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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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족, 한물갔다’는 말이 초점 빗나간 이유

[돈의 심리] 직업 갖는 데만 족히 10년, ‘경제적 자립’은 더 오래 걸려

  • 최성락 경영학 박사

    입력2026-04-19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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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합쳐서 만든 조어인 ‘파이어족’은 유행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GETTYIMAGES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합쳐서 만든 조어인 ‘파이어족’은 유행으로 치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GETTYIMAGES

    나는 지금 파이어족으로 살고 있다. 따로 수입을 얻는 일을 하지 않고, 이전에 벌어둔 돈으로 살고 있다는 뜻이다. 특별히 일이 있지는 않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 그런데 내가 파이어족이라는 걸 알고 가끔은 이렇게 반응하는 사람이 있다. “파이어족은 이제 유행 지났는데….” 이렇게 파이어족은 유행이 지났다는 말을 지난 1~2년 사이 몇 번은 들었다.

    ‘두쫀쿠’는 지나가지만

    1월 20일 시민들이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를 사려고 서울 종로구 한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다. 뉴스1

    1월 20일 시민들이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를 사려고 서울 종로구 한 가게 앞에 줄을 서 있다. 뉴스1

    확실히 몇 년 전 ‘파이어(Fire)족’ 열풍이 불었다. 경제적 자립(Financial Independence)과 조기 은퇴(Retire Early)를 합쳐서 만든 조어다. 언론이나 온라인에서 파이어족 관련 이야기를 많이 다뤘고, 실제 파이어족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운 뒤 이를 달성하고자 노력하는 사람도 많이 생겼다. 하지만 지금은 파이어족 관련 이야기가 그리 많이 나오지 않는다. 여전히 파이어족을 목표로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이전보다 온라인상에서 분위기가 줄어든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이건 파이어족만이 아니다. 그 전에는 결혼했지만 자녀는 없는 ‘딩크(DINK·Double Income, No Kids)족’이라는 말이 유행한 바 있고, 미래를 대비하기보다 현 소비와 만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족’도 관심의 초점이 됐지만 오래가지는 못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파이어족은 유행이 지났다는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는 얘기다. 

    하지만 파이어족 유행이 지났다는 얘기를 들으면 핀트가 빗나간 것 같다는 느낌이 먼저 든다. 파이어족이 유행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트렌드에 따라 파이어족이 되고 싶어 했다가, 트렌드가 지나가면 파이어족에서 벗어나 일에서 보람을 찾고 하는 식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인가.

    음식이나 여행이라면 트렌드에 민감할 수 있다. 대만식 카스테라, 탕후루, ‘두쫀쿠’(두바이 쫀득 쿠키) 같은 사례다. 유행하는 여행지도 사이판, 베트남, 일본 등으로 계속 달라진다. 문화 영역에서는 얼마든지 유행이 생길 수 있고, 그 유행을 따라 행동한다고 문제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직업 면에서는 선호하는 직업이 달라질 수 있지만, 그렇다고 유행에 휩쓸려 직업을 선택할 수만은 없다. 변호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해서 변호사가 되려 하다가, 연예인이 각광받으니 연예인이 되려 하다가, 올림픽을 보고 누구나 운동선수가 되려고 할 수는 없다는 의미다. 직업에서는 하나를 선택하면 최소한 10년은 몰두해야 한다. 그렇게 하더라도 그 분야에서 성공할지 장담할 수 없다. 유행을 따라가는 가벼운 마음으로 도전했다가는 죽도 밥도 안 된다. 인생을 건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하는 것이다.

