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先) 수비, 후(後) 역습으로 요약되는 ‘수동적’ 축구가 점차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팬들은 응원하는 팀이 성적만 내준다면 90분 내내 수비에 치중하는 경기를 펼쳐도 고통을 감수했다. 이제는 그렇지 않다. 이제 팬들은 간간이 역습을 시도하는 수동적·실리적 축구보다 90분 내내 공격 지향적인 경기 운영에 더 큰 흥미를 느낀다. 심지어 소위 실리 추구형 팀들의 성적도 추락하고 있다.
과거에는 경기를 지배하는 ‘능동적’ 축구가 그야말로 강팀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중위권이나 중상위권에는 선수 구성이 괜찮으면서도 공격보다 수비에 초점을 맞춘 팀이 많았다. 이런 팀은 전술적 짜임새와 개인 역량 모두 필요한 공격 지향적인 경기 운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처지에서 당장은 성적이 중요하니 수비 전술을 견고하게 만들어 실리를 추구한 것이다. 팬 입장에서 수비적인 경기가 지루해도 성적이라는 보상을 기대하고 참아왔던 게 과거 분위기였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도 이번 시즌 감독을 바꾸면서 축구 트렌드 변화에 몸을 맡겼다. 이 팀은 지난 시즌까지 데이비드 모이스 감독이 이끌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명장인 모이스는 2000년대 초반 에버턴 지휘봉을 잡고 선 수비, 후 역습으로 성과를 냈다. 그 결과 알렉스 퍼거슨 후임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 오르기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실패한 후 감독으로 다시 건재함을 알린 곳이 바로 웨스트햄이다. 2017~2018시즌 슬라벤 빌리치 감독 후임으로 중도 부임한 그는 팀을 강등 위기에서 살려냈다. 2019~2020시즌부터 다섯 시즌 동안 좋은 성적을 거뒀고, 2023년에는 UEFA 유로파 컨퍼런스리그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다.
이처럼 웨스트햄은 그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두면서도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바로 모이스의 수비 지향적 축구가 임계점에 다다르면서 팬들의 비판이 거세진 것이다. 6위권을 벗어나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더 공격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때에 따라 선 수비, 후 역습이 여전히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38경기를 치르는 리그에선 상대팀의 더 정교한 공격 전술에 잠식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팀의 리그 순위가 유럽 대항전 진출권에서 벗어나면서 모이스가 남을 명분도 사라졌다.
로페테기는 스페인 출신 감독이지만 스페인 특유의 티키타카, 즉 아기자기한 패싱 게임이 주된 전술은 아니다. 오히려 탄탄한 수비 전술을 만들고 난 뒤 거기에 그 나름 스페인식 패싱 게임을 더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정의하자면 아주 능동적이지도, 그렇다고 아주 수동적이지도 않은 ‘중도’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물론 전임 감독 모이스와 비교하자면 공격 쪽에 가깝긴 하다. 아마 웨스트햄이 △전략·전술을 너무 급진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서도 △유럽 축구와 EPL에 해박하며 △성적도 어느 정도 내본 감독을 물색한 결과가 로페테기가 아닐까 싶다.
감독 교체에 이어 웨스트햄은 이번 이적시장에서 1억4000만 유로(약 2100억 원)를 들여 전력 보강에 나섰다. 기존에도 웨스트햄에는 다른 팀이 탐내는 재러드 보언, 루카스 파케타, 모하메드 쿠두스 같은 준수한 선수가 핵심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여기에 스트라이커 니클라스 퓔크루크, 미드필더 기도 로드리게스, 카를로스 솔레르, 수비수 장클레르 토디보 같은 선수가 새로이 가세하면서 팀 전력이 올라갔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래도 상위권 팀을 위협할 다크호스 후보였지만, 이번 시즌 웨스트햄은 아예 리그 판도 자체를 바꿀 후보로 꼽히고 있다. 이제 변화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오늘도 경기장에서 응원가 ‘I’m forever blowing bubbles’를 열창하는 웨스트햄 팬들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과거에는 경기를 지배하는 ‘능동적’ 축구가 그야말로 강팀의 전유물이었다. 그래서 중위권이나 중상위권에는 선수 구성이 괜찮으면서도 공격보다 수비에 초점을 맞춘 팀이 많았다. 이런 팀은 전술적 짜임새와 개인 역량 모두 필요한 공격 지향적인 경기 운영을 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이런 처지에서 당장은 성적이 중요하니 수비 전술을 견고하게 만들어 실리를 추구한 것이다. 팬 입장에서 수비적인 경기가 지루해도 성적이라는 보상을 기대하고 참아왔던 게 과거 분위기였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훌렌 로페테기 감독 [GETTYIMAGES]
