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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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영공 방어 수주 유력한 ‘한국형 패트리엇’ 천궁

가격·성능·기술이전 등에서 미국·유럽 경쟁 모델 압도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3-06-03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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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형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 천궁. [방위사업청 제공]

    한국형 중거리 지대공 유도무기체계 천궁. [방위사업청 제공]

    5월 23~27일 말레이시아 랑카위국제공항에서 ‘리마 에어쇼’가 열렸다. 이곳에서 최근 군비 증강에 힘을 쏟고 있는 동남아시아 각국 바이어를 사로잡기 위해 글로벌 방산기업들이 치열한 판촉 경쟁을 벌였다. 여러 나라 기업들이 참가해 첨단기술을 뽐냈지만, 현지 매체를 사로잡은 것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메이저 무기 공급국 반열에 오른 대한민국이다. 한국은 이번 에어쇼에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를 투입했다. 말레이시아가 개막식 에어쇼를 블랙이글스에 맡겼기 때문이다. 에어쇼 직후 말레이시아 공군 F/A-18 전투기와 블랙이글스 T-50B는 우정 비행을 선보이며 돈독한 관계를 과시했다.

    5월 23일 말레이시아 랑카위국제공항에서 한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에어쇼를 선보였다. [공군 제공]

    5월 23일 말레이시아 랑카위국제공항에서 한국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가 에어쇼를 선보였다. [공군 제공]

    KAI, 말레이시아에 FA-50 18대 수출

    최근 세계 각국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한국 방산기업들은 이번 에어쇼에 사장급 고위 인사를 보냈다. 말레이시아를 비롯한 각국 정부와 군 고위 인사들을 상대로 활발한 판촉 활동을 벌이기 위해서다. 특히 주목받은 기업은 개막식 당일 FA-50M 18대 판매 계약을 체결하고 후속 물량 18대와 곧 시작될 차세대 전투기 사업에 KF-21 참여 의사를 밝힌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다. KAI가 전투기 판매로 수출 교두보를 만들었다면 LIG넥스원과 한화그룹은 말레이시아 공군의 중거리 방공 시스템(MERAD) 도입 사업에 출사표를 냈다. 말레이시아 영공 수호 전력을 ‘메이드 인 코리아’로 수놓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다.

    말레이시아 공군은 노후 전투기 전력 교체와 동시에 방공 전력의 현대화를 꾀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21년 ‘다층 방공망 구축’을 목표로 MERAD 도입 사업을 시작했다. 단순히 공군 차원의 무기 구매가 아닌, 국가 차원에서 실시하는 사업이다. 말레이시아는 2021년 ‘제12차 말레이시아 계획’, 약칭으로 ‘RMK-12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국방력 발전을 위한 일종의 5개년 계획으로, FA-50M 같은 경전투기 구매 사업은 물론, 국가 방공 시스템을 현대화하는 사업도 포함됐다. 당장 확정된 MERAD 도입 사업은 4개 포대 규모다.

    말레이시아가 MERAD 도입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는 중국, 인도네시아의 군사적 위협은 심화되는 반면, 자국 방공망은 너무나 취약하기 때문이다. 현재 말레이시아에는 중·장거리 방공 전력이 없다시피 하다. 영국제 스타스트릭, 스타버스트, 재블린, 러시아제 이글라, 파키스탄제 안자 같은 보병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이 주력이고, 그나마 지대공미사일로서 형태를 갖춘 것은 영국제 구형 레이피어(Rapier) 단거리 방공 시스템 정도다. 모두 사거리 5~8㎞의 단거리 방공 시스템이다. 여기에 제2차 세계대전 시절 유물과 같은 40㎜ 보포스 기관포와 35㎜ 오리콘 기관포 정도가 말레이시아 방공망의 진용이다.

    이 정도 수준의 방공망으로는 휴대용 지대공미사일이나 대공포의 사거리 밖에서 정밀유도무기를 쏘고 빠지는 중국과 인도네시아의 신형 전투기 위협에 대응할 수 없다. 말레이시아 해군이 5척을 도입할 예정인 마하라자 렐라급 호위함에 함대공미사일이 탑재되지만, 사거리 20㎞인 VL-MICA가 16발 탑재되는 수준이라 육상 방공 지원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말레이시아는 수도 쿠알라룸푸르를 비롯해 주요 전략 거점을 지킬 수 있는 MERAD 도입 사업에 나선 것이다.



