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시선이 미국으로 쏠리고 있다. 미국 정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예상일이 6월 1일로 다가온 가운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의 부채 한도 증액 요구를 공화당이 받아들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2021년 12월 의회에서 통과된 법정 한도(31조4000억 달러·약 4경1627조 원)는 이미 올해 1월 초과된 상태다. 미 재무부는 현재 공공분야 투자를 지연하거나 정부 보유 현금을 가용하는 등의 조치로 위기를 넘기고 있지만 5월 미 의회에서 부채 한도가 증액되지 않으면 디폴트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 [홍태식]
정부와 기업, 가계 모두 돈 없는 미국
물론 실제 미국이 국가부도 사태를 겪을 것이라고 보는 이는 거의 없다. 거시경제 전문가인 김영익 서강대 경제대학원 교수는 “지금 공화당이 정부 지출을 줄이면 부채 한도를 올려주겠다는 입장이라서 합의에는 이를 것”이라고 말한다. 다만 “정부 예산이 삭감되면 가계소비 감소, 기업 매출 감소, 기업 이익 감소 등이 이어져 주가가 급락하는 등 미국발(發) 충격이 일어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김 교수에게 2011년에 이어 두 번째로 발생한 미국 국가부도 위기 사태의 원인과 해결책, 달라지는 경제환경에 맞는 투자전략에 관해 물었다.세계 최대 경제대국 미국과 디폴트 위기라는 조합은 어울리지 않는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을 때 미국은 사태 해결을 위해 엄청난 돈을 풀었다. 그 여파로 국가 부채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98%까지 증가했고 2011년 8월 미국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가 미국 국가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한 단계 떨어뜨리면서 대혼란이 일어났다. 그것이 미국의 첫 번째 위기였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2020년 코로나19 사태가 발행하자 각국 정부가 돈을 풀어 경기침체를 막았는데 미국의 경우 지난해 국가 부채가 GDP 대비 123%까지 치솟았다. 그동안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를 엄청나게 발행했는데 지금 이자를 주기도 어려운 상황이 온 것이다. 사실 국가 부채만 보면 미국보다 일본(GDP 대비 230%)이 훨씬 심각한데, 일본은 지난 10년간 국채금리가 0% 수준이라 견딜 수 있었다. 미국은 지금도 10년물 국채금리가 3.5% 안팎이다.”
세계가 코로나19 팬데믹은 극복했지만 그 후유증은 커 보이는데.
“역사적으로 이렇게 모든 경제주체가 부실해진 것은 처음이다. 앞서 말했듯이 정부는 경기부양을 위해 돈을 너무 많이 쓰면서 큰 빚을 지게 됐고, 기업과 가계는 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 저금리로 돈을 빌려 쓰다 많은 빚을 안게 됐다. 더욱이 저금리는 주식, 채권, 부동산 등 모든 자산에 거품을 발생시켰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발생한 모든 경제주체의 부실, 모든 자산의 부채 상승이 현재 세계 여기저기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미국의 디폴트 위기는 한국을 비롯한 세계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치나.
“미국은 GDP에서 소비 비중이 71%일 정도로 경제가 소비 중심으로 성장하는 나라다. 그런데 코로나19가 유행하는 동안 사람들이 돈을 너무 많이 써버려서 지난해 가계 저축률은 3.7%를 기록했다. 200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해 3월부터 시작된 금리인상 여파가 1년가량 시차를 두고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미국 가계는 이제부터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다. 가계가 소비를 줄이면 기업 매출이 둔화하고 기업 이익이 감소하면 주가가 급락하는 문제가 일어난다.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금융시장이 큰 충격을 받을 것이다. 2011년 미국 신용등급이 떨어졌을 때는 코스피가 한 달 사이 20% 떨어졌다.”
미국에서 빠져나온 돈, 유럽과 아시아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 하원에 정부 예산 삭감 없는 부채 한도 증액을 요구하고 있다. [뉴시스]
“미국은 코로나19 극복을 위해 양적완화라는 이름으로 돈을 풀었다가 지난해부터 인플레이션 때문에 양적긴축을 단행하며 물가를 잡으려고 노력 중이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더 풀면 하이퍼인플레이션(통제 불능의 인플레이션)이 발생한다. 그래서 공화당은 미국 정부에 재정긴축을 요구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공화당의 요구가 바이든 정부의 경제 정책 기본 방향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바이든 정부는 ‘중산층 회복을 통한 안정적 성장’을 추구한다. 중산층을 도우려면 정부가 돈을 더 써야 한다. 미국 경제는 내가 보기에도 어려운 상황에 직면해 있다.”
