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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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공동 한국은행, 인조가 반정하기 전 살던 사저 터

[안영배의 웰빙 풍수] 재물보다 관운 왕성한 천기(天氣) 명당… 美 연준, 재물 기운 가득한 명당

  • 안영배 미국 캐롤라인대 철학과 교수(풍수학 박사)

    입력2024-03-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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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은행이 4월 하순까지 리모델링 공사를 마치는 서울 중구 소공동 옛집으로 돌아간다. 최근 한국은행은 본관 리모델링과 통합별관 재건축 사업이 완료됨에 따라 그간 세 들어 살든 삼성본관 빌딩을 떠나게 됐다고 발표했다. 7년 만에 사옥으로 귀향하는 한국은행의 행보를 풍수적 시각에서 유심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택(건물) 풍수에서는 단체나 개인이 새로운 터전으로 이사할 경우 운(運)의 흐름에서 중요한 변수가 발생한 것으로 여긴다. 사람들이 새 터의 기운에 노출되면 정신적·육체적으로 해당 기운의 영향을 받는다는 이유에서다.

    필자는 한국의 돈줄을 좌지우지하는 기관인 한국은행의 이전과 관련해 ‘풍수 예언’을 한 바 있다. 2017년 당시 한국은행이 삼성본관 빌딩(중구 세종대로 67)으로 임시 이전할 계획이라고 발표했을 때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격(格)에 어울리는 터를 찾아간다”는 신문 칼럼을 썼다. 한국은행 임직원들이 삼성본관 빌딩의 풍요로운 지기(地氣)를 받아 물처럼 유연한 통화정책과 경제 비상사태에 대처하는 순발력을 키워나갈 것이며, 그 효과는 이사하고 3년 후부터 나타날 것이라고 예측했다(‘동아일보’ 2017년 6월 12일자).

    한국은행과 삼성본관 터는 돈과 관련해 ‘역사적 인연’이 이어진다. 원래 삼성본관 터는 조선 고종 때 백동전을 찍어내던 전환국이 자리한 곳이었다. 전환국은 요즘으로 치면 국가의 화폐 발권 기능을 담당하는 중앙은행과 같은 기관이다. 그러니 중앙은행인 한국은행이 화폐 발행을 하던 삼성본관 터로 이전한 것은 어찌 보면 역사의 인과법칙이 작용한 듯하다. 또 한국은행은 2017년 삼성본관에 입주하고 3년째부터 최대 실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미국 국채를 사들이거나 투자 수익을 올리는 방식으로 3년 연속 사상 최대 당기순이익을 경신한 것이다(2019년 5조3131억 원, 2020년 7조3659억 원, 2021년 7조8638억 원). 이는 한국은행이 돈줄 기운을 가진 삼성본관 터의 기운을 제대로 누린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사옥. 유럽풍 르네상스 양식의 화폐박물관(옛 본관) 뒤쪽으로 새 본관과 별관이 보인다. 본관은 사각형 창문틀을 강조한 금형체 건물이고, 본관과 이어지는 왼쪽 별관은 세로선이 강조된 목형체 건물이다. [안영배 제공]

    서울 중구 소공동 한국은행 사옥. 유럽풍 르네상스 양식의 화폐박물관(옛 본관) 뒤쪽으로 새 본관과 별관이 보인다. 본관은 사각형 창문틀을 강조한 금형체 건물이고, 본관과 이어지는 왼쪽 별관은 세로선이 강조된 목형체 건물이다. [안영배 제공]

    금융기관은 지기 명당에서 역량 발휘돼

    고전 풍수서 ‘인자수지’에는 “산은 인물을 관장하고 물은 재물을 관장한다(山管人丁 水管財)”고 적혀 있다. 사람의 그릇과 됨됨이는 산에서 찾아볼 수 있고, 재물과 복록은 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는 뜻이다. 또 풍수에서는 흔히 물길이 풍부하고 깨끗하면서도 감싸듯이 휘돌아가는 지역에서 부자가 많이 난다고 본다. 이는 물류(物流)에서 핵심 역할을 하는 물길을 중심으로 교역과 상업이 발달해 부가 축적됐다는 역사적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결국 물과 재물(돈)은 유동성(流動性)이라는 공통된 속성을 띠고 있다. 물길이 흘러가면서 교역이 활성화되듯이, 재물 역시 거래 관계에서 유동성이 활성화될 때 풍성해진다. 이때 돈의 유동성을 가장 적절히 뒷받침하는 기운이 바로 땅에서 솟구치는 지기(地氣)라고 할 수 있다. 화폐를 찍어내던 삼성본관 빌딩 터가 그런 곳이다.