    중거리 방공망 사업, 한국·미국·유럽 3파전

    말레이시아 정부는 2021년 9월 RMK-12를 확정한 뒤 지난해 각 기업에 자료요청서(RFI)를 발송했다. 어느 기업이 RFI를 받았는지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번 리마 에어쇼에서 MERAD 도입 사업 참여 의사를 표명한 업체는 한국 LIG넥스원과 미국 레이시온, 유럽 MBDA 3곳이다. 그렇다면 어느 회사가 이번 사업의 승자가 될까.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방공 시스템 나삼스(NASAMS). [콩스버그 제공]

    미국이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방공 시스템 나삼스(NASAMS). [콩스버그 제공]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높은 명중률로 맹위를 떨치고 있는 우크라이나군의 나삼스(NASAMS)는 미국 레이시온과 노르웨이 콩스버그가 공동개발한 중거리 방공 시스템이다. 중거리 방공 시스템의 베스트셀러 호크를 대체하고자 개발됐는데, 비용 절감 압박이 컸기에 기존 레이더와 미사일을 통합하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대포병 레이더로 쓰이는 AN/TPQ-36과 AN/MPQ-64를 채택하고 공대공미사일 암람을 활용하고 있다. NASAMS의 명중률이 우수한 이유는 역설적으로 단순함 때문이다. 우선 레이더가 공중 표적을 탐지·추적해 타깃이 날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위치에 요격 미사일을 발사한다. 이후 미사일 내부에 탑재된 소형 레이더가 표적을 찾아 정확히 쫓아가는 방식으로 요격 임무를 수행한다. NASAMS에 적용된 레이더는 이미 성능과 신뢰성이 검증됐고, 미사일도 서방 세계 표준인 암람을 사용하는 만큼 우수한 무기라는 점에 이견이 없다.

    NASAMS는 최근 판매되는 최신형 모델 기준으로 최대 50㎞ 사거리와 35.7㎞ 요격 고도를 자랑한다. 적 항공기는 물론 순항미사일, 드론 등 거의 모든 유형의 공중 표적과 교전할 수 있다. 포대 자체 가격도 저렴한 편이다. 그 덕에 각국의 러브콜이 쏟아지고 있는데 문제는 납기 지연이다. 우크라이나가 NASAMS 물량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면서 공급이 크게 부족해진 가운데 각국의 주문이 몰린 것이다. 지금 주문하면 언제 무기를 받을지 생산업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만, 카타르, 쿠웨이트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전 NASAMS를 주문했지만 미국으로부터 공급 순위 변경을 통보받았다. 이미 계약한 헝가리, 호주의 인수도 지연됐다.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자국군 보유분의 대체 물량을 발주해놓은 미국, 노르웨이, 네덜란드, 리투아니아, 핀란드 등의 주문도 이어지고 있다. 늦은 납기와 함께 기술이전 및 현지 생산이 불가능하다는 것도 NASAMS의 단점이다. NASAMS는 미국과 노르웨이가 공동개발해 이권이 얽인 업체가 많다. 지식재산권 및 수출 승인이 복잡해 호주를 제외한 어느 나라에서도 현지 생산이 승인된 적이 없다. 이번 MERAD 도입 사업에서 말레이시아 정부는 기술이전과 절충교역을 바라는 것으로 알려졌다. NASAMS 공동개발국인 미국과 노르웨이 측이 이른바 ‘정치적 배려’로 이 같은 조건을 수용하지 않는 이상 가장 먼저 탈락할 가능성이 크다.

    5월 23~27일 말레이시아 랑카위국제공항에서 열린 ‘리마 에어쇼’에 참가한 LIG넥스원 부스. [LIG넥스원 제공]

    5월 23~27일 말레이시아 랑카위국제공항에서 열린 ‘리마 에어쇼’에 참가한 LIG넥스원 부스. [LIG넥스원 제공]

    까다로운 기술이전 조건 허들

    또 다른 경쟁자는 유럽 MBDA의 CAMM이다. 최근 폴란드가 저고도 방공 무기로 채택한 이 시스템은 공대공미사일 아스람을 지대공 버전으로 개조한 것이다. 지난해 폴란드는 발사차량 44대와 미사일 수백 발을 19억 파운드(약 3조1000억 원)에 도입했다. 포대당 가격으로 환산하면 2800억 원 정도로 추산된다. CAMM은 기본적으로 사거리 25㎞, 요격 고도 5㎞인 단거리 방공 무기다. 다만 최근 개발 완료 단계인 CAMM-ER은 사거리 45㎞, 요격 고도 10㎞의 중거리 방공 체계로 활용할 수 있다.

