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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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태 스캔들로 본 방산업계의 속살

군피아, 차명계좌, 로비… 한국 무기중개시장의 그림자

  • 황일도 기자 shamora@donga.com

    입력2015-03-02 10: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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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규태 스캔들로 본 방산업계의 속살

    2014년 12월 28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51회 대종상영화제 기자간담회에서 이규태 조직위원장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 사내가 있다. 한국에서 ‘무기도입시장’이라는 말이 처음 생겨나던 무렵 이 분야에 뛰어들었고, 거듭되는 정권교체에도 성공을 일궜다. 한 건에 수백억 원의 수수료가 오가는 카지노 같은 판에서 끈질기게 살아남은 ‘전설’이었다. 이후 유수 연예기획사의 오너이자 국내 최대영화제의 조직위원장이라는 새로운 얼굴로 세상에 나섰던 그는 지금 일생일대의 위기에 처해 있다. 군 장비 전문무역업체 IGGY(옛 일광공영)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의 창업자인 이규태(66) 일광그룹 회장. 그의 40년 비즈니스는 한국 무기거래시장의 차가운 민낯을 보여주는 가장 훌륭한 축소판이다.

    “그 이규태가 이 이규태라고?” 이 회장의 어제와 오늘을 따라가는 동안 기자가 가장 많이 들었던 질문은 이것이다. 유수한 무기중개업체 대표로 수십 년간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를 쌓아온 그를 모르는 군 당국 관계자나 안보 전문가는 없다. 그러나 그가 지난 연말 소속 연기자 클라라와의 ‘카카오톡 스캔들’로 인터넷을 달군 바로 그 ‘이규태 회장’이라는 사실을 아는 관계자는 많지 않았다.

    2월 초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합수단)이 이 회장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1300억 원대 공군 전자전 훈련장비(EWTS) 도입 사업 중개 과정에서 가격을 부풀렸다는 것이 그가 받고 있는 의혹의 골자. 아직은 빙산의 일각이다. 2월 말 현재 합수단이 수사를 진행하는 일광그룹과 이규태 회장 관련 사건은 4건에 이르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의 방위산업 담당 직원의 아내가 일광그룹 계열 일광복지재단에서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는가 하면, 2009년 기무사에 의해 보안 측정 부적격 판정을 받았다가 반년 만에 번복된 일도 도마에 올랐다. 400억 원 규모의 무인정찰기 선정 과정에서 군 내부 문건이 이 회장 측에 넘어갔다는 사실도 방위사업청(방사청)에 의해 수사 의뢰됐다. 한 건 한 건이 파장이 만만치 않을 민감한 사안. 불과 한 달여 사이에 불거진 일들이다.





    상위 10개 업체가 전체 계약의 90%

    그의 개인사는 거의 알려진 게 없다. 부산에서 자라는 동안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고, 1980년 경찰학교 간부후보 과정(29기)을 수료한 뒤 서울의 한 경찰서에서 근무했다는 사실 정도가 전부다. 그는 선망받는 직업이던 경찰직을 금세 그만두고 85년 일광공영이라는 무역회사를 설립한다. 무기중개업에 내디딘 첫발이었다.

    공교롭게도 이때는 한국에서 무기중개업이라는 비즈니스가 공식 태동한 시기였다. 국방부는 1984년 ‘군 무역대리점’이라는 제도를 신설해 군수물자와 장비에 특화된 무역업체들의 등록을 받아 보안감찰의 범위하에 두는 양성화 조치를 실시한다. 단명에 그쳤지만 ‘군 무역협회’라는 단체가 만들어진 것도 그 무렵의 일이었다. 관리 주체가 국방부에서 방사청으로 바뀌는 등 부분적인 변화는 있었지만, 무기시장의 대체적인 얼개는 이 시기에 처음 만들어졌다. 이를테면 이 회장은 공식적인 ‘무기중개상 1세대’다.

    방위사업관리규정에 따르면 ‘군 무역대리점’의 정의는 ‘외국 수출입업자의 위임을 받아 국내에서 물품을 수출입함에 있어 그 계약의 체결 및 부대되는 행위를 업으로 영위하는 자’다. 군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이 국내에 없을 때 해외에서 이를 도입해 납품하는 과정을 중개하는 것이 기본 업무다.

