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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때문”

유력 대권주자 ‘반기문’의 진짜 하차 이유는?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팀 기자 mshue@donga.com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때문”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때문”

[뉴시스]

“이 같은 저의 순수한 애국심은 인격 살해, 가짜뉴스로 인해 정치교체 명분이 실종됐습니다.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를 남김으로써 결국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쳤습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이 같은 이유로 대통령선거(대선) 불출마 의사를 밝히고 측근들과 최후의 만찬을 가진 뒤 서울 사당동 자택으로 되돌아왔다. 그 시간은 2월 1일 밤 9시 30분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은 그는 자신을 기다린 기자들에게 “오늘 새벽에 아내와 심각하게 논의하고 결정했다”면서 “소박하게 시작해 소박하게 끝난 것”이라며 정치 무대 퇴장 소감을 다시 밝혔다.

이날 각종 언론은 유력한 보수 후보의 사퇴 이유로 지지율 정체와 그가 추진한 조기 개헌 및 제3지대론에 대한 호응 부족 등 외부적 사안을 주로 꼽았다. 그러나 반기문 캠프 주위에선 오히려 그의 친인척과 측근을 대상으로 한 언론 및 정치권의 본격적인 검증 공세가 반 전 총장을 주저앉혔을 것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됐다.

특히 반 전 총장의 정치적 고향이나 다를 바 없는 외교부가 최순실 게이트 여파로 쑥대밭이 된 현실이 그의 행보에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에도 힘이 실린다. 마침 사퇴 발표 전후로 주미얀마 한국대사가 특별검사 수사팀에 불려가 조사를 받고, 한국국제협력단(코이카)의 정부개발원조(ODA) 자금까지도 도마에 오른 상황.

그러나 거론된 논란이 대개 정치인이라면 한 번쯤 거칠 수밖에 없는 사안이고, 반 전 총장 본인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적은 탓에 오히려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 결국 짧은 시간 내 빠르게 누적된 검증 부담감이 평생을 ‘꽃길’만 걸어온 엘리트 관료의 정계 진출을 좌절시켰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여의도 관계자는 여러 이유가 결합된 ‘반기문 해프닝’을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하나 때문”이라고 요약했다. 과연 그를 짓누른 ‘마지막 짐 하나’는 무엇이었을까.





선거 無경험, 부실한 친인척 관리

“관료와 정치인의 결정적 차이는 ‘대중 눈높이’에 맞는 측근 관리입니다. 반 전 총장은 적어도 유엔 사무총장 1기(2011년 말)까지 정치할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눈치였습니다.”

반 전 총장을 근접에서 취재한 한 기자는 그가 본인 관리에는 철저했을지 몰라도 친인척 및 측근 관리에는 실패한 것이 낙마의 주된 원인이라고 해석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아들 반우현(44) 씨의 미국 뉴욕 이주 건이다. MIT 공대를 나와 카타르 도하은행에서 일한 우현 씨는 2011년 1월 SK텔레콤 뉴욕사무소 직원으로 채용됐다. 그가 일한 사무실은 아버지가 있는 유엔 본부와 같은 맨해튼 미드타운이스트에 위치해 도보로 15분가량 걸릴 만큼 가까웠다. 우연인지, 호의인지 구분하기 어렵지만 결과적으로 반 전 총장의 가족이 집값이 비싼 맨해튼에서 함께 살 수 있게끔 한국 대기업이 지원한 모양새가 됐다. 도덕성 논란으로 이어질 만한 사안이다.