능동적 축구, 더는 강팀 전유물 아냐
하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이 같은 축구 공식을 깨는 팀들이 등장하면서 유럽 리그 판도가 뒤바뀌고 있다. 선수 구성이 아주 뛰어나거나 클럽 규모가 크지 않아도, 혹은 1부 리그에서 역사와 전통이 길지 않아도 능동적인 공격 축구를 시도하는 팀들이 등장한 것이다. 여기에 좋은 성적까지 챙겨가는 돌연변이(?) 팀마저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 때문에 팬들의 축구관이 바뀌기 시작했고, 리그 분위기도 빠르게 전환되고 있다. 이제 성적이 전부가 아닌, 팬들의 눈을 얼마나 즐겁게 만드는지가 각 리그에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추세다. 세계 축구를 선도하는 유럽 빅리그라면 팬들의 요구를 충족하는 게 당연지사다. 시즌 초 설정한 목표를 달성하더라도 공격적인 태도에서 합격점을 받지 못하면 비판받기 십상이다. 그래서 하위권에서도 공격으로 살아남으려는 팀들이 늘어났다. 자연스레 성적이라는 당장의 실리만 추구하는 수동적인 감독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EPL) 웨스트햄 유나이티드도 이번 시즌 감독을 바꾸면서 축구 트렌드 변화에 몸을 맡겼다. 이 팀은 지난 시즌까지 데이비드 모이스 감독이 이끌었다. 스코틀랜드 출신 명장인 모이스는 2000년대 초반 에버턴 지휘봉을 잡고 선 수비, 후 역습으로 성과를 냈다. 그 결과 알렉스 퍼거슨 후임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에 오르기도 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실패한 후 감독으로 다시 건재함을 알린 곳이 바로 웨스트햄이다. 2017~2018시즌 슬라벤 빌리치 감독 후임으로 중도 부임한 그는 팀을 강등 위기에서 살려냈다. 2019~2020시즌부터 다섯 시즌 동안 좋은 성적을 거뒀고, 2023년에는 UEFA 유로파 컨퍼런스리그 우승 트로피까지 들어 올렸다.
이처럼 웨스트햄은 그 나름 괜찮은 성적을 거두면서도 한 가지 고민에 빠졌다. 바로 모이스의 수비 지향적 축구가 임계점에 다다르면서 팬들의 비판이 거세진 것이다. 6위권을 벗어나 높은 곳으로 올라가려면 더 공격적이고 능동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었다. 때에 따라 선 수비, 후 역습이 여전히 좋은 선택지가 될 수 있지만, 38경기를 치르는 리그에선 상대팀의 더 정교한 공격 전술에 잠식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팀의 리그 순위가 유럽 대항전 진출권에서 벗어나면서 모이스가 남을 명분도 사라졌다.
‘중도’ 스타일 감독 로페테기
새 감독을 찾아나선 웨스트햄의 눈에 들어온 인물이 스페인 출신 훌렌 로페테기다. 다른 후보가 거론되기도 했지만 구단은 지난 시즌 종료 후 빠르게 새 감독을 발표했다. 로페테기는 당초 이탈리아 AC 밀란 부임이 유력했지만 밀란 팬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며 행선지가 바뀌었다. 로페테기는 스페인 국가대표 감독 시절 레알 마드리드와 사전계약이 밝혀지면서 2018년 러시아월드컵 개막 하루 전 경질된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다. 스페인 청소년팀은 잘 이끌었지만 프로 레벨에선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던 그는 세비야에서 유로파리그 우승과 챔피언스리그 진출로 능력을 입증했다. 그리고 2022~2023시즌에는 황희찬 선수가 있는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에 부임해 강등 위기에 빠진 팀을 잔류시키기도 했다. 바로 다음 시즌 개막 직전 이적시장에 대한 불만으로 사표를 던졌지만 말이다.
로페테기는 스페인 출신 감독이지만 스페인 특유의 티키타카, 즉 아기자기한 패싱 게임이 주된 전술은 아니다. 오히려 탄탄한 수비 전술을 만들고 난 뒤 거기에 그 나름 스페인식 패싱 게임을 더하는 스타일이다. 굳이 정의하자면 아주 능동적이지도, 그렇다고 아주 수동적이지도 않은 ‘중도’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물론 전임 감독 모이스와 비교하자면 공격 쪽에 가깝긴 하다. 아마 웨스트햄이 △전략·전술을 너무 급진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서도 △유럽 축구와 EPL에 해박하며 △성적도 어느 정도 내본 감독을 물색한 결과가 로페테기가 아닐까 싶다.
EPL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의 재러드 보언. [GETTYIMAG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