    2009년 안보경영연구원이 방사청에 제출한 용역보고서는 ‘군 무역대리점’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정부가 유일한 구매자이다 보니 시장이 독특한 형태를 띨 수밖에 없고, 폐쇄성이 강해 일반 무역업체에 비해 진입장벽이 매우 높은 편이다. 기무사 등 관계기관의 상시적인 보안 진단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특징, 전형적인 고수익·고위험 사업이라는 것이다.

    2015년 한국 국방예산 37조4560억 원 가운데 무기 도입과 개발에 쓰이는 돈은 11조 원이 넘는다. 2014년 10월 방사청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군 당국이 무기중개업자를 거쳐 체결한 도입 계약 금액은 2조5800억 원. 국제시장의 관례상 요율이라는 5%만 적용해도 1300여억 원이 중개업자의 수수료로 지급됐다는 계산이 나온다. 물론 이는 단순계산일 뿐 실제 수익은 해외 업체와 중개업자가 맺은 계약에 따라 천차만별이고 신고되지 않은 음성 거래는 추정조차 어렵다. 한 건으로 수십억 원을 챙기는 사업도 얼마든 가능하다.

    반면 진입장벽이 높은 만큼 경쟁자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방사청에 등록된 ‘군 무역대리점’ 수는 수백을 헤아리지만, 2005~ 2008년에는 상위 10개 업체가 전체 계약의 90% 이상인 5조 원 안팎을 거래했다. 종업원 10명을 넘는 회사를 찾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규모도 작은 편. 통상 업계 5위권으로 분류되는 IGGY 역시 등기부만 놓고 보면 자본금 3억 원, 발행주식 3만 주의 작은 회사다. 복수의 주주가 있지만 이 회사가 사실상 이 회장 1인 지배기업이라는 사실은 일광그룹 측도 인정하는 바다.



    ‘불곰의 이규태’로 불리게 된 이유

    이규태 스캔들로 본 방산업계의 속살

    제2차 불곰사업을 통해 2005년 한국에 인도된 러시아제 공기부양정 무레나(Murena).

    방산업계와 군 당국 관계자들은 1990년대까지만 해도 일광그룹의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이 회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는 2000~2006년 진행된 제2차 불곰사업에서 러시아 무기생산업체들의 에이전트로 활동하면서부터. 휴대용 대전차유도미사일 METIS-M과 공기부양정 무레나(Murena) 등 당시 이 회장이 중개한 무기의 총금액은 3억1000만 달러로, 러시아 업체들이 수수료로 지급한 돈만 2387만 달러에 달한다. 그가 ‘불곰의 이규태’로 불리게 된 이유다.

    사업 수주에 성공한 2000년을 전후해 그의 위상은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동석한 자리에서 방사청이나 군 고위관계자와 통화하는 모습을 본 지인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학교법인 일광학원을 설립해 이사장에 취임한 것 역시 2001년이었다. 인생의 절정기였던 셈이다.

    방산업계와 군 안팎에서 거론하는 그의 인맥 고리는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고향인 부산을 중심으로 하는 지연이다. 재경부산중고총동창회 부회장으로 일하며 언론인 그룹 등 이 지역 출신 인사들과 오랜 기간 교유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 반면 김대중 정부 시기에는 호남 출신 정관계 인사들과의 관계 역시 만만치 않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인시절 세웠던 아태평화재단의 운영이사로 다방면에 걸쳐 조력했다는 게 당시 관계자들의 증언이다.

    공교로운 것은 불곰사업 중개를 함께 따냈던 미국 국적의 동업자 윤모 씨가 김 전 대통령의 ‘집사’로 불리며 막후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진 이수동 전 아태평화재단 상임이사의 인척이라고 주장한다는 점이다. 2009년 진행된 관련 재판 판결문에 따르면 사업 중개를 앞두고 이 회장과 윤씨는 러시아 측으로부터 받은 수수료 가운데 3분의 2가 윤씨 몫이라는 계약을 맺었다. 이수동 전 이사는 이후 이른바 ‘이용호 게이트’에 연루된 것이 드러나 징역 1년의 유죄판결을 받았다. 김모 전 육군참모총장의 구명 로비에도 관여한 적이 있을 정도로 군 고위층에 대해서도 영향력이 막강했다.