한국인이 아니여서 논란은 비켜갔지만, 유네스코에서 일한 경력을 지닌 둘째 딸의 인도인 사위가 유엔 고위직에 임명된 점 역시 유엔 내에서 정실 인사 논란을 불러온 바 있다. 대선에 관심 없던 반 전 총장이 친인척 관리에 무관심했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동안 반 전 총장은 “1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장성한 동생들이 하는 사업은 잘 모른다”고 선을 긋는 발언을 해왔다. 하지만 반 전 총장 친인척들의 미심쩍은 행보는 대선 출마가 가시화되면서 본격적인 검증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

반 전 총장의 한국 내 대리인 역할을 해온 남동생 기상(71), 기호(63) 씨에게서 먼저 경고음이 울렸다. 반 전 총장의 ‘대선 출마설’이 나돌 때마다 앞장서 언론을 향해 사실이 아니라고 대변했던 기상 씨의 행보가 문제였다.



동생 기호 씨의 미얀마 사업 논란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때문”

사기와 뇌물 혐의 등으로 미국 검찰에 의해 기소된 조카 반주현 씨. 경남기업 상임고문 등으로 활약한 동생 반기상 씨. 미얀마에서 전력 및 부동산 사업을 벌인 동생 반기호 씨(왼쪽부터). [JTBC 뉴스화면 캡처]

충청권 유력 정치·경제인 모임인 ‘충청포럼’을 이끌던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은 반 전 총장이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된 직후인 2007년 기상 씨를 경남기업 상임고문으로 영입했다.

경남기업 고위 관계자들은 “은행원 출신인 기상 씨는 건설업에 전문성은 없었지만 반 전 총장을 대신해 한국에 계신 노모를 잘 모시라는 취지로 채용한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정년퇴직 나이인 그의 취업이 능력과는 큰 관련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의 역할이 사실상 로비스트임은 뉴욕검찰의 수사에서도 드러났다. 1월 1일 뉴욕검찰이 공개한 공소장에 따르면 기상 씨와 그의 아들 주현 씨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8억 달러(약 9408억 원)짜리 건물 ‘랜드마크72’의 매각 업무를 진행하면서 현지는 물론, 미국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내용이다. 2013년 3월부터 2015년 5월까지 비리와 자금세탁 등 범법행위를 저지른 혐의다.

아무리 유력 대선후보에 대한 검찰의 수사 칼날이 무뎌지고 본인의 책임이 없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무엇보다 반 전 총장과 성 전 회장의 오랜 인연을 감안하고, 유엔 사무총장의 지위를 고려하면 정치적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는 사안.

이 밖에도 친인척을 향한 정치권과 언론의 날 선 취재 공세는 반 전 총장이 미처 예상치 못했을 정도로 거셌다는 후문이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을 비롯한 야당 측으로는 반 전 총장 친인척들의 일제강점기 시절 행적을 고발하는 제보가 충북 음성 등에서 들어오기 시작했고, 반 전 총장의 사돈의 팔촌 병역 자료까지 수집됐다. 실제 기상 씨의 아들 주현 씨는 유엔 건물을 관리하는 뉴욕 한 회사에서 일한 것으로도 모자라 10년 이상 병역을 기피했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큰삼촌의 처지를 매우 난감하게 만들었다. 이외에도 가까운 친인척 조카들도 일부 병역을 기피한 것으로 알려져 “선거를 위한 친인척 관리가 전혀 안 된 인물”이라는 평이 여의도에 나돌기도 했다.

둘째 동생인 기호 씨의 수상쩍은 국제 행보도 검증 대상에 오를 수밖에 없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동남아지역 외교관들과 엮인 문제인 탓에 폭발력이 적잖았다.

손해보험협회에서 20년 이상 평범하게 직장인 생활을 하던 기호 씨는 2004년 큰형이 외교통상부 장관에 오르고 이어 유엔 사무총장까지 되자 직업이 극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2009년 중소전력장비회사 KD파워의 부사장과 해외영업대표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중견기업 관리자가 중소업체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은 흔한 일이지만, 문제는 영입된 직후 미얀마를 중심으로 한 해외사업 부문을 총괄하는 자리로 옮겼다는 점이다.



