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반 친구가 퇴직을 했다. 명예퇴직이었기에 몇 년 치 연봉에 해당하는 명예퇴직금을 받고 나왔다. 정식 퇴직금과 합하면 5억 원 넘는 돈을 손에 쥐었다. 이렇게 큰돈을 평생 만져본 적 없는 친구는 먼저 퇴직한 나에게 일종의 컨설팅을 부탁했다. 이 돈을 어떻게 운용해야 화려한 노년 생활을 준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것이었다. 친구가 원하는 건 현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여생을 살아가는 것이다. 이 수억 원 퇴직금으로 그게 가능할까. 앞으로 어떻게 해야 지금처럼 계속 살 수 있을까. 내 대답은 별로 긍정적이지 않다. 5억 원 넘는 돈은 굉장히 큰돈이긴 하다. 하지만 그 돈으로 현 생활수준을 유지하면서 사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예상하지 못한 재정적 변동도 발생할 수 있다.
내가 투자로 돈을 벌지 않고 직장만 다니다가 50대 초반 나이에 퇴직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연금은 65세부터 나온다. 연금이 나오기 전까지 10여 년을 먹고살아야 하는데, 가지고 있는 현금은 퇴직금으로 받은 1억6000만 원이 전부다. 이 1억6000만 원으로 연금을 받기 전까지 살아간다면 1년에 1200만 원, 1달에 100만 원으로 생활해야 한다. 중산층으로 살아왔는데 당장 사회 최하소득층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럴 순 없다. 뭔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50대 중반에 새로 직장을 얻기는 힘들다. 자영업을 해야 하는데 1억600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목 좋은 곳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여는 것도 몇억 원이고, 세탁소 프랜차이즈도 몇억 원이 필요하다. 특별한 기술 없이 이 돈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떠오른 일이 세 가지였다. 치킨집, 편의점, 조그만 커피숍. 그제야 한국에서 치킨집, 커피숍이 우후죽순 생기는 이유를 알았다. 자영업을 크게 하려면 자본금이 훨씬 많이 필요하다. 일반 퇴직자의 자금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치킨집, 작은 커피숍뿐이다.
그동안 나는 한국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영업자보다 더 어려운 이는 나이 들어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제대로 자영업을 시작할 돈도 없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자영업자들이 그 나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퇴직금 1억6000만 원을 손에 쥐었다. 그럼 이 1억6000만 원이 고스란히 내 돈으로 남을까. 그렇지 않았다.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 대출금을 상환하라는 연락이 왔다. 직장을 다니면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고, 10년 넘게 아무 이상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사이 마이너스 통장 한도는 점점 늘었다. 직장을 그만두니 마이너스 통장을 더는 쓸 수 없다고 했다. 마이너스 통장은 1년에 한 번 연장된다. 이때 직장이 없으면 재연장이 안 된다.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던 마이너스 대출금을 모두 상환해야 한다. 마이너스 통장만이 아니다. 담보대출도 직장 소득 규모에 따라 대출액 규모가 달라진다. 직장을 그만둬 더는 정기 소득이 없으면 담보대출 한도도 줄어든다.
은행 대출금 상환 이후 발생한 일은 직장에 다닐 때보다 훨씬 오른 국민건강보험료 고지서 수령이었다.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변경되면서 국민건강보험료가 크게 올랐다. 보통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두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걱정한다. 돈 걱정을 하고, 지금 있는 돈으로 뭘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 더는 버는 돈이 없어 살아갈 일이 걱정인데,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내라고 고지서가 날아온다. 넘어진 사람을 밟는 격이다. 또 일반 신용카드면 모를까, 소위 프리미엄급 신용카드도 발급이 안 된다. 나는 해외항공권 서비스 등을 목적으로 프리미엄급 신용카드를 쓰고 있었다. 15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쓴 카드였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니 재연장이 안 됐다. 은행처럼 신용카드사도 고객의 재산 상태보다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를 더 중요시했다. 한국 금융기관은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사용하는 카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퇴직금, 명예퇴직금으로 평생 처음 ‘자기 맘대로 쓸 수 있는 큰돈’을 손에 쥐어 기분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기분 좋은 은퇴 생활을 기대했다. 나는 거기에 초를 쳤다. 일단 그게 다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은행 신용대출이 있으면 다음 심사 때 모두 갚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연장이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담보대출도 모두 다는 아니어도 몇천만 원은 분명 갚아야 한다. 그리고 현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 소모되는 돈은 이전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다. 전에는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만 여행을 가거나 취미활동을 했다. 하지만 은퇴하면 평일에도 뭔가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럼 필연적으로 돈을 쓰게 된다. 과거에는 일을 했던 시간에 이제는 돈을 쓴다. 국민건강보험료뿐 아니라 생활비도 더 들어간다. 직장을 그만둔 후 평일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생활비 지출이 같아질 것이다.
