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희생자를 추모하는 사람들.
여론은 사고 관련 책임자들을 추궁했다. 해양수산부와 해운업계의 유착이 드러났고, 해양경찰(해경)의 늑장 대응은 맹비난을 받았다. 선박 안전점검에 책임이 있는 한국해운조합과 한국선급은 최근 10년 동안 감사원의 감사를 받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세월호 선장은 가장 먼저 탈출해 젖은 지폐를 말렸다. 승선자의 생사 여부는 안중에도 없었다.
의인(義人)도 있었다.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자신은 미처 탈출하지 못한 선원과 경기 안산 단원고 교사들, 소방호스로 자신의 몸을 묶고 승선자들을 구조한 화물차 기사 김동수(50) 씨 등이다. 하지만 이들의 노력이 많은 생명을 살려내진 못했다. 정부의 무능력한 대응에 승선자 476여 명은 차디찬 바다에 내던져졌고 그중 많은 이가 바닷속에서 죽어갔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 사회의 위기관리 부실, 산업비리, 도덕적 해이가 총체적으로 집약된 사고다. 하지만 그것을 깨닫기에 사망·실종자 305명이라는 숫자는 너무 크다. 이들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사고 진상을 규명해 사회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참사의 책임자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해피아’ 수뇌부 사퇴만 하면 끝?
학생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숨진 박지영 세월호 승무원의 장례식. 세월호 사고 현장에서 구조 작업을 하고 있는 잠수사들. 승객 10명을 구조해 ‘의인’으로 불리는 화물차 운전기사 김동수 씨. 아이들을 구하고 자신은 빠져나오지 못해 사망한 양대홍 세월호 사무장의 생전 모습(위부터).
정작 책임자로 지목된 사람들은 각 단체의 실무자들이다. 이들은 대부분 1심 재판을 끝냈고, 일부는 항소해 2심 재판을 진행 중이다. 한국해운조합은 2000여 해운회사들의 모임이다. ‘운항 안전관리’라는 기능은 말뿐이었고 안전 상태가 부실한 선박을 출항시켰다. 해경 간부 출신인 김상철(62) 전 한국해운조합 안전본부장은 선주들에게 금품을 받고 과승 및 과적을 묵인한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됐다. 김 전 본부장은 지난해 12월 1심 재판을 받은 후 한국해운조합에서 사직한 상태다.
세월호 관련 문서 파기 및 증거인멸 혐의를 받은 이모(52) 전 한국해운조합 인천지부장과 팀장급 직원 A, B씨는 여전히 해운조합에 남아 있다. 이들은 1심에서 징역형을 받았으나 2심에서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이 지부장은 경남 통영, A씨는 충남 보령으로 이동했고, B씨는 포항으로 갔다 인천지부로 돌아와 계속 근무 중이다.
해양경찰청은 사고 초기 늑장 대응으로 여론의 질타를 받았다. 새정치민주연합 우원식 의원이 입수한 녹취록에 따르면, 해경은 사고 당일 오전 9시 42분에도 “구조 단계가 아니며 지켜보는 단계”라고 교신했다. 배의 좌현이 40도 기울어져 전복 직전인 상황이었다. 빨리 대처했다면 승선자 대부분을 구할 수 있었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는 이유다.