그러면 미국의 앞날은 이제 어떻게 될까.
“국가 부채가 늘어나도 가계와 기업이 소비와 투자를 많이 해 경제가 좋아지고 세금을 많이 거두면 괜찮다. 그런데 미국은 가계부채는 물론, 기업부채도 높은 수준이다. 현재 GDP 대비 49% 정도 되는데 이 또한 역사상 가장 높은 수준이다. 기업은 부채가 많아 투자를 크게 할 수 없고, 가계는 돈이 없어 소비를 할 수 없으니 미국 경제성장률은 계속 낮아질 것이다. 블룸버그 컨센서스를 보면 미국 경제가 지난해 2.1% 성장했는데 올해와 내년에는 각각 1.2%, 0.8%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주요 기관도 내년에는 세계 각국 경제성장률이 올라가는데 미국만 더 내려갈 것으로 내다본다. 이제 미국은 구조적으로 상당히 오랫동안 낮은 성장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으로 2~3년은 과거 평균보다 낮은 1% 안팎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측한다.”
미국이 심각한 경기침체에 빠질 가능성도 있나.
“위기에까지 이를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 경제는 아마도 3분기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 같다. 그렇게 역성장을 해서 수요가 위축돼 물가상승률이 낮아지면 금리인상을 멈출 테고, 4분기까지 2분기 연속 침체에 빠지면 금리를 인하하면서 돈을 풀 것이다. 다만 2008년, 2020년 경제위기 때는 재정정책, 통화정책이라는 무기가 있어 경기가 V자 반등을 했으나 지금은 국가 부채가 많아 과거처럼 돈을 쓸 수 없기 때문에 회복 속도가 느릴 것이라는 의미다.
금융시장에는 외환·채권·주식시장이 있는데 그중 외환시장이 가장 똑똑한 것 같다. 최근 미국 달러지수가 101~103 사이에서 움직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초 114까지 올랐던 걸 생각하면 10% 이상 달러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외환시장에서는 미국 경제가 지금의 5% 금리 하에서는 도저히 지탱할 수 없으니 조만간 달러가치가 떨어질 것이라고 본다는 의미다. 그런 외환시장의 기대감이 하반기부터 현실로 나타날 것 같다.”
미국 경제 전망이 그렇다면 달러나 미국 투자를 줄여야 할까.
“올해 주가를 보면 미국보다 일본과 독일, 프랑스 등 유럽이 훨씬 많이 올랐다. 지금 주식시장에서는 이미 달러가치가 떨어졌지만 앞으로 더 많이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세계 주식형 펀드를 봐도 미국은 지난해 11월 이후 돈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고 유럽이나 아시아, 이머징 마켓에는 돈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돈이라는 것은 굉장히 똑똑해서 수익률이 높은 곳으로 이동한다. 역사적으로 달러가치가 하락할 때는 미국 주가보다 다른 나라 주가가 더 많이 올랐다. 앞으로 10년은 미국 주식을 줄이고 선진국은 일본이나 유럽 주식, 신흥국은 한국이나 중국, 대만, 베트남 주식을 사는 것이 좋다. 지금은 미국 투자 비중을 과감히 줄여야 할 때다. 지금 미국 주식에는 모두 거품이 껴 있다. 미국 증시를 대표하는 S&P500 지수도 최소 10% 이상 과대평가돼 있다. 앞으로 3개월 사이 최소한 10% 이상 주가가 내려갈 것이다.”
중국과 위안화로 거래하는 브라질과 사우디
미국과 갈등 관계인 중국 위안화의 영향력이 커져가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세계 무역 거래에서 달러 비중이 축소되는 만큼 중국 위안화 비중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중국은 세계 최대 원자재 수입국인데 러시아, 브라질, 사우디아라비아 등과 거래할 때 위안화를 쓰고 있지 않나. 최근 통계를 보니 중국이 무역 거래에서 위안화를 49%, 달러를 47% 사용했다고 한다. 위안화를 달러보다 더 많이 사용한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고 큰 변화다. 아마도 원자재를 중국에 수출하고 위안화를 받은 나라들은 그 위안화를 중국에 다시 써야 하니 중국 상품과 금융상품을 사게 될 것이다. 그 대신 중국은 미국과 달리 패권국 지위를 누리지는 않을 것 같다. 미국은 법치를 기반으로 한 자유민주주의를 세계 각국에 적용하려 하지만 중국은 그런 주의를 갖고 있지 않고, 시진핑 국가주석마저 나라마다 다른 상황을 존중해줘야 한다고 말하니 자기들한테 피해만 안 주면 간섭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투자자 관점에서 중국을 어떻게 봐야 하나.