지나친 ‘美·日 중시 외교론’이 발목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때문”

2013년 8월 서울 롯데호텔에서 중국 화안그룹 회장 부인을 만난 반기문-기상 형제(왼쪽부터). 동생 사업에 대해서는 모른다 발언과 상반되는 모습이라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출처·화안그룹 홈페이지]

2011년 당시 테인 세인 미얀마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개혁·개방에 나섰다. 미얀마는 유엔을 비롯한 전 세계 각국이 가장 관심을 가지고 투자하는 지역으로 발돋움했다. 하필이면 유엔 고위직의 친동생이 이 지역의 전력 사업 및 부동산 등을 개발하는 회사를 대표하는 자리로 갔다는 것은 충분히 의혹을 살 수 있는 대목이다.

게다가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과 함께 자리를 옮긴 회사인 보성파워텍 역시 해외사업의 주요 거점이 미얀마였다. 살아온 이력과 전혀 다르게 어째서 미얀마일까 하는 의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하필 보성파워텍의 창업자 역시 성완종 전 회장처럼 충청 출신 기업인이라는 점도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이를 근거로 뉴욕 언론 ‘이너시티프레스’는 반 총장이 퇴임하기 직전인 지난 연말 “총장의 동생 기호 씨가 유엔개발계획(UNDP) 미얀마 소장과 함께 유엔대표단의 일원으로 미얀마 산업부 장관을 만난 것은 도덕적 해이의 한 사례로 볼 수 있다”고 지적해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현재 특별검사 수사팀이 최순실 씨의 주미얀마 한국대사 인선 개입과 코이카의 ODA 자금 760억 원으로 추진한 미얀마 케이타운(K-town) 사업을 수사하고 있는 상황. 특검 수사가 어느 범위까지 확대될지는 미지수지만, 미얀마 진출 기업의 수가 한정돼 있고 이들 기업이 추진한 미얀마 부동산 개발 사업이 대사관은 물론 코이카,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코트라)와 함께 진행된다는 점에서 결과적으로 기호 씨가 반 전 총장에게 부담이 됐으리라는 해석도 나온다.

측근 관리 실패와 더불어 반 전 총장의 낙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또 하나의 원인으로 ‘독도’와 ‘위안부’ 문제로 격화된 ‘반일감정’에 대한 잘못된 계산이 꼽힌다.

한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반 전 총장이 현직에 있을 당시는 한일관계가 꾸준히 개선되는 시점이었고 중국과 관계도 좋았기 때문에 근래 돌아가는 상황을 오판한 측면이 없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반 전 총장은 외교부의 주류인 북미국 출신으로 외교부 고위직을 두루 역임해 어디서나 뚜렷할 만큼 ‘친(親)미국·일본 외교론’을 펼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공·사석을 가리지 않고 한국 국익을 위해서는 일본과 화해, 협력해야 한다는 지론을 피력했다는 후문이다. 문제는 직업외교관이 아닌 대중의 여론을 살펴야 하는 정치인으로 변신하면서 불거졌다.

특히 최근 3주간 전국을 도는 과정에서 기자들과 학생들의 불만이 ‘한일 간 위안부 협상 축전’으로 쏠리자 “나에 대해 상당히 오해하고 있다”며 “더는 위안부 관련 질문을 받지 않겠다”고 분노했다. 심지어 야권에서 희귀 성에 속하는 ‘반씨 집안’의 일제강점기 내력에도 관심을 가지자 한국의 정치현실에 대해 실망감을 넘어 환멸감을 느꼈다는 설명이다.

반 전 총장의 사퇴의 변은 자신을 둘러싼 의혹이 모두 ‘가짜뉴스’라는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지지율 정체와 측근을 향한 검증 공세가 쌓이면서 ‘위인전’에 실릴 만한 인물인 한국인 최초 유엔 사무총장의 이력에 상당 기간 생채기가 남게 됐다.  

‘유엔 사무총장 축전’도 반씨 형제들이 만들었나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때문”

 네팔 정부 고위 관계자에게 전달된 당시 축전 인쇄물. 형식과 내용이 부실하다는 논란이 있었다.

