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센(零戰)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과 공중전에서 위력을 과시했던 일본 주력 전투기다. 미쓰비시 중공업이 개발한 이 전투기는 1000마력 엔진을 장착해 최대 시속 530km, 최대 항속거리 2200km에 달하는 등 당시로선 뛰어난 성능을 자랑했다. 특히 제로센은 ‘가미카제(神風)’라 부르는 자살특공대의 공격에 사용되면서 악명을 떨쳤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사라졌던 제로센이 6월 3일 지바시에서 열린 에어쇼에 등장해 관객 3만5000여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도쿄만 상공을 가로질러 비행했다.
‘적기지 공격론’
이 전투기의 기체는 1970년 남태평양 파푸아뉴기니에서 발견됐는데, 미쓰비시 중공업은 42년 생산된 이 전투기에 캐나다산 엔진을 탑재해 복원했다. 대표적인 전범기업으로 종전 이후 어려움을 겪었던 미쓰비시 중공업은 최근 일본 방위산업체 가운데 가장 잘나가고 있다. 일본 정부가 대대적으로 군사력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미쓰비시 중공업이 현재 심혈을 기울이는 프로젝트는 미국으로부터 도입하는 최신예 스텔스 전투기 F-35A를 조립하는 일이다. 일본 정부는 2011년 차세대 전투기로 미국 록히드마틴이 제작한 F-35A를 선정하고 42대를 들여오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4대를 완제품 형태로 일본에 인도하고, 나머지 38대는 부품을 제공해 일본으로 하여금 직접 조립하게 했다. 일본 항공자위대는 6월 5일 미쓰비시 중공업이 조립한 F-35A 1호기를 처음 공개했다. 항공자위대는 연말부터 F-35A 42대를 아오모리현 미사와 기지에 순차적으로 배치할 계획이다. F-35A가 실전배치되면 일본 항공력은 중국에 버금가는 전력을 구축할 수 있다. 하지만 항공자위대는 중국 인민해방군이 센카쿠 열도(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 등에서 상륙작전을 감행하고자 대규모 병력을 이동시킬 경우 F-35A를 동원해 선제공격할 수 없다. 그 이유는 평화헌법에 따른 전수방위(專守防衛·일본이 공격받은 경우에만 방어 차원에서 반격)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평화헌법 제9조는 전쟁과 국제분쟁 해결 수단으로서 무력의 위협과 행사를 영원히 포기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의 시험발사를 명분으로 내세워 F-35A에 공격용 미사일을 장착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에선 그동안 집권 여당인 자민당을 중심으로 이른바 ‘적기지 공격론’이 제기돼왔다. 적기지 공격론이란 북한이 미사일 등으로 일본을 공격할 것이 명확히 예측되는 경우 일본이 선제공격을 통해 이를 제압해야 한다는 뜻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적기지 공격론에 대해 “다른 수단이 없다고 인정될 경우엔 헌법이 허용한 자위의 범위에 들어갈 수 있다”면서 평화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반면 야당들과 시민사회는 평화헌법 준수를 강조하면서 적기지 공격론을 비판해왔다.
하지만 북한의 ICBM급 미사일 시험발사로 반대 목소리가 작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가 도입을 고려 중인 공대지미사일은 노르웨이 콩스베르그사가 개발한 합동타격미사일(Joint Strike Missile·JSM)이다. 노르웨이는 F-35 전투기 공동개발국이었다. 사거리 300km인 JSM은 열영상 탐색기 등을 갖춰 자동 입력된 표적을 정확히 명중시킬 수 있는 최신예 미사일이다. F-35A는 JSM 2발을 내장 탑재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F-35A는 적의 방공 레이더를 피해 은밀하게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북한 군사기지와 핵·미사일 시설은 물론, 평양 수뇌부까지 타격 가능하다. 일본 방위성은 내년 국방예산 편성 때 공대지미사일 도입 비용을 반영하겠다는 목표다.
