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국정운영의 핵심 키워드 중 하나는 ‘인공지능(AI)’이다. ‘AI 대전환을 통한 글로벌 강국 도약’을 국가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다. 교육정책도 예외가 아니다. AI 디지털교과서의 법적 지위 논란과 별개로 ‘디지털·AI 시대 대응 교육 강화’를 주요 과제로 정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입시로 귀결되는 현 교육으로는 AI 시대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며 “조만간 상당히 근본적인 교육 개혁이 몰아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옳은가’를 다투는 토론 대신 상대에게 귀 기울이고 ‘무엇이 옳은가’를 찾아가자는 숙론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갖춰지리라고 전망했다. 생물학자인 최 교수는 ‘숙론’(2024), ‘최재천의 공부’(2022) 등 교육 관련 서적을 다수 출간했다. 다음은 6월 2일 그와 나눈 일문일답.
“이제 우리 눈으로 너무나 명확하게 보고 있다. 챗GPT 같은 AI에 질문을 하면 30초, 1분 내로 답을 쏟아낸다. 우리가 학교에서,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거의 모든 것을 AI가 이미 하고 있고, 조금 있으면 훨씬 더 잘할 것이다. 그걸 밤늦게까지 공부시키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나. 지금까지는 기존 교육제도를 어쩌지 못해 계속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있지만, 조만간 학부모들이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면 정말 하루아침에 한국 교육이 바뀌리라고 본다.”
미래 교육의 역할이 ‘인간의 고유 영역’을 찾는 데 있다고 보는 건가.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방어적으로 생각하기보다 AI를 부려 먹으면서 우리가 재밌게, AI 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AI가 제공하는 걸 향유하자는 얘기다. 그건 아마 분배 문제로도 이어질 텐데, 그때 어떤 방향이 바람직한지 논의하려면 숙론이 필요하다.”
왜 분배인지, 왜 숙론을 해야 하는지 반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스티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와 오래전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핑커 교수와 나는 ‘AI는 지능도 아니다’라는 데서 생각이 같았다. 영어로 지능을 뜻하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다. AI의 ‘I’에 해당하는 ‘Intelligence’, 그리고 ‘Intellect’다. 당시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내가 핑커 교수에게 ‘자 봐, 우리가 AI라고 할 때 Intelligence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AI 출력값이 그저 지식에 입각한 단순 판단, 결론이기 때문이야’ 이러면서 설명을 했다(웃음). 우리말로 이 두 단어를 옮기자면 전자는 ‘지능’, 후자는 ‘지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AI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머리가 좋고 아는 게 많은 쪽이 아니라, 어떤 품격을 갖추는 쪽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AI는 알면서도 져주는 일은 죽어도 못할 것이다. 기꺼이 양보하고 공유하는 선택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은 아니다. 어린아이만 봐도 형이 뻔히 이길 수 있는데 동생한테 져주는 선택을 한다. 지금 내가 지는 게 훗날 전체를 위해 더 좋은 일이라고 판단해 한 번쯤 지고 넘어가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게 인간과 AI가 구분되는 지점이고, 앞으로 교실에서 교사는 학생들의 이런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극대화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 합리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떼쓰고 힘으로 눌러서 이겨 먹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회로 갈 거라고 본다. 다양성은 정말 어려운 가치다. 최대한 받아들이고도 이견이 있는 부분은 서로 좁혀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미국에서 15년 동안 살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미국인은 개별로 보면 한국인보다 더 다혈질인데, 모여 있으면 훨씬 차분해진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얘기를 하네’라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겪고 그들과 섞이면서 그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내성을 길렀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걸 못하는 건 유독 다양성이 결여돼 있어서라기보다 경험치가 부족해서다. 배움의 속도가 워낙 빠른 민족이니 조금만 노력하면 곧잘 할 거라고 생각한다.”
통섭, 숙론, 올해 양심까지 다양한 교육적 화두를 던졌다. 한국 교육과 관련해 생각하는 다음 키워드가 있다면.
“방금 언급한 다양성이 내년 주제어가 될 거 같다. 나는 평생 생물 다양성을 연구해온 사람이다. 자연계에서 다양성은 무척 당연하다. 다양하게 진화해야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모사피엔스라는 종(種)만은 다양성을 싫어하고 불편해한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관찰 결과다.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회의를 안 하는 회사는 없다. 그런데 회의를 왜 하나. 다양한 목소리를 한목소리로 통일하기 위해 회의를 한다. 다른 목소리를 없애고 하나로 질서정연하게 결집해야 속이 시원하다. 분명 호모사피엔스도 자연의 일부인데, 이들은 왜 다양성을 거스를까, 이게 혹시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하면서 궁리해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숙론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다양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함몰해가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아크로폴리스를 열어서 계속 상대 의견을 듣고, 조선 임금들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대부들을 모아서 경연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인류 역사상의 노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의 지도를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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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입시로 귀결되는 현 교육으로는 AI 시대에서 절대 살아남을 수 없다”며 “조만간 상당히 근본적인 교육 개혁이 몰아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누가 옳은가’를 다투는 토론 대신 상대에게 귀 기울이고 ‘무엇이 옳은가’를 찾아가자는 숙론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는 교육 환경이 갖춰지리라고 전망했다. 생물학자인 최 교수는 ‘숙론’(2024), ‘최재천의 공부’(2022) 등 교육 관련 서적을 다수 출간했다. 다음은 6월 2일 그와 나눈 일문일답.