    문제는 이 미사일의 가격과 성능이다. CAMM의 요격 미사일 아스람은 당초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표준 단거리 공대공미사일로 개발이 추진됐다. 그러나 각국이 요구하는 성능 조건이 달라 미국, 독일 등 주요 국가가 모두 개발에서 이탈해 결과적으로 영국만 이 미사일을 채택했다. 수요가 급감하다 보니 가격이 폭등했다. 영국군용 아스람은 1발에 90만 달러(약 12억 원), 지대공 버전 CAMM은 기본탄 기준 100만 달러(약 13억2000만 원)라는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같은 등급의 공대공미사일인 미국 AIM-9X가 47만 달러(약 6억2000만 원) 수준인 것과 비교하면 2배 정도 가격이다.

    성능은 어떨까. CAMM 기본탄의 요격 고도는 5㎞, ER 버전 기준으로는 10㎞ 정도다. 그 이상 고도로 접근하는 항공기나 미사일 위협에는 대응할 수 없다. 특히 원형인 아스람은 AIM-9X, IRIS-T 등 경쟁 모델과 달리 추력편향노즐을 채택하지 않아 기동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말레이시아는 중거리 방공 시스템에 전술탄도미사일 요격 능력을 요구할 공산이 크다. 인도네시아가 최근 튀르키예로부터 전술탄도미사일을 구입한 것에 대응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CAMM은 그 원형인 아스람의 기동성 문제로 이 같은 능력을 구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납기 및 기술이전 문제가 발목을 잡는 NASAMS, 가격과 성능 면에서 한계를 보이는 CAMM과 달리, 천궁은 현지 언론도 주목하는 강력한 후보다. 우선 사거리 40㎞ 이상, 요격 고도 15㎞로 타 체계보다 요격 범위가 넓다. 마하(음속) 4에 달하는 속력을 발휘하는 고성능 로켓 모터, 고성능 능동레이더에 힘입은 뛰어난 다목표 동시 교전 능력도 갖췄다. 최근 한국군이 수행한 천궁-2 호환 개량도 높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천궁 시스템은 탄도미사일 요격 능력 강화를 위해 천궁-2 미사일도 발사할 수 있도록 개량됐다. 천궁-2는 전술탄도미사일 요격이 가능한 것은 물론, 사거리 50㎞, 요격 고도 20㎞로 경쟁 모델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미사일 발당 가격은 약 15억 원으로 CAMM-ER과 비슷하지만, 우월한 성능을 감안하면 동일선상에서 비교할 바가 아니다. 엄밀히 따지자면 CAMM-ER이나 NASAMS는 단거리 대공 방어 시스템의 사거리를 약간 늘린 모델이다. ‘한국형 패트리엇’을 목표로 개발된 본격적인 중거리 방공 체계 천궁 시리즈와 같은 체급이 아닌 것이다.

    UAE 도입과 사우디 협상도 호재

    그런 점에서 말레이시아 현지 분위기도 상당히 괜찮은 편이다. 현지 언론을 모니터링해보면 천궁을 조명하는 기사가 자주 등장한다. 반면 CAMM-ER이나 NASAMS는 거의 거론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현지 매체들은 아랍에미리트(UAE)가 천궁-2를 도입했고, 사우디아라비아도 천궁 도입을 위한 막바지 협상을 진행 중이라며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말레이시아가 천궁을 도입할 경우 이미 도입이 확정된 FA-50, 도입이 거론되는 KF-21과 함께 말레이시아 영공 방어를 책임지는 핵심 자산이 될 것이다. 말레이시아가 한국산 무기체계로 공군력을 성공적으로 운용한다면 이를 계기로 동남아시아 다른 나라들의 한국산 무기체계에 대한 관심도 커질 테다. 이번 말레이시아 MERAD 도입 사업에서 천궁의 선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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