    그래서일까, 세계 각국 중앙은행은 대개 지기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화폐의 유동성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루는 금융기관은 지기 명당에 자리할 때 그 역량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전 세계 경제의 돈줄을 쥐고 있는 미국 중앙은행 격인 연방준비제도 청사(워싱턴DC)와 뉴욕연방준비은행 건물(맨해튼)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선진국 중앙은행은 한결같이 풍요의 지기가 넘쳐나는 곳에 자리한다. 그뿐 아니다. 글로벌 규모의 세계적 은행이 들어선 곳도 마찬가지로 지기 명당이다. 세계 금융을 쥐락펴락할 역량을 가진 터를 짚어내는 서구인의 입지 감각이 놀라울 정도다.

    한국은행의 고향인 소공동 본관 터는 어떨까. 한국은행은 대일 항쟁기에 일본이 세운 조선은행(현 화폐박물관, 1912년 완공)에서 시작했다. 한국은행이 바로 뒤편 새 본관(1987년 완공)으로 이주할 때까지 사용한 화폐박물관은 화강석으로 외벽을 마감한 유럽풍의 르네상스 양식 건물이다.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 본점(도쿄)과 매우 비슷하게 생겼다. 두 건물 모두 일본인 건축가(다쓰노 긴고·辰野金吾)가 설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흥미롭게도 한국은행과 일본은행은 터의 기운도 같다. 두 은행의 본관 모두 천기(天氣) 명당에 자리 잡고 있다. 땅 밑에서 지상으로 솟구쳐 오르는 지기 명당이 재물과 풍요의 속성이 강하다면, 공중에서 땅 쪽으로 하강하는 천기 명당은 권력과 명예의 속성이 강하다는 특징이 있다.

    재물보다 권력과 명예 속성 강한 천기 명당

    역사적으로도 한국은행 본점(본관·별관) 자리는 조선 16대 임금인 인조가 왕위에 오르기 전 살던 잠저였다. 인조는 이곳에 살면서 반정(反正)으로 권력을 쟁취했다. 그만큼 이곳은 관운(官運)이 왕성한 천기형 터다. 필자는 도쿄 일본은행 본점 터도 천기가 강해 관(官) 주도의 금융시스템과 권위적인 조직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판단한 바 있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서구 선진국과 달리 중앙은행이 지기가 아닌 천기 터에 자리 잡고 있다. 금융기관은 유동성과 유연성이 강조되는 곳이기에 권위적인 천기 터보다 부드러운 지기 터와 궁합이 맞는다는 점에서 아쉬운 느낌이 든다.

    사실 금융시스템이 발달하지 못한 나라일수록 중앙은행이 지기 명당에서 벗어난 곳에 있다. 필리핀 중앙은행(BSP), 베트남 중앙은행(SBV), 중국 중앙은행인 중국인민은행(中國人民銀行) 등은 지기가 아닌 터에 자리한다. 이들 중앙은행은 대체로 권력의 통제를 받거나 경직된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중앙은행이 아닌 일반 은행도 지기 명당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 잡을 경우 제 역량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다. 이를테면 다국적 은행 스탠다드차타드의 한국 법인인 SC제일은행 본점(종로구 공평동)은 조선시대 중범죄자들을 다루던 기관인 의금부 터에 자리하고 있다. 강한 권력적 속성이 돋보이는 터와 금융기관은 성격이 잘 맞지 않아 영업 경쟁력에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본다.

    다행히도 한국은행이 새로 리모델링해 입주하는 본관 건물은 수직과 수평이 강조된 사각형의 금형체(金形體) 외관으로 치장돼 있다. 한국은행의 임시 거주처인 삼성본관 빌딩도 금형체 건물이다. 금형, 즉 금 기운은 풍수에서 황금과 부를 상징하는 기호라는 점에서 금융기관과도 성격이 어울린다. 아쉬운 점은 한국은행의 금형체 본관과 바로 이웃한 목형체(木形體) 별관이 금극목(金克木: 금이 목을 누름) 원리에 따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이다. 건물 설계에서 기본적인 풍수 원리를 배제한 결과다.

    이처럼 건물이 입지한 터뿐 아니라 건물의 모양새나 상징적 특징 또한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적잖다. 모쪼록 한국은행이 입주하는 새 사옥에서 한국 금융을 선도하는 역할을 잘 수행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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