“낙타가 쓰러지는 건 깃털같이 가벼운 마지막 짐 때문”

네팔 룸비니 평화공원 전경

전 세계 수많은 정부, 비정부기구(NGO)가 벌이는 특별한 행사에 단골처럼 등장하는 인물이 바로 유엔 사무총장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등장한 1분 남짓 되는 짤막한 분량의 축하 영상메시지는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 등 온라인에서만 수십여 개 찾아볼 수 있다. 국제기구의 최고 수장인 만큼 유엔 사무총장의 축하메시지를 받기 위한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유엔 주변 외교가에서는 상식에 속한다.

반 전 총장의 축전 및 축하메시지 전달과 관련해 그의 친동생들이 이 과정에 개입했다는 정황이 ‘주간동아’ 취재 결과 처음 포착됐다.

2012년 2월 네팔의 대통령, 총리, 국회의장을 포함해 최고위급 정부 요인들에게 빠짐없이 전달된 당시 반 사무총장의 축전(사진)이 바로 그것이다. 당시 행사의 핵심 관계자들과 불교계 인사들은 “반 사무총장의 동생이 이번 행사를 위해 축하 영상 및 축전을 약속해 당시 행사가 진행됐다”고 입을 모았다. 더 큰 문제는 유엔 사무총장의 축전 형식이나 내용이 어설프고 부실해 그 진위마저 의심케 한다는 점이다.

2012년 네팔 룸비니 행사 축전 ‘의혹’

인도와 네팔 국경에 있는 룸비니는 싯다르타 고타마가 태어난 불교계의 대표 유적지 가운데 하나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이 도시에서 2012년 2월 15일 한국 불교계의 작지 않은 행사가 열렸다. 행사 주최 측은 당시 조계종 소속인 한 순례기도회. 당시 행사는 여러 언론보도와 더불어 지상파 TV 다큐멘터리를 통해 국내에도 널리 알려진 바 있다.

눈길을 끈 점은 한국 불교단체가 벌인 행사에 힌두교 국가이자 공산주의자가 상당수인 네팔의 고위 정부 요인이 대거 참석했다는 점. 바부람 바타라이 네팔 총리는 “룸비니에서 벌어지는 국제적인 협력은 세상만물에 평화와 자비의 메시지를 전할 것”이라 말했고, 수바스 넴방 국회의장은 “반 총장도 룸비니를 세계평화연구의 중심지로 개발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언급했다. 전례 없이 커진 행사에 대해 당시 네팔 교민사회는 “당시 반 총장의 축전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고 입을 모았다.

네팔 정부의 환대는 입국에서부터 출국 때까지 계속됐다. 기알왕 드룩파 린포체(티베트 불교의 영적 지도자)가 공항으로 영접을 나왔고, 람 바란 야다브 전 대통령을 비롯해 총리, 제헌국회 의장 등이 모두 한국에서 온 불교계 관계자들을 초청해 면담을 갖기도 했다.

당시 행사가 진행되기 수일 전 네팔 정부 고위관료들에게 반 총장의 축전이 빠짐없이 전달됐다. 행사 당일에는 A4 크기의 20여 쪽 책자로 묶여 행사장에 비치되기도 했다. 행사 당일 반 총장의 영상 축사가 예정됐지만 영상이 도착하지 못해 ‘축하메시지’로 갈음한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당시 행사 직전 도착한 반 총장의 축전은 도장과 서명이 매우 부실해 반 총장이 실제 보낸 것이 아니라 동생들이 임의로 만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일었다. 불교계와 인연이 깊은 반 전 총장의 동생들이 이 행사를 돕고 있다는 증언이 여러 곳에서 나오고 있다.

순례기도회 측에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묻자 “행사 전체적으로 반 전 총장이나 친인척의 도움을 받은 적이 전혀 없다”고 답해왔다. 기상 씨와 기호 씨는 확인 연락이 닿지 않았다.





주간동아 2017.02.08 1074호 (p12~15)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허만섭 동아일보 신동아팀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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