일본 정부는 이와 함께 미국으로부터 토마호크(Tomahawk) 크루즈미사일을 들여와 해상자위대 이지스함에 탑재하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을 도입할 경우 일본은 해상에서 북한 전역의 주요 군사시설을 타격 목표에 둘 수 있다. 또 센카쿠 열도를 침공하는 중국 인민해방군을 격퇴하는 데도 유용하다. 인디언이 사용했던 전투용 도끼를 뜻하는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은 현재 미 해·공군의 주력 미사일이다. 크루즈미사일은 탄도미사일과 달리 자체에 제트엔진이 달려 있어 일반 비행기처럼 일정 고도를 유지하면서 날아가 목표물을 타격한다. 지상과 함정은 물론, 항공기에서도 발사가 가능하다.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은 크게 지상용과 함정용이 있고, 재래식 탄두(450kg급)뿐 아니라 핵탄두(200㏏급)도 탑재할 수 있다. 함정에서 발사할 경우 최대 1250km, 지상 발사할 경우 최대 2500km 떨어진 목표물을 시속 880km로 날아가 공격할 수 있다. 무게는 1.4t. 미군이 4월 시리아 정부의 화학무기 사용에 대한 보복 조치로 해군 이지스 구축함에서 시리아 공군기지를 공격한 무기도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이었다. 토마호크 크루즈미사일은 현재 영국, 네덜란드, 스페인 해군이 들여와 운용 중이다.
이지스함 증강 계획도
방패도 강화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북한 탄도미사일 공격에 대비해 이지스함을 대거 증강할 계획도 갖고 있다. 해상자위대는 현재 동해에 해상배치형 요격미사일(SM-3)을 탑재한 이지스함 4척을 배치해놓고 있다. 일본 정부는 4척만으로 북한 탄도미사일 공격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라 기존 이지스함의 요격 성능을 대폭 향상시키고 최신예 이지스함 4척을 추가로 건조, 배치할 계획이다. 북한이 고각발사하는 탄도미사일은 좁은 각도에서 고속으로 낙하해 이지스함이 요격할 수 있는 범위가 그만큼 좁기 때문이다. 미국과 일본은 현재 공동개발한 최신예 해상배치형 요격미사일 ‘SM-3 블록 2A’를 시험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SM-3 블록 2A를 탑재한 이지스함 8척의 방위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입장이다. 록히드마틴과 미쓰비시 중공업이 공동개발 중인 SM-3 블록 2A는 비행속도가 마하 15(초속 4.5km)라 북한뿐 아니라 중국 중거리탄도미사일도 충분히 요격할 수 있을 것으로 평가된다.일본 정부는 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대신 새로운 육상배치형 요격미사일 시스템인 이지스 어쇼어(Aegis Ashore)를 도입할 방침이다. 일본 정부는 그동안 북한의 탄도미사일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더 높은 고도에서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사드 도입을 검토해왔다. 그런데 지금 사드 대신 이지스 어쇼어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는 사드는 최대 요격 고도가 140km인 반면 이지스 어쇼어는 1200km나 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이지스 어쇼어의 사거리가 너무 길어 휴전선 너머에서 날아오는 북한 탄도미사일을 방어하기에 부적합하다. 일본에서는 이지스 어쇼어를 2곳에만 배치해도 전역을 방어할 수 있지만 사드는 6개 포대를 배치해야 한다. 또 이지스 어쇼어는 고정형 발사대 2개에 설치하는 데 7억 달러(약 8000억 원)가 들지만 사드 1개 포대는 10억 달러나 된다. 일본 방위성은 조만간 통합기동방위력 구축 위원회에서 이지스 어쇼어 도입 여부를 최종 결정하고 이에 따른 비용을 내년 국방예산안에 반영할 방침이다.
북한의 화성-14형 시험발사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가운데 일본 정부는 군사력 증강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만들겠다는 아베 총리의 야심을 북한이 도와주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