5억 원 넘는 돈도 충분한 액수가 아니다. 이 친구가 현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매달 500만 원은 써야 한다. 그럼 1년에 6000만 원이고, 10년이면 6억 원이다. 지금 있는 돈은 모두 다 써버리는 것이고, 그다음에는 월 1백 몇십 만 원 연금을 받아서 생활해야 한다. 65세가 되면 생활수준이 팍 낮아져야 하는 것이다. 그때 충격을 막으려면 지금 월 300만~400만 원을 쓰고 65세 이후에 200만~300만 원을 쓰도록 해야 한다. 지금부터 생활수준을 낮춰야 한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 화려한 생활을 한다는 건 신화다. 실제로는 생활수준이 대폭 내려간다.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없는 생활수준의 하락이다. 은퇴 후 생활수준을 똑같이 유지하려면 몇 배나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럼 새로 직장을 구하면 괜찮을까. 직장을 구하면 이 과정이 뒤로 좀 더 미뤄질 뿐이다. 그 직장을 그만두면 어차피 똑같은 상황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50대에 퇴직해 새로 얻는 직장은 절대 이전 직장만큼 연봉을 주지 않는다. 생활수준 하락은 피할 수 없다.
어쨌든 오랫동안 일만 해온 건 사실이니, 퇴직 후 크루즈 해외여행 등에 돈을 써도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은퇴 초기 어쩌다 한 번이다. 계속해서 그런 생활을 할 수는 없다. 몇 살까지 살지 불확실한 상황이니 계속 돈을 쪼개 쓰면서 생활해야 한다. 생활수준은 계속해서 하락할 것이다. 다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 때문에 불행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분지족하며 그 나름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이 들어 퇴직하면 생활수준이 유지되거나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 직장인에게 은퇴 후 화려한 생활은 그저 꿈일 뿐이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
퇴직자는 퇴직금만으로 현 생활수준을 유지하기 어렵다. [GettyImages]
퇴직자가 치킨집 차리는 이유
먼저 내 경우를 이야기해보자. 나는 일정 규모의 자산을 모은 후 2021년 8월 직장을 그만뒀다. 17년간 직장에서 근무했고, 퇴직금으로 1억6000만 원이 나왔다. 퇴직금을 받고 처음 든 생각이 이것이다. “내가 파이어족으로 직장을 그만둔 게 아니라, 다른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직장을 그만뒀다면 치킨집을 하는 수밖에 없었겠구나.”내가 투자로 돈을 벌지 않고 직장만 다니다가 50대 초반 나이에 퇴직했다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 연금은 65세부터 나온다. 연금이 나오기 전까지 10여 년을 먹고살아야 하는데, 가지고 있는 현금은 퇴직금으로 받은 1억6000만 원이 전부다. 이 1억6000만 원으로 연금을 받기 전까지 살아간다면 1년에 1200만 원, 1달에 100만 원으로 생활해야 한다. 중산층으로 살아왔는데 당장 사회 최하소득층이 돼버리는 것이다.
그럴 순 없다. 뭔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50대 중반에 새로 직장을 얻기는 힘들다. 자영업을 해야 하는데 1억6000만 원으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을까. 목 좋은 곳에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여는 것도 몇억 원이고, 세탁소 프랜차이즈도 몇억 원이 필요하다. 특별한 기술 없이 이 돈으로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떠오른 일이 세 가지였다. 치킨집, 편의점, 조그만 커피숍. 그제야 한국에서 치킨집, 커피숍이 우후죽순 생기는 이유를 알았다. 자영업을 크게 하려면 자본금이 훨씬 많이 필요하다. 일반 퇴직자의 자금 수준에서 할 수 있는 것이 치킨집, 작은 커피숍뿐이다.
그동안 나는 한국 자영업자의 어려움을 이야기하곤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자영업자보다 더 어려운 이는 나이 들어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이다. 이들은 제대로 자영업을 시작할 돈도 없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면 자영업자들이 그 나름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퇴직금 1억6000만 원을 손에 쥐었다. 그럼 이 1억6000만 원이 고스란히 내 돈으로 남을까. 그렇지 않았다.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 대출금을 상환하라는 연락이 왔다. 직장을 다니면서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었고, 10년 넘게 아무 이상 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그사이 마이너스 통장 한도는 점점 늘었다. 직장을 그만두니 마이너스 통장을 더는 쓸 수 없다고 했다. 마이너스 통장은 1년에 한 번 연장된다. 이때 직장이 없으면 재연장이 안 된다. 그때까지 사용하고 있던 마이너스 대출금을 모두 상환해야 한다. 마이너스 통장만이 아니다. 담보대출도 직장 소득 규모에 따라 대출액 규모가 달라진다. 직장을 그만둬 더는 정기 소득이 없으면 담보대출 한도도 줄어든다.