김석균(50) 전 해양경찰청장은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해 11월 18일 퇴임했다. 정부가 실종자 수색을 공식 중단한 11월 11일에서 일주일 뒤였다. 기자는 김 전 청장과 전화 연결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그의 지인은 “세월호 사고 전에는 퇴임 후 모교인 모 대학에 교수로 부임할 계획이었지만 무산됐다”며 “지금은 공개적으로 활동할 형편이 아니라 집에서 근신 중인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해경 수뇌부와 특정 기업의 유착도 드러났다. 최상환(54) 전 해경 차장과 민간구조업체 ‘언딘 마린 인더스트리’(언딘)의 관계다. 최 전 차장은 언딘으로부터 명절에 수십만 원의 선물을 받고 언딘에 특혜를 준 혐의로 기소됐다. 해경은 지난해 4월 22일 언딘의 바지선 리베로호를 사고 현장에 투입했다. 안전검사를 받지 않아 출항이 금지된 배였다. 바지선인 현대보령호가 리베로호보다 30시간 먼저 사고 현장에 도착해 투입을 기다렸지만 해경 측은 리베로호를 먼저 내보냈다. 최 전 차장은 이날 오전에 이뤄진 실종자 가족 대상 브리핑에서 현대보령호 대기 사실을 숨긴 혐의도 받았다. 그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로 인천지방법원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중이다. 해경 측은 최 전 차장에 대해 “서류상으로는 아직 해경 소속이다. 다만 차장 직위가 해제돼 출근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목포해경 123정 정장 김경일(54) 전 경위는 “수차례 퇴선 안내를 했다”고 허위 주장을 한 혐의로 구속됐다. 김 전 경위는 자기 잘못을 덮으려고 사고 직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퇴선 안내를 했다”고 밝혔고 함선일지 보고서에도 퇴선 방송을 했다고 조작했다. 수사 결과 그의 주장은 거짓으로 드러나 유족들의 울분을 샀다. 그는 2월 열린 선고공판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상태다.
한국선급은 상업용 선박의 품질을 검사하는 민간기업이다. 해양수산부 출신 인사들이 ‘낙하산’으로 포진해 있고, 1970년대부터 국내 선박 검사를 거의 독점하는 기관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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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받는 이들 ‘억울하다’ 항소뿐
폐쇄적인 독점 행태는 참사 이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한국선급은 선박의 차량·화물 고박 배치도를 제대로 검토하지 않은 채 승인한 사실이 알려졌다. 또 세월호의 실제 경하중량보다 63t이 과소평가된 보고서를 승인하고 세월호의 복원성을 실제보다 좋게 기재했다. 한국선급 책임자로는 목포지부 선체검사원 전모(35) 씨가 지목됐다. 전씨는 2013년 2월 세월호가 처음 출항하기 전 배의 복원성 관련 검사항목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안전검사증을 내준 혐의로 구속됐다. 검찰은 1월 전씨에게 징역 2년을 구형했으나 최근 광주지방법원은 전씨의 혐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무죄를 판결했다. 전씨는 한국선급에 복직해 근무 중이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했고 현재 2심이 진행 중이다.
온 국민이 가장 분노했던 대상 가운데 한 명이 선장 이준석(70) 씨다. 그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승객 수백 명을 두고 배에서 가장 먼저 탈출했다. 검찰은 그를 살인·살인미수 혐의로 기소했고, 이씨는 지난해 11월 1심 재판에서 징역 36년을 선고받았다. 그는 여론의 거센 비난에도 법원에 감형을 요청한 상태다. 이씨의 변호인은 “당시 해경이 도착해 해경이 승객을 구조하리라 기대하고 탈출했기에 고의로 승객들이 사망하도록 방치한 것은 아니다”라고 주장하며 “징역 36년 선고가 지나치지 않은지 항소심 재판부가 다시 판단해달라”고 선처를 호소했다. 또 이씨는 2등 항해사였던 김모(47) 씨에게 “무전으로 퇴선 명령을 지시했다”고 했지만 김씨는 “들은 일이 없다”고 주장해 진실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재판부는 4월 7일 열리는 결심 공판에서 재판을 마무리하고 같은 달 28일 선고할 방침이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의 임직원들도 재판을 받는 중이다. 세월호의 안전성 문제를 알면서도 회사 이익을 위해 과적한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김한식(73) 청해진해운 대표 및 임직원들은 세월호가 복원성 기준상 적재 최대치인 1077t보다 1065t 많은 2142t을 적재한 점, 화물을 관련 규정대로 고박하지 않은 점, 청해진해운의 자금을 횡령한 점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김 대표는 1심에서 징역 10년과 벌금 200만 원을 선고받은 상태다. 하지만 그의 변호인은 3월 3일 열린 항소심에서 “보고서와 법정 증언 등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업무상 과실 선박매몰죄’에 대해 무죄를 주장했다.