    “한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치열한 무기시장 중 하나다. 유수의 글로벌 군수업체는 모두 참여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인정찰기 글로벌호크를 만드는 노스롭그루먼이나 패트리어트 미사일을 판매하는 레이시온조차 한국에서는 ‘메이저’가 아니다. 그렇게 보면 차세대 전투기 등 조 단위의 초대형 사업에는 참여한 적 없는 일광그룹이나 이규태 회장 역시 메이저라고 보기 어렵다.”

    한 외국 방산업체 관계자의 이 같은 촌평은 이 회장의 독특한 지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가 중개해 국방부에 납품한 주요 장비와 무기체계는 미국이나 서유럽의 첨단무기체계보다 러시아나 터키 등 동구권 또는 제3세계 국가의 저렴한 품목에 집중돼 있다. 미국에 대한 기술 의존도가 높고 미군과의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중시하는 한국군의 특성상 그가 중개한 제품들이 핵심 품목은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동구권 장비에 특화된 한 무기중개업체 관계자는 인맥을 중시하는 이 회장의 비즈니스 스타일 역시 이와 관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한국군이 써본 적이 없어 익숙지 않은 제품을 중개하는 업체들은 통상적으로 군 관계자들을 상대로 그 신뢰도를 설득하는 일이 매우 중요하고, 이 때문에 전력 평가나 도입 업무를 맡고 있는 이들을 접촉하는 일이 한층 잦다는 이야기다. 또 다른 업체 관계자는 “불곰사업 이후 이 회장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글로벌 군수업체의 대형사업 참여를 타진했지만, ‘인맥 중심 비즈니스’에 대한 우려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고 전한다. 사업 성사 못지않게 국제 무기시장에서의 평판을 중시하는 글로벌 업체들로서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적잖았다는 설명이다.

    성공으로 오르는 사다리였던 불곰사업은, 그러나 이 회장의 발목을 잡는 덫이기도 했다. 2010년 그는 탈세와 배임, 횡령 혐의로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는다. 러시아 측으로부터 건네받은 돈을 회사 수익으로 처리하지 않아 5억여 원의 법인세를 탈루했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었다.

    당시 판결문에는 두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등장한다. 하나는 이 회장 측이 러시아 회사들로부터 3차 불곰사업에 대한 착수금(retainer fee) 명목으로 1000만 달러를 받았다는 대목이다. 진행되고 있는 2차 사업이 아니라, 아직 어떤 장비를 들여올지 계획조차 분명치 않은 다음 사업의 성사를 위한 계약을 별도로 맺었다는 이야기다. 전직 대형 군수업체 관계자의 말이다.

    “무기중개시장의 가장 깊은 고리는 입찰이나 계약이 아니라 소요 제기부터 이뤄진다. 방사청이 이러이러한 성능의 장비가 필요하다고 공고를 내면 그에 맞는 회사를 찾는 게 아니라, 특정 업체와 미리 계약을 맺어두고 이 무기체계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군 안팎에서 형성되도록 정책을 움직이는 것이다. 군이 방사청에 제출하는 성능 기준이 해당 무기체계에 꼭 알맞게 나오도록 유도하는 게 다음 수순이다. 여기까지 이뤄지면 사업은 이미 성사된 것이나 다름없다. 일정 수준 이상의 중개업체들은 모두 이러한 프로세스를 따른다. 방사청 공고를 보고 움직이는 회사는 영세업체들뿐이다.”

    속칭 ‘군피아’로 불리는 사람들, 군과 관계기관에서 전력 도입 관련 업무를 맡았던 사람들이 퇴직 이후 방산 제조업체나 중개업체에 취업하는 구조적인 악습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입찰 과정에서 편의를 봐주거나 평가 과정에서 유리한 점수를 주는 얕은 수준이 아니라, 아예 전력구조를 설계하는 일 자체에서부터 인맥이 작동하는 것. 이를 감시하고 적발하는 임무를 맡고 있는 군 사정당국이나 기무사 관계자들 역시 인맥관리의 주요 대상일 수밖에 없다.