    ‘파이어족’ 되기까지 30년

    그러면 파이어족은 음식 같은 것일까, 직업 같은 것일까. 유행에 따라 파이어족을 목표로 삼는 게 가능한 일일까. 혹은 못해도 10년 이상은 지속적으로 추구해야 하는 일일까. 취미 생활이라면 유행을 쫓아도 괜찮다. 하지만 돈을 벌어 생계를 유지하는 일은 자꾸 왔다 갔다 해서는 안 된다. 파이어족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가능한 일이다. 마치 직업에서 성취를 이루는 것처럼 10년 이상 투자할 각오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내 경우를 보자. 2021년 가을에 직장을 그만두고 파이어족이 됐다. 50대 초반 일이다. 나는 대학생 때부터 소속된 직장이 없어도 괜찮은 삶을 꿈꿨다. 대학교 3~4학년 때로 기억한다. 물론 그때는 큰돈을 벌어 그 돈으로만 살아가는 걸 꿈꾸지는 않았다. 큰돈을 벌기는 힘들다고 생각했고, 프리랜서로 일해서 벌거나 월세가 나오는 부동산으로 생활비를 충당하는 방식을 고려했다. 어쨌든 나는 파이어족이라는 단어가 없을 때인 1990년대 초반부터 직장에 다니지 않는 삶을 꿈꿨고, 2021년 그 꿈을 이뤘다. 즉 파이어족이 되기를 원하고 실제 파이어족이 되기까지 30년 정도가 걸렸다.

    사회인으로 돈을 벌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초반이다. 당시는 지금과 달리 처음 직장을 다니면 정년 때까지 다니는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있을 때였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정년까지 직장 생활을 할 거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직장 없이 살아갈 수 있는 삶, 파이어족의 삶을 꿈꿨다. 그랬는데도 2021년이 돼서야 직장을 그만둘 수 있었다. 사회인으로서 돈을 벌기 시작하고 약 20년이 지나서다. 

    파이어족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린 건 무능하고 경제 감각이 없기 때문일까. 나는 그 나름 한국에서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전공은 경제학과 경제정책이었다. 대학생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생활비는 스스로 벌었다. 소위 명문대 경제학부를 나온 사람이 “나는 경제는 잘 모르고, 능력이 없다”고 말하면 재수 없다는 얘기를 들을 것이다.

    그럼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걸까.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원래 오래 걸리는 일이라고. 스포츠를 처음 배우기 시작해 실제 스포츠로 먹고살 수 있을 때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를 보자. 야구·축구 등 스포츠는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20대는 돼야 수입을 올릴 수 있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고 특출난 소수의 경우에만 가능하다. 기업에서 월급을 받는 사람들도 대학 졸업 후이니 바로 돈을 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기업에 지원할 자격을 얻기 위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에 다닌 시간을 고려해야 하고, 이는 10년을 훌쩍 넘는다. 

    ‘프로’가 되고 싶다면

    프로 야구선수가 되는 데는 10년 이상이 걸린다. GETTYIMAGES

    프로 야구선수가 되는 데는 10년 이상이 걸린다. GETTYIMAGES

    먹고살 생활비를 벌 수 있으면 ‘프로’다. 직장인이 되는 데도 10년은 걸리는데, 일하지 않고 먹고살 수 있을 정도의 돈을 버는 것은 그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간다. 내가 파이어족이 되기를 꿈꾼 뒤 30년, 수입을 얻기 시작한 뒤 20년은 굉장히 긴 기간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짧은 시간 안에 달성하는 건 쉽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5년 정도는 앞당길 수 있었겠지만 10년 이상 빨리 파이어족이 될 수 있었을 거라고 보지는 않는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는 일을 유행에 따라 추구할 수는 없다. 파이어족이 유행이라서 파이어족을 추구하는 사람은 유행이 끝나기 전에 파이어족이 될 수 없다. 만약 용기를 내 파이어족이 됐다고 해도 그 생활을 유지하기 힘들 테다. 세상에는 트렌드에 맞춰도 되는 일이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다. 먹고사는 일, 그러니까 생계와 관련된 일은 유행에 따라 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파이어족을 포함해 딩크족, 욜로족, ‘니트(Neet·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족’ 등은 유행에 따라 정해서는 안 된다. 이렇게 인생을 걸고 추구해야 하는 일을 유행에 따라 선택한다면 분명 후회할 일이 생길 것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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