미래 교육, 지능 아닌 지성 극대화해야
교육 개혁, 말뿐인 상태로 오랜 시간이 지났다. 어떻게 확신하나.“이제 우리 눈으로 너무나 명확하게 보고 있다. 챗GPT 같은 AI에 질문을 하면 30초, 1분 내로 답을 쏟아낸다. 우리가 학교에서, 학원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거의 모든 것을 AI가 이미 하고 있고, 조금 있으면 훨씬 더 잘할 것이다. 그걸 밤늦게까지 공부시키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어디 있나. 지금까지는 기존 교육제도를 어쩌지 못해 계속 아이들을 혹사시키고 있지만, 조만간 학부모들이 깨닫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러면 정말 하루아침에 한국 교육이 바뀌리라고 본다.”
미래 교육의 역할이 ‘인간의 고유 영역’을 찾는 데 있다고 보는 건가.
“‘인간만의 영역’이라고 방어적으로 생각하기보다 AI를 부려 먹으면서 우리가 재밌게, AI 위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찾는다고 생각하면 좋겠다. AI가 제공하는 걸 향유하자는 얘기다. 그건 아마 분배 문제로도 이어질 텐데, 그때 어떤 방향이 바람직한지 논의하려면 숙론이 필요하다.”
왜 분배인지, 왜 숙론을 해야 하는지 반문이 나올 수 있을 것 같다.
“스티븐 핑커 미국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와 오래전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핑커 교수와 나는 ‘AI는 지능도 아니다’라는 데서 생각이 같았다. 영어로 지능을 뜻하는 단어는 크게 두 가지다. AI의 ‘I’에 해당하는 ‘Intelligence’, 그리고 ‘Intellect’다. 당시 영어가 모국어도 아닌 내가 핑커 교수에게 ‘자 봐, 우리가 AI라고 할 때 Intelligence라는 단어를 쓰는 이유는 AI 출력값이 그저 지식에 입각한 단순 판단, 결론이기 때문이야’ 이러면서 설명을 했다(웃음). 우리말로 이 두 단어를 옮기자면 전자는 ‘지능’, 후자는 ‘지성’이라고 말하고 싶다. AI 시대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머리가 좋고 아는 게 많은 쪽이 아니라, 어떤 품격을 갖추는 쪽이어야 한다는 뜻이다.
AI는 알면서도 져주는 일은 죽어도 못할 것이다. 기꺼이 양보하고 공유하는 선택을 기대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람은 아니다. 어린아이만 봐도 형이 뻔히 이길 수 있는데 동생한테 져주는 선택을 한다. 지금 내가 지는 게 훗날 전체를 위해 더 좋은 일이라고 판단해 한 번쯤 지고 넘어가는 경우가 분명히 있다는 얘기다. 이런 게 인간과 AI가 구분되는 지점이고, 앞으로 교실에서 교사는 학생들의 이런 지극히 인간적인 면을 극대화하고자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6월 2일 인터뷰에서 “인공지능(AI) 시대에 걸맞은 미래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나와 다른 사람 겪고 섞이는 경험 중요
학교에서 숙론 교육이 이뤄지는 미래 사회는 어떤 모습일까.“일단 합리적인 사회가 될 것이다. 떼쓰고 힘으로 눌러서 이겨 먹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회로 갈 거라고 본다. 다양성은 정말 어려운 가치다. 최대한 받아들이고도 이견이 있는 부분은 서로 좁혀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미국에서 15년 동안 살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미국인은 개별로 보면 한국인보다 더 다혈질인데, 모여 있으면 훨씬 차분해진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나라면 상상도 못 할 얘기를 하네’라는 사람들을 가까이에서 겪고 그들과 섞이면서 그게 이상하다고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내성을 길렀기 때문이다. 한국이 그걸 못하는 건 유독 다양성이 결여돼 있어서라기보다 경험치가 부족해서다. 배움의 속도가 워낙 빠른 민족이니 조금만 노력하면 곧잘 할 거라고 생각한다.”
통섭, 숙론, 올해 양심까지 다양한 교육적 화두를 던졌다. 한국 교육과 관련해 생각하는 다음 키워드가 있다면.
“방금 언급한 다양성이 내년 주제어가 될 거 같다. 나는 평생 생물 다양성을 연구해온 사람이다. 자연계에서 다양성은 무척 당연하다. 다양하게 진화해야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호모사피엔스라는 종(種)만은 다양성을 싫어하고 불편해한다. 참 이해하기 어려운 관찰 결과다.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회의를 안 하는 회사는 없다. 그런데 회의를 왜 하나. 다양한 목소리를 한목소리로 통일하기 위해 회의를 한다. 다른 목소리를 없애고 하나로 질서정연하게 결집해야 속이 시원하다. 분명 호모사피엔스도 자연의 일부인데, 이들은 왜 다양성을 거스를까, 이게 혹시 지금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문제의 핵심이 아닐까 하면서 궁리해보고 있다. 어떤 면에서는 숙론과도 맥락이 닿아 있다.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두면 다양성을 줄이는 방향으로 끊임없이 함몰해가기 때문에 소크라테스가 아크로폴리스를 열어서 계속 상대 의견을 듣고, 조선 임금들이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대부들을 모아서 경연을 한 게 아닌가 싶다. 이러한 인류 역사상의 노력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의 지도를 펼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