    일광그룹 역시 이러한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일광공영의 보안 담당관으로 일했던 기무사 관계자의 아내가 일광그룹 계열사인 일광복지재단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돼 논란이 인 것은 바로 이 때문. 기무사령관을 지낸 김영한 예비역 중장은 2010년부터 2년여간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대표이사로 일하기도 했다. 2009년 불곰사업과 관련한 1심 판결에서 이 회장이 유죄판결을 받아 기무사가 일광공영의 중개 자격 등록을 취소한 직후의 일이었다. 이후 대표를 교체한 일광공영은 취소 6개월 만에 다시 기무사의 보안 측정을 받아 자격을 회복했다. 김 전 사령관의 대표이사 취임은 그 두 달 뒤인 2010년 8월이었다.

    일광그룹 측은 이에 대한 ‘주간동아’의 질의에 “기무사 직원의 아내는 정식 채용 절차를 거쳐 산하 복지기관에 입사해 사회복지사로 일하고 있을 뿐, 일광공영의 국방사업과는 무관한 일”이라는 답변을 보내왔다. 김 전 사령관 역시 “취업제한 기간 2년이 지난 후에 폴라리스 대표에 재직했으므로 문제될 게 없고, 이 기간 일광그룹은 국방사업에 참여한 적이 없다”는 것이 일광그룹 측 입장이다.

    기무사령관이 연예기획사 대표?

    이규태 스캔들로 본 방산업계의 속살

    서울 삼선동 일광그룹 사옥.

    판결문에 등장하는 또 하나의 흥미로운 사실은 일광공영이 서울 삼선동의 한 교회를 탈세 경로로 활용했다는 부분이다. 이 회장이 오랜 기간 장로로 재직하고 있는 이 교회는 일광그룹 사옥에서 100m 남짓 떨어져 있다. 당시 법원은 이 회장이 러시아 측으로부터 받은 수수료를 미국 계좌에 보관하고 있다 이 교회에 기부금 형식으로 보냈으며, 교회는 다시 채무변제 형식으로 이 회장에게 송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수수료가 일광공영의 수익으로 잡히지 않아 법인세 탈루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방식은 외국과의 무기거래에서는 흔하게 벌어지는 일이다. 한 중개업체 대표는 “친분이 있는 군 당국자가 관련 직위로 발령 나자 해외 대공화기 제조업체에서 나를 찾아왔다. 이들이 맨 처음 요구한 게 바로 해외 차명계좌 개설이었다”고 전한다. 스위스가 가장 좋고 홍콩도 나쁘지 않다는 것. 해당 당국자와 ‘선’을 대주면 이 계좌를 통해 뒷돈을 찔러줄 테니, 국내 사회단체 등을 통해 기부금 형식으로 돌려받으면 된다는 취지였다. “그때도 큰 사업의 경우 정부가 여론을 의식해 중개상의 개입을 금지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그러면 거래는 오히려 음성화될 뿐이었다”며 “2차 불곰사업 역시 정부가 국가 간 계약을 선언하면서 공식적으로는 중개상이 관여할 수 없는 사업이었다”고 그는 전했다.

    지상 5층 지하 3층의 현대식 건물을 자랑하는 이 교회에서 이규태 회장은 건축위원장을 지내는 등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왔다. 이 회장의 활동에 종교와의 연관성이 녹아 있는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한 연예인이 인터뷰에서 “돈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알리는 것이 목적인 회사”라고 언급했을 정도. 학교법인 일광학원이 운영 중인 초등학교와 일광복지재단 역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교육과 ‘더불어 잘사는 세상’을 강조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회장이 2008년 대통령 표창을 받을 정도로 모범적인 기업인 이미지를 쌓아 올릴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였다.

    그러나 그 뒤편에는 막대한 금액의 세금 체납이 있다. 국세청 고액체납자 명단에 오른 이 회장의 체납액 규모는 164억 원. 고액체납자 순위 90위에 해당한다. 일광공영의 체납액은 213억 원이다. 이와 관련해 사정당국 관계자는 “최근 국세청이 이 회장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국 계좌 3개에 대해 미국 국세청(IRS)를 통해 명세서 제출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일광그룹 측은 “불곰사업과 관련해 국세청이 재판과는 별개로 부과한 것으로, 이후 행정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부분승소했고 현재는 항소심 재판 중”이라며 “세금을 체납한 것이 아니라 법에 정해진 불복절차를 진행하고 있을 뿐”이라고 밝혀왔다.