사고 초기 배에서 황급히 탈출하고 있는 이준석 전 세월호 선장. 세월호 안전점검 미흡·횡령 혐의로 구속된 김한식 청해진해운 대표.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장남 대균 씨. “사건 초기 퇴선 안내를 했다”고 거짓 주장한 목포해양경찰서 123정 정장 김경일 경위(위부터).
유씨와 함께 검거됐던 태권도 사범 박수경(35) 씨. 그는 유씨의 은신을 도운 혐의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지만, 자신의 개인 사정을 들며 선처를 호소한 상태다.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점 깊이 반성하고 있다. 마지막 소원은 평생 꿈꿔왔던 교단에 서는 것인데 꿈을 이루게 도와달라. 금고 이상의 집행유예형이 확정되면 4~5년간 교수 임용이 불가능하다.”
‘의인’은 정작 외면하는 사회
차남 혁기(44) 씨는 도피 중으로 인터폴 공조 수사에도 소재 파악이 되지 않는 상황이다. 장녀 섬나(49) 씨는 지난해 5월 프랑스 파리에서 체포됐지만 프랑스 법원의 송환 판결에 항소한 상태다.
한편 유병언 전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김혜경(53) 한국제약 대표는 60억 원대 횡령 및 조세포탈 혐의 등으로 재판 중이다. 현재 ‘한국기업데이터’에는 한국제약의 올해 법인 신용체크 보고서가 올라와 있고 대표자는 김혜경 씨 명의로 돼 있다. 기자는 한국제약에 “김 대표가 현재 보직 중인 것이 맞느냐”고 문의했지만 한국제약 측은 “알려줄 수 없다”고 짧게 말하며 전화를 끊었다.
세월호 사고 책임자들은 지금도 사회 각계에 포진해 있다. 구속된 이들은 “억울하다”거나 “모두 내 잘못은 아니다”라며 항소하고 있다. 그러면 사고 피해자를 구했던 의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참사 당시 파란색 바지를 입고 피해자 10여 명을 구해 ‘파란 바지 영웅’으로 불린 화물차 기사 김동수 씨. 그는 2월 ‘살기 힘들다’며 자해를 시도했다. 세월호 사고로 화물차를 잃었고 정부가 ‘의상자(義傷者)’로 공식 인정하지 않아 생계가 막막한 상태다. 승선자 구조 활동이 주위 증언에 의해 충분히 입증됐지만, 의상자 지원을 받으려면 부상등급자료 등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다. 그는 지금 경기 안산과 제주를 오가며 ‘외상후스트레스장애’ 치료를 받는 중이다. 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자원과 관계자는 “우리도 심신이 지친 피해자들에게 서류 요청을 하면서 마음 아픈 경우가 많다. 하지만 원칙상으로 지원 신청자가 서류를 제공해야 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과연 우리 사회는 참사 이후 얼마나 달라졌을까. 1년 전 국민은 뜨겁게 분노했고 소비를 멈추며 희생자를 추모했다. 하지만 사회 체제의 개선이 이뤄지기엔 폐습이 고질적이다. 세월호 사고에 대한 사람들의 기억은 약해지겠지만 참사를 부른 악한 제도와 문화는 끈질기게 남을 것이다.
사고 피해가 ‘개인의 잘못’이라는 의식도 곳곳에서 드러난다. 기자가 목포해경에 전화했을 때 들린 통화 연결음 가사는 ‘구명조끼 착용을 생활화합시다’였다. 세월호 희생자 대다수는 구명조끼를 입고서도 사회의 이기심과 무능한 시스템 때문에 죽어갔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온 국민이 다시 마음을 합쳐야 할 때다. 그러지 않으면 제2의 세월호 참사 발생은 시간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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