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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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쇠맛’으로 돌아온 에스파

[미묘의 케이팝 내비]

  •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입력2024-11-0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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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pernova’를 통해 ‘쇠맛’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구축한 에스파(aespa)가 신작 ‘Whiplash’를 선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Supernova’를 통해 ‘쇠맛’이라는 독특한 장르를 구축한 에스파(aespa)가 신작 ‘Whiplash’를 선보였다. [SM엔터테인먼트 제공]

    에스파(aespa)가 새 미니앨범으로 돌아왔다. 올해 내내 쉴 틈 없이 보인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사실 스튜디오 음반으로는 5월 ‘Armageddon’에 이어 두 번째다. ‘Supernova’ 등이 차트에서 지속적인 반응을 얻고 있고 리믹스, 리메이크, 솔로곡 등으로 꾸준히 작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이 있다면 가상세계에 분신이 있다는 초기 설정이 황당하게 느껴졌던 것과는 별개로, 에스파 음악과 퍼포먼스 기조가 매우 확고하게 다져졌다는 점이다. 물론 에스파 세계관의 일부인 나이비스(nævis)라는 가상인물이 가상 아이돌로 9월 데뷔하기도 했으니 설정 자체를 덮어버린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신작 ‘Whiplash’는 이를 잘 보여준다. ‘Supernova’나 ‘Armageddon’, 그리고 일본 데뷔 싱글 ‘Hot Mess’ 등을 통해 구현된 이미지는 여전히 유지된다. SF적이고 그로테스크한 비주얼 속에 이 세계의 감각을 아찔하게 선사하고, 어떤 공포스러운 ‘경외감’이 깃들게 하는 폭압적 캐릭터다. ‘Whiplash’는 일렉트로 하우스 스타일의 비트와 단단하고 탄력적인 베이스에 상당히 집중한 곡이다. 다른 악기들은 이 무자비한 사운드 위에서 보조적 역할에 그친다. 뮤직비디오도 검은색과 흰색 중심으로 미니멀한 인상을 준다. 다만 쇳덩어리처럼 느껴지는 장비가 아티스트의 손짓에 휙휙 스쳐 지나갈 때 서늘하고 육중한 이미지를 아주 잘 살려낸다.

    1절 마지막에서 제목을 연달아 읊는 ‘Whip-whiplash’ 부분은 후렴이어야 할 것 같지만 전체에 걸쳐 2번만 등장한다. 청자에게 반가운 안도감과 해방감을 안기는 ‘후렴’이라기보다 일렉트로닉 음악에서 말하는 주요 모티프인 ‘드롭(drop)’ 같기도, 또 어쩌면 차라리 그저 삽입구처럼 들리기도 한다. 4번 등장하는 보컬 멜로디 부분은 음악 흐름을 뒤집는 ‘브리지(bridge)’ 역할을 한다. 듣다 보면 이 곡의 후렴 혹은 ‘훅(hook)’은 차라리 도입부부터 등장해 전체에 걸쳐 5번 반복되는 8마디의 랩 같기도 하다. 냉랭한 이 랩의 리듬 패턴은 다른 대목에서도 비슷한 구조로 재현된다. 그 결과 브리지와 후렴이 아주 명시적으로 선언되곤 하는, 정격적인 K팝 구조와는 조금 거리가 있다.

    쇠맛 장인의 강렬한 퍼포먼스

    그래서 훅이 약할 수도 있겠지만, 이 곡은 그렇지도 않다. 아주 선명하게 뇌리에 남는 에스파의 퍼포먼스, 그리고 어느 아티스트보다도 특징적으로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곡은 거의 모든 부분을 훅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단숨에 폭발할 것만 같은 팽팽한 긴장을 끝끝내 터뜨리지 않은 채 다만 머리끝까지 채우고 아주 긴박하게 달려 나간다. 그럴 때 에스파를 두고 종종 회자되는 ‘쇠맛’이라는 형용은 좀 더 본질적 영역으로 들어선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사운드로 후려치는 맛이 아니라, 날카롭고 섬뜩한 카리스마다.

    ‘Whiplash’는 K팝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사실 에스파가 아니고서는 구현을 상상하기 힘든 작품이다. 세계관에서 비롯된 이미지가 없었다면 에스파로서도 어려웠을지 모르지만, 또 한편으론 세계관에 얽매이지는 않음으로써 좀 더 과감한 곡을 시도할 수 있었을 듯하다. 에스파 콘서트에서 나이비스가 솔로 무대를 갖기도 했으니 에스파 세계관 자체는 유지된다고 할 만하나, 나이비스의 데뷔가 세계관과 아티스트의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효과도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다소 황당한 듯하던 설정이 재정립돼가면서 앞으로 어떤 성취를 또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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