    이원형 사건. 김대중 정부 직후인 2003년 터진 대표적인 군납비리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예비역 소장인 이원형은 호남 출신으로 DJ 정권에서 군 실세로 불렸고, 국방부 획득정책관과 품질관리소장을 지냈다. 대공포 도입사업 과정에서 거액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그는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파장은 컸다. 노무현 정부는 방사청을 신설해 국방부의 무기·장비 획득 업무를 분리했다. 군이 요구 성능만 확정해 전달하면 선정과 구매는 방사청 관료들이 진행하는 새로운 모델이었다. 대형 사업에는 아예 중개상의 개입이 금지되고, 국가와 해외 제조업체가 직접 협상과 계약을 진행한다는 규정도 명문화했다. 군 당국자들과의 오랜 인맥으로 사업을 이끌어온 중개상들은 ‘달라진 세상’에서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다. 첨단 경영지식과 엄청난 자금력으로 판을 움직이는 ‘큰손’만 살아남을 수 있도록 무기중개시장이 재편된 계기였다.

    화려한 변신, 그러나…

    방사청이 만들어진 2006년 일광그룹은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하고 연예사업에 뛰어든다. 이러한 변신에 대해서는 다양한 해석이 있지만, 이 회장은 지인들에게 “방사청 설립 이후 시장 사정이 크게 변해 이전과 달리 수익성이 좋지 못하다고 판단했고, 연예사업으로 다각화를 결정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2013년부터는 대종상영화제 조직위원장을 맡아 2년째 행사를 주관했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영화제 무대에 오른 그는 ‘와인을 즐기는 중후한 중년 기업인’의 인상을 연예계에 심었다. 고액체납자 무기중개상에서 수준급 연예기획사 오너로, 그 나름 성공적인 이미지 메이킹이었다.

    그리고 2014년 말, 그의 인생은 위기에 처했다. 소속 연예인과의 뜻하지 않은 카카오톡 메시지 논란으로 구설에 오른 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최근 수년 사이 방사청의 업무영역이 축소되고 군 출신 인사가 대거 투입되면서 일광그룹의 무기중개 비즈니스도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던 참이었지만, 연말 합수단 출범과 함께 여러 건의 수사가 입체적으로 진행되면서 그를 몰아세우고 있다. 그의 옛 동업자였던 재미동포 윤모 씨 측도 인터넷을 통해 “불곰사업의 실체를 폭로하겠다”며 일광그룹 측을 압박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어제의 이규태’가 ‘오늘의 이규태’의 발목을 잡는 기묘한 형국. 그와 함께 ‘1세대 무기중개상’으로 분류되는 은퇴한 중개업체 대표의 말이다.

    “이 장사에는 광고도 없고 홍보도 없다. 대중에게 노출될 일이 없으니 뭔가 은밀하고 신비스러워 보인다. 아무리 스스로 ‘국가방위에 일조하고 있다’고 위로해도 꼬리를 무는 소문은 언제나 부정적인 것뿐이다. 로비스트를 법적으로 양성화해 관리하는 미국이나 세계 곳곳의 무기체계 정보 수집 업무를 자위대가 직접 담당하는 일본처럼 근본적인 해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무기중개시장은 앞으로도 계속 음습한 그림자 속에 남아 있게 될 것이다. 최종 결론은 모든 법적 다툼이 끝난 뒤에야 나오겠지만, 이 회장 또한 본인의 염원과 달리 그 그림자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방산비리 수사, 정권마다 반복되는 이유

    한 번에 최소 30억 원?


    이규태 스캔들로 본 방산업계의 속살

    2014년 11월 21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열린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 현판식’.

    “무기 도입과 관련해 영관급 장교 하나를 ‘내 사람’으로 만드는 데 얼마가 들까. 중요 업무인 만큼 대부분 사관학교를 나왔고 별을 달 것이라 확신하는 이들이다. 만에 하나 문제가 생겨 옷을 벗는 경우, 은퇴 시점까지 봉급에 전역 이후 연금, 죽고 나서 유족연금까지 모두 계산하면 30억 원이 훌쩍 넘는다. 한 번에 돈을 찔러주는 방식이 쉽지 않은 이유다.”

