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챌린저를 향한 한화의 첫걸음은 성과급제도 개편이었다. 한화는 최근 ‘책임경영/주주가치 제고 보상제도’로 알려진 RSU(Restricted Stock Unit·양도제한조건부주식)를 내년부터 전 계열사 팀장급 직원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RSU는 2020년 한화가 국내 상장사 가운데 최초로 도입한 제도로, 현재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등 12개 계열사의 주요 임직원을 대상으로 운영 중이다.
국내에서는 다소 생소한 RSU는 연말연초에 현금으로 주는 기존 성과급제도와 달리 일정 기간이 지나야 주식을 주는 장기성과보상제도다. 한화의 경우 최소 5년에서 최대 10년간 이연해 지급한다. 또한 임직원의 장기적인 경영 참여를 유도하고 미래 성과 창출까지 고려해 부여하기 때문에 연초 보직 부임 시 지급을 약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울 청계천로에 위치한 한화 본사. [한화 제공]
주가 상승해야 보상 커지는 성과 보상제
RSU의 앞선 형태는 1990년대 미국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도입한 스톡옵션(Stock Option·주식매수선택권)이다. 스톡옵션은 성과급을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보상하는 시스템으로, 종종 전문 경영인이나 핵심 경영진이 단기간에 높은 실적을 내고 거액의 차익을 실현한 뒤 회사를 떠나 이른바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그러자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RSU다. RSU는 스톡옵션처럼 성과급을 현금이 아닌 주식으로 지급하되 일정 기간 이후에 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일정 기간 이후 보상이 발생하고, 주가 상승에 따라 보상도 커지게 설계돼 임직원이 회사의 장기 성장에 집중하도록 동기가 강화되는 것이 특징이다. 높은 성과급을 노리고 단기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 저지르는 부정행위나 경영진의 도덕적 해이를 예방하는 효과도 크다.
RSU는 2000년대 초 마이크로소프트(MS)를 시작으로 애플, 알파벳(구글), 아마존 등 주요 글로벌 빅테크 기업이 선도적으로 도입해 적극적으로 활용 중이며, 일본에서는 이미 상장사의 31.3%가 도입한 상태다. 국내에서는 한화가 도입한 이후 네이버, CJ ENM, 두산, 쿠팡 등이 임직원을 대상으로 RSU를 부여하고 있다.
임직원 입장에서 RSU는 지속적인 성과 창출로 주가가 오를 경우 실제 주식을 받을 시점의 보상 역시 주가와 연동돼 늘어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 반면 지급받는 시점의 주가가 현재보다 떨어질 경우에는 보상 규모가 줄어들 수 있고, 임직원의 책임 여부 등에 따라 지급 자체가 취소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한화는 임직원 설명회, 타운홀 미팅, 토론회 등 의견 수렴 과정과 법적 검토 등을 거친 후 임원을 대상으로는 순차적으로 확대 시행하고, 팀장급 이상 직원은 현금 보상이나 RSU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RSU 선택형 제도’를 시행할 계획이다.
주주가치 제고는 RSU의 최대 장점이다. 임직원이 주인의식을 갖고 회사의 장기 발전에 기여함으로써 회사 성장을 통해 주주가치를 제고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또한 회사는 RSU 지급을 위해 자사 주식을 대량 매입할 수밖에 없어 주가 부양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며, 국내외 주주 등 투자자 사이에서 국내 기업 주식의 신뢰도를 높이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는 최근 국내 상장사들이 앞다퉈 RSU를 도입하거나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경영권 승계 위한 편법 수단 활용은 오해
그럼에도 최근 일각에서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편법 수단으로 활용하려고 RSU를 도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한화는 “RSU는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두고 도입된 제도가 아니며, 회사와 소액주주의 이익에 좀 더 부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한화 측에 따르면 김 부회장도 다른 최고경영자(CEO)와 동일한 기준 및 투명한 절차에 따라 ㈜한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솔루션 대표이사로서 RSU를 부여받는다고 한다. 변경된 회사 성과급제도를 동일하게 적용받는다는 것이다. 한화 관계자는 “만약 RSU를 부여받는 임직원과 달리 대주주만 현금 성과급을 지급받는다면 제도 취지가 퇴색되는 것은 물론, 역차별 논란도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부회장이 지금까지 4년간 ㈜한화로부터 부여받은 주식은 전체 주식의 0.35%에 불과하고, 매년 부여받는 RSU 규모가 0.1% 안팎이라 RSU로 지분을 늘려 한화그룹을 승계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영권 승계를 위한 자금 확보 측면에서 본다면 10년 동안 주식 배당을 받거나 다른 이익을 전혀 얻을 수 없는 RSU를 활용하기보다 오히려 기존 단기성과급제도를 유지하면서 성과급으로 지급받는 현금을 활용해 지배구조 최상단인 ㈜한화 주식을 집중적으로 매입하는 것이 좀 더 많은 지분을 용이하게 확보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표 참조).
따라서 공시 기준 개정에 따라 3월 중 공시될 사업보고서에는 주식 기준 관련 정보를 좀 더 상세히 기재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만 RSU 부여 대상 230여 명 가운데 미등기 임원 및 직원은 공시 대상이 아니라서 제외되며, 향후 금융감독원의 개정 내용에 따라 사업보고서에 임직원 대상 부여 내역을 추가로 공시할 예정이다.
또한 “사실상 대주주가 RSU를 자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혹에 대해서는 “대표이사를 포함한 등기임원의 RSU는 이사회에서 결정한다. 이사회 안건은 개별 부여 대상자를 별건으로 부의(토의에 부침)하고, 대상자가 포함된 안건에는 대상자에게 의결권을 부여하지 않는다”며 “이는 주주총회를 거쳐 최종 결정되고, 사업보고서와 재무제표 주석 등을 통해 투명하게 공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회사-주주-임직원 모두 윈윈
한화솔루션 케미칼 부문 현장. [한화솔루션 제공]
다만 의무 보유 기간 종료 후에는 100% 주식 부여 방식이 아니라 50% 주식 부여, 50% 회사주식가치연계현금 부여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주식을 취득할 때 약 50%에 달하는 종합소득세를 납부해야 하는데, 고액의 세금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부여받은 주식을 일시에 처분할 경우 주가 하락을 피할 수 없고 일반 주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어서다. 또한 주식가치연계현금으로 소득세를 납부하게 함으로써 가급적 지속 보유를 유도하려는 목적도 있다.
한화의 RSU는 기본적으로 보수와 연동된다. 물론 동일 직급이라도 맡은 역할과 책임, 직책에 따라 기여도가 다르기에 RSU 부여 규모에 차이가 있지만, 동일 직책에 대한 부여 비율은 같다. 연초에 부여받은 RSU는 6개월 이상 근무할 경우 자격이 유지되며, 5~10년 후 취득 기간이 되면 재직 여부와 상관없이 지급된다. 또한 그사이 처분이나 양도는 불가능하고, 회사에 중대한 손실을 끼친 경우 RSU 전부 혹은 일부가 취소될 수 있다.
손명수 한화솔루션 인사전략담당 임원은 “RSU는 회사의 장기적 성장과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도입된 성과 보상 시스템으로, 회사 장래 가치에 따라 개인의 보상이 확대될 수 있어 회사-임직원-주주가 모두 윈윈(win-win)하는 제도”라고 말했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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