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성남시 판교에 위치한 송호골프디자인 본사 사무실 앞의 태극기(왼쪽)와 골프장 설계가 송호 송호골프디자인 대표.
500여 개에 육박하는 국내 골프장 중에는 잭 니클라우스, 그레그 노먼, 안니카 소렌스탐 등 유명 선수가 설계한 코스도 많고 로버트 트렌트 존스 주니어, 데이비드 데일, 게리 로저 베어드, 미야자와 조헤이 등 미국과 일본의 전문 설계가가 조성한 코스도 꽤 있다. 1980년대까지는 일본 설계가들이 만든 투 그린의 정원식 코스가 주를 이뤘다면, 90년대 이후에는 미국 설계가들이 만든 원 그린의 토너먼트 스타일 코스가 대폭 늘었다.
한국인 설계가들은 그 사이에서 자생했다. 한국 최초 프로골퍼인 연덕춘 씨는 서울 광진구 어린이대공원 자리에 있던 한국 최초 코스인 서울컨트리클럽(CC)과 제주의 제주CC를 설계했다. 1980년대부터 등장한 임상하, 김명길, 장정원 씨는 군 골프장 조성에 참여한 경험을 살려 국내 코스 설계업을 개척한 전문 설계가 1세대다.
한국인 가운데 가장 많은 코스를 설계했고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를 꼽으라면 송호(58) 송호골프디자인 대표다. 공군 장교로 복무한 후 대림산업과 유신설계에서 토목·설계를 하다 군 복무 시절 상관인 김명길 씨가 창업한 골프코스설계사무소에 합류해 1990년부터 골프 코스 설계를 시작했다. 첫 설계작은 95년 개장한 송추CC다. 골프장이 급격히 늘어나던 2002년 독립해서 자기 이름을 딴 설계사무소를 만들었다.
송 대표의 작품을 보자면 부산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 아시아드를 비롯해 남촌, 프리스틴 밸리, 엘리시안 제주, 메이플비치 골프·리조트, 더스타휴 등 70여 곳이 있는데, 그중 대표작으로 제주의 세인트포 골프·리조트를 꼽는다. 제주의 자연환경을 살리되 전략적으로 코스를 공략하도록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송 대표의 설계 철학은 ‘티샷은 호쾌하고 어프로치샷은 정교하게’다. 페어웨이를 넓게 설정해 드라이버샷은 무난하지만 그린으로 갈수록 벙커가 놓여 있거나 마운드가 가로막아 잘 친 샷만 예리하게 가려낸다.
송 대표는 2012년 국내 설계가들을 모아 대한골프코스설계사협회를 창설하고 초대회장을 맡고 있다. 협회 창설 이유가 남다르다. 종전까지 국내 코스 설계를 한국 지형, 기후, 환경, 문화를 잘 모르는 외국인 설계가들이 상당수 해왔지만 골프 코스는 후손에게 물려줄 우리 자연 문화유산인 만큼 토종 설계가들이 힘을 합치자는 것이다. 주택은 재건축이라도 하지만 약 10만㎡(30만 평)의 광활한 땅에 조성하는 골프장은 한번 만들면 다시 고치기 힘들다. 따라서 후손에게 물려줄 좋은 코스를 만들자는 것이다. 통일 이후 북한에서의 코스 설계 환경을 미리 준비하자는 것도 강령에 넣었다.
지난해 옮긴 경기 성남시 판교 신사옥 입구에 커다란 태극기를 매일 게양하는 건 그런 소신의 표현이다.
“애국심을 가지고 코스를 설계하자는 거죠. 외국인 설계가가 한국 토양과 지리를 깊이 있게 이해하지 못한 채 마케팅만으로 설계를 수주하고 훌쩍 떠나는 관행을 막아야 합니다. 중국이나 아시아로 한국의 뛰어난 설계 기술력을 수출하는 것이 국위선양입니다.”
송 대표는 “한국의 코스 디자인 노하우라면 아시아 골프시장에서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한다. 중국에 5곳, 베트남에 2곳을 설계한 그는 중국에서 열리는 골프박람회에 매번 참가하며 해외 진출의 물꼬를 모색하고 있다. 미국 여자프로골프협회(LPGA) 인터넷 홈페이지 리더보드에서 날리는 태극기가 그의 사옥에서도 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