    한 전직 무기중개상의 직설적인 설명이다. 최근 불거진 상당수 방산비리에서 고위직 인사들이 퇴역 이후 방산업체에 취업하는 이른바 ‘군피아’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된 배경이다. 물러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들에게 자리를 약속하는 방식. 현금이 오가지 않으므로 적발될 우려가 적고 다른 사업에서도 활용할 수 있으므로 여러모로 비교우위라는 이야기다.

    방산업체들이 주로 ‘관리’하는 인사는 크게 둘로 나뉜다. 전력 도입 정책에 관여하는 이들과 이들을 감시하는 국군기무사령부(기무사) 등 사정기관 관계자들이다. 전자는 주로 ‘주변국에 이러저러한 신형무기가 등장했으므로 우리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는 여론을 만드는 이른바 ‘바닥 다지기’ 과정에서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언론인은 물론 최근에는 민간단체 전문가까지도 대상에 포함되곤 한다. 사정기관은 보안 측정을 통해 사업 자체를 중단시킬 권한을 갖고 있다. 신원조회부터 업체 출입문의 잠금장치까지 따지는 고강도 감사다. “이들 두 줄기를 모두 쥐고 있다면 사업은 일사천리다.” 앞의 전직 무기중개상의 말이다.

    지난 연말 박근혜 대통령의 강도 높은 주문에 따라 출범한 방위사업비리 합동수사단(합수단)이 속도를 내고 있다. 전직 참모총장급 인사 3~4명이 수사선상에 올라 있다는 기사가 나올 정도로 빠른 행보다. 검찰과 군, 감사원과 국세청을 망라해 총 100여 명의 수사인력이 투입된 매머드 조직이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이는 낯선 일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명박 정부 시기에도 방산비리는 척결돼야 할 대표적인 사회악으로 지목됐고, 주요 업체에 대해 국가정보원, 검찰, 기무사, 경찰까지 나서 특별감사와 원가검증 같은 작업이 줄줄이 이어졌기 때문. “리베이트만 없애도 국방예산의 20%는 절약할 수 있다”는 대통령의 강도 높은 언급에 주요 사정기관이 모두 뛰어든 것 역시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역대 정권마다 방산비리에 대한 대규모 수사가 반복됐지만, 구조적인 뿌리는 제거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광그룹을 비롯해 최근 언론지면을 장식하는 주요 사건 중 상당수는 이미 5~6년 전 불거졌다 흐지부지된 것들이다.

    한 민간 군사 전문가는 “새 정부는 언제나 방산비리 수사로 전임 정부의 치부와 커넥션을 들춰낼 수 있다고 믿는다. 스스로를 차별화하고 국민의 지지를 확보하는 수단으로 활용하는 셈”이라고 촌평했다. 공격적이기 짝이 없는 합수단의 최근 행보와 관련해서도 실제로 어떤 성과를 거둘지에 대해 유보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가 적잖은 이유다. 한마디로 ‘지나가는 소나기’라는 것이다.

    입찰이나 계약 등의 실무에 머물 게 아니라 전력구조 설계나 소요 제기 같은 근본 문제를 파고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무기도입 정책 자체를 뿌리부터 흔드는 ‘거대한 손’들을 잡으려면 고질적인 유착관계를 파헤쳐야 한다는 것. 익명을 요청한 감사원 관계자는 “연이은 구속 소식으로 떠들썩하게 시작됐던 비리 수사가 실제 처벌로 이어지지 않거나, 주변을 털어 탈세 또는 횡령 같은 부수적인 죄목으로 기소해 경미한 처벌에 그치는 일이 부지기수다. 이러한 악순환을 끊으려면 실무담당자만을 ‘조지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역사상 방산비리에 대한 근본적인 수사가 이뤄진 유일한 사례로 김영삼 정부의 율곡사업비리 감사가 꼽힌다. 노태우 정부 당시 F-16 등 최신예 전투기와 구축함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수천억 원대의 뇌물이 뿌려졌다는 사실이 확인됐고, 전직 국방부 장관들과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줄줄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물론 이러한 일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회 숙청으로 상징되는 김영삼 정부의 ‘군 수뇌부 물갈이’ 의지가 있었기 때문. 뒤집어 말하면 그 정도 결심이 서야만 방산비리의 근본 수술이 가능해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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