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4월 16일 오후 12일간의 중남미 순방에 오르기 직전 청와대에서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오른쪽)와 단독으로 만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임기 3년 차에 치른 이번 4·29 재·보궐선거(재보선)는 시기적으로 박 대통령에 대한 ‘중간평가’적 성격이 강했다. 그러나 서울 관악을, 경기 성남중원, 인천 서강화을 등 전국 민심의 표본이라 할 수 있는 수도권 3곳에서 치른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후보가 모두 승리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새누리당과 현 정부는 중간평가를 무사히 통과한 셈이 됐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2015년 새해 벽두 연말정산 파동으로 ‘유리지갑의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증세 없는 복지’에 대한 회의론이 거세게 제기되면서 대통령의 공약 이행에 대한 의구심이 커질 때만 해도 여권에는 재보선 패배에 대한 위기감이 팽배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재보선 초반 터져 나온 ‘성완종 리스트’라는 악재 앞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고 보란 듯이 재보선 승리로 ‘회복 탄력성’을 입증했다.
이번 4·29 재보선은 야권 후보가 난립하면서 집권여당과 정권에 대한 중간평가 측면보다 오히려 야권에 대한 심판의 성격이 더 강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여론분석센터 부소장은 “4·29 재보선 결과에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요인은 야권 분열”이라며 “유권자가 여권을 심판하려면 여권을 대체할 대안이 필요한데, 야권 분열로 대체세력이 나뉘면서 여권에 반감을 가진 유권자 표심이 야권으로 가지 못하고 선거 포기, 또는 기권으로 나타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 관악을의 경우 제3신당을 추진하는 정동영 전 의원이, 광주 서을에서는 무소속 천정배 후보가 나서 1여2야 대결구도가 만들어진 것이 직접적 패인이라는 것. 그러나 구도 못지않게 인물 경쟁력이 약했다는 지적도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기본적으로 우리나라 선거 지형이 보수 쪽에 유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 같다고 하는데, 이번 4·29 재보선의 경우 선거 지형뿐 아니라 인물 경쟁력에서도 여당 후보에 비해 야당이 떨어진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4·29 재보선에서 여권이 압승을 거둘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으로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교훈을 당청이 몸소 실천한 점을 들 수 있다.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여파로 이완구 국무총리가 사퇴해야 하는 상황에 이르는 동안 여권이 불협화음을 일으키지 않고 질서 있는 모습으로 수습한 것이 재보선 결과에 긍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다.
새누리당 한 재선의원은 “성완종 리스트가 자칫 당청 갈등으로 비화하거나 친박(친박근혜) 대 비박(비박근혜)의 갈등으로 확대될 수 있었다”며 “순방을 떠나기 전 박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가 면담한 이후 ‘위기의 공유’가 이뤄져 차분하게 대응한 것이 긍정적인 재보선 결과로 이어졌다”고 평가했다.
이번 재보선 승리로 박 대통령은 국정운영의 동력이 약화하는 것을 당분간 막을 수 있게 됐다. 박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표류하던 국정운영을 7·30 재보선 승리를 계기로 다잡아 국가개조론과 공무원연금개혁 등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건 바 있다. 이번 4·29 재보선 이후 박 대통령이 다시 한 번 신발 끈을 고쳐 매고 개혁드라이브를 강하게 걸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또한 재보선을 진두지휘한 김무성 대표 역시 명실상부한 유력 차기주자로 발돋움했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이 ‘공멸에 대한 위기감’을 공유하고 한목소리를 낸 결과가 ‘윈윈(win-win)’으로 이어진 것. 이 때문에 4·29 재보선 이후 여권, 특히 당청 간 신(新)밀월관계가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여권의 한 전략통 인사는 “차기를 노리는 김무성 대표가 조급하게 박 대통령과 차별화에 나서지 않고, 인내심을 갖고 공조를 취한 것이 무엇보다 재보선 결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다”며 “박 대통령이 먼저 김 대표에게 손을 내민 것도 주효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내년 총선 공천 과정에서는 각자의 길을 가겠지만, 그 전까지는 당청 간 공조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졌다”고 전망했다.
4월 29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 당사에 설치된 선거상황실에서 김무성 대표(오른쪽)가 경기 성남중원에서 승리한 신상진 의원의 사진에 당선 스티커를 붙이며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도 밝은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당선을 축하했다.
김형준 교수도 “지금까지 박 대통령과 김 대표의 관계가 상하관계로 인식돼왔다면, 이번 재보선을 계기로 파트너십으로 격상한 측면이 있다”며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면담을 정례화하는 등 신밀월관계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여권 내부에서는 성완종 리스트로 촉발한 검찰발(發) 정치개혁 드라이브에 당청이 한목소리를 내며 정국 주도권을 확보하려 할 것이란 얘기가 많다. 새누리당 이정현 최고위원은 재보선 결과에 대해 “이번 선거 결과의 의미는 대한민국 현재의 문제를 박근혜 정부에서 끝까지 책임지고 해결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이라며 국민이 믿고 안전하게 사는 나라를 만들고 부정부패를 뿌리 뽑는 것을 국민의 명령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청관계가 순탄치만은 않을 수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그동안 박 대통령의 눈치를 보느라 친박계에 머물러 있던 수도권 인사들이 대거 김 대표와 적극 연대에 나서면서 당내 세력 균형이 급격히 무너질 수 있다는 점에서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번 재보선에서 김 대표는 수도권 선거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입증했다”며 “수도권 친박 의원들이 당장 내년 총선에서 살아남으려면 당권을 쥐고 있는 김 대표와 최소한 협조관계를 형성해야 한다”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대통령보다 김 대표 쪽으로 힘쏠림 현상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정한울 부소장도 “재보선 승리로 박 대통령이 한숨 돌릴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한 의미는 있지만, 임기 말이 될수록 약화되는 대통령의 정국 장악력을 반전할 모멘텀이 만들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이번 재보선은 박 대통령보다 김 대표 주도로 치렀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김무성의 승리이지 박근혜의 승리라고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분간 당청 신밀월관계가 유지된다 하더라도 힘의 균형추는 점점 더 청와대에서 당 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