“중국 경제가 그동안 고속성장하며 쌓인 문제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해결돼야 하는데, 정부 차원에서 자체 진행하다 보니 진행 속도가 느리다. 그리고 중국은 정부가 개별 기업에 언제든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이라 개별 기업 투자는 바람직하지 않다. 중국에 투자할 때 아직은 지수나 상장지수펀드(ETF)에 투자하는 편이 낫다. 다만 내가 운용하는 경제 예측 모델에 의하면 미국발 충격으로 7월 전후 주가 조정이 일어날 전망이다. 한국 증시도 이번에 떨어져 조정을 받으면 4분기부터 내년 상반기까지는 계속 오르리라고 본다. 올해 한국 경제가 어려운 것은 맞지만 최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경기선행지수를 보면 상승 기미가 보인다. 따라서 두 가지가 맞물려 주가가 오를 것으로 기대한다.”
2차전지와 반도체 투자 여전히 유효
한국 경제와 관련해 비관적인 뉴스가 많은데 어떻게 경기회복을 기대하나.“2021년 6월을 정점으로 올해 3월까지 하락하던 OECD 경기선행지수가 4월 반등했다. 이게 추세적 반등일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 올해 코스피에서 오른 종목들을 보면 3월, 늦어도 4월이 저점이 될 것 같다고 판단한다. 올해 삼성전자로 대표되는 전기전자와 철강, 자동차 주가가 올랐는데 모두 경기 관련주라는 공통점이 있다. 선행지수 순환 변동치가 오르면 빠르면 4분기, 늦어도 내년 어느 시점에는 경기가 회복된다는 얘기인데 이런 기대감이 주가에 선반영돼 경기 관련주들이 오른 것이다.”
올해 한국 증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에코프로 광풍이었다. 2차전지 관련 투자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지나치게 과열돼 주가가 떨어지기는 했지만 장기적으로 성장 추세라고 생각한다. 나도 에코프로 주식을 보유하고 있다가 너무 올라 매도했는데, 주가가 떨어지면 다시 살 생각이다. 만약 지금 전기차 세계 시장점유율이 60%라면 전기차 관련 주식은 안 산다. 하지만 이제 10% 남짓이니 앞으로 갈 길이 멀고 성장 가능성도 크다. 2차전지와 관련해 소부장 투자를 생각하고 있다면 위험한 개별 기업 투자보다 수익률은 좀 낮더라도 2차전지 ETF 투자를 권한다.”
반도체는 어떻게 될까.
“아마 2분기까지는 삼성전자 실적이 별로 안 좋을 테지만, 선행지수가 회복되면 반도체 경기는 회복될 거라서 내년에는 다시 연간 흑자로 돌아설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 주가가 6만8000원까지 올랐는데 미국 주가가 떨어지고 코스피가 조정을 보이면 삼성전자 주가도 조정받을 수 있다. 그때가 다시 살 때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 경기 순환 사이클에 따라 고점에 이른 주식을 모두 팔고 현금을 보유 중인데, 이번에 조정 양상이 나타나면 다시 사려고 한다.”
장기투자를 하지 않는 것인가.
“내가 주말이면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는데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이 있다. ‘씨앗은 뿌리는 시기에 뿌려야 하고, 작물은 수확하는 시기에 거둬야 한다’는 것이다. 이 원칙을 어기면 싹이 나지 않거나 작물이 썩는다. 경기는 순환주기가 있어 오르고 내리고를 반복한다. 투자는 경기가 바닥일 때 들어가 고점에 근접했을 때 매도해야 수익이 난다. 장기투자에 나섰다가 잘못 하면 큰돈을 잃을 수 있다.”
이한경 기자
hklee9@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한경 기자입니다. 관심 분야인 거시경제, 부동산, 재테크 등에 관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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