은퇴자 생활수준 하락은 현실
나는 이전보다 자산이 훨씬 많아져 직장을 그만뒀다. 경제 상태가 퇴직 전보다 좋았다. 하지만 은행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안정적인 월급이 들어오는 직장이 있는지 여부였다. 아무리 자산이 있어도 직장이 없으면 마이너스 통장을 사용할 수 없다. 나는 마이너스 통장 대출금 6000만 원을 상환해야 했다. 퇴직금 1억6000만 원에서 6000만 원 대출금 상환은 크다. 내가 퇴직금만 바라보고 있었다면 예상하지 못한 큰 지출 탓에 바로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다.은행 대출금 상환 이후 발생한 일은 직장에 다닐 때보다 훨씬 오른 국민건강보험료 고지서 수령이었다. 직장가입자에서 지역가입자로 변경되면서 국민건강보험료가 크게 올랐다. 보통 사람들이 직장을 그만두면 앞으로 어떻게 할지 걱정한다. 돈 걱정을 하고, 지금 있는 돈으로 뭘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 더는 버는 돈이 없어 살아갈 일이 걱정인데, 국민건강보험료를 더 많이 내라고 고지서가 날아온다. 넘어진 사람을 밟는 격이다. 또 일반 신용카드면 모를까, 소위 프리미엄급 신용카드도 발급이 안 된다. 나는 해외항공권 서비스 등을 목적으로 프리미엄급 신용카드를 쓰고 있었다. 15년 동안 아무 문제없이 쓴 카드였다. 그런데 직장을 그만두니 재연장이 안 됐다. 은행처럼 신용카드사도 고객의 재산 상태보다 어떤 직장에 다니는지를 더 중요시했다. 한국 금융기관은 정말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사용하는 카드를 바꿀 수밖에 없었다.
친구는 퇴직금, 명예퇴직금으로 평생 처음 ‘자기 맘대로 쓸 수 있는 큰돈’을 손에 쥐어 기분 나쁘지 않은 상태였다. 기분 좋은 은퇴 생활을 기대했다. 나는 거기에 초를 쳤다. 일단 그게 다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은행 신용대출이 있으면 다음 심사 때 모두 갚아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처럼 연장이 잘 되지 않는다. 그리고 담보대출도 모두 다는 아니어도 몇천만 원은 분명 갚아야 한다. 그리고 현 생활수준을 유지하는 데 소모되는 돈은 이전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다. 전에는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만 여행을 가거나 취미활동을 했다. 하지만 은퇴하면 평일에도 뭔가 활동을 하게 되는데, 그럼 필연적으로 돈을 쓰게 된다. 과거에는 일을 했던 시간에 이제는 돈을 쓴다. 국민건강보험료뿐 아니라 생활비도 더 들어간다. 직장을 그만둔 후 평일에는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만 시간을 보내야 생활비 지출이 같아질 것이다.
5억 원 넘는 돈도 충분한 액수가 아니다. 이 친구가 현 생활수준을 유지하려면 매달 500만 원은 써야 한다. 그럼 1년에 6000만 원이고, 10년이면 6억 원이다. 지금 있는 돈은 모두 다 써버리는 것이고, 그다음에는 월 1백 몇십 만 원 연금을 받아서 생활해야 한다. 65세가 되면 생활수준이 팍 낮아져야 하는 것이다. 그때 충격을 막으려면 지금 월 300만~400만 원을 쓰고 65세 이후에 200만~300만 원을 쓰도록 해야 한다. 지금부터 생활수준을 낮춰야 한다. 젊어서 열심히 일하고 은퇴 후 화려한 생활을 한다는 건 신화다. 실제로는 생활수준이 대폭 내려간다. 앞으로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없는 생활수준의 하락이다. 은퇴 후 생활수준을 똑같이 유지하려면 몇 배나 많은 돈이 필요하다. 그럼 새로 직장을 구하면 괜찮을까. 직장을 구하면 이 과정이 뒤로 좀 더 미뤄질 뿐이다. 그 직장을 그만두면 어차피 똑같은 상황을 겪어야 한다. 그리고 50대에 퇴직해 새로 얻는 직장은 절대 이전 직장만큼 연봉을 주지 않는다. 생활수준 하락은 피할 수 없다.
퇴직금 투자 실패 확률 높아
그럼 이 퇴직금을 기반으로 투자를 하면 되지 않을까. 연 10% 수익을 얻으면 가진 돈을 거의 까먹지 않으면서 현 생활수준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내 대답도 ‘노(NO)’다. 그동안 계속 투자를 해온 사람이 그 돈으로 투자하면 괜찮을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투자를 하지 않았던 사람이 큰돈이 생겼다고 투자를 시작하면 그냥 다 잃는다고 보면 된다. 돈만 많은 투자 초보자는 이 세계에서 그냥 밥이다. 몇 년 안에 큰돈을 잃는 경험을 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어쨌든 오랫동안 일만 해온 건 사실이니, 퇴직 후 크루즈 해외여행 등에 돈을 써도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은퇴 초기 어쩌다 한 번이다. 계속해서 그런 생활을 할 수는 없다. 몇 살까지 살지 불확실한 상황이니 계속 돈을 쪼개 쓰면서 생활해야 한다. 생활수준은 계속해서 하락할 것이다. 다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이 때문에 불행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안분지족하며 그 나름 만족하며 살아갈 것이다. 한 가지 분명한 건 나이 들어 퇴직하면 생활수준이 유지되거나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대다수 직장인에게 은퇴 후 화려한 생활은 그저 꿈일 뿐이다.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이다.
최성락 박사는…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 서울과학종합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동양미래대에서 경영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2021년 투자로 50억 원 자산을 만든 뒤 퇴직해 파이어족으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