욕심 천재에 관한 평범한 이야기
주인공 벤 역의 짐 스터저스(오른쪽)와 학생들을 조종하는미키 교수를 맡은 케빈 스페이시.
반면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에서 뛰어난 노래실력을 뽐냈던 짐 스터저스나 장동건과 함께 ‘런드리 워리어’에 캐스팅돼 화제를 불러일으켰던 케이트 보스워스는 연기에 관한 한 갈 길이 멀어 보인다. 그들의 빈약한 연기는 이들 천재를 박제한 악동으로밖에 묘사하지 못한다.(‘디스터비아’에 출연한 이후 할리우드에서 맹활약 중인 아론 유 특유의 장난기 넘치는 모습은 여전히 반갑다.) 또한 실제 라스베이거스를 접수했던 MIT 공대생으로 이제는 카지노의 도박사로 변신한 제프 마가 블랙잭의 딜러로 카메오 출연하는 장면도 눈여겨볼 만하다.
결국 ‘빌리지 보이스’의 로버트 윌론스키를 비롯한 대다수 평론가들이 ‘시간 버리고 돈 버렸다’며 울분을 삭이지 못한 리뷰를 내놓은 심정도 이해가 가긴 간다. 아직 라스베이거스로의 여행이 요원한 분이라면 ‘오션스 13’을 보시면 될 테고, 도박의 신묘한 손기술을 보고 싶다면 ‘타짜’를 보시면 될 테니 말이다. ‘21’은 카드 카운팅이라는 머릿속의 기술이 시각화되는 그 지점에서 관객들을 설득하는 데 보기 좋게 실패한다. 참으로 아쉬운 한판, 진정 ‘천재에 관한 범인(凡人)의 영화’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