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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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껏 ‘붉은 함성’ 질러라!

선수와 함께 뛰는 우리 ‘6월의 축제’ 즐겨도 좋아

  • 황승경 국제오페라단 단장·전 이탈리아 노베 방송국 축구리포터 lunapiena7@naver.com

    입력2014-06-23 09: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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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음껏 ‘붉은 함성’ 질러라!
    오, 사, 삼, 이, 일. 휘릭! 주심 휘슬이 울려 경기가 끝날 때까지 얼마나 많은 국민이 가슴 졸이며 경기에 집중했던가. 팽팽한 긴장, 천당과 지옥, 주체할 수 없는 흥분.

    6월 18일 아침(이하 한국시간)에 있었던 러시아전. 지인들과 함께 응원 분위기를 한껏 내보려고 붉은 티를 입고 응원도구까지 준비했다. 이날의 열기와 함성을 기억하겠다고 벼르고 별렀다.

    그러나 그동안 평가전에서 보여준 우리 선수들의 호흡과 조직력에 강한 의문이 들어서였을까. 경기가 시작되자 나는 기대의 박수와 우려의 눈초리를 한꺼번에 쏟아내고 있었다. 하지만 이내 전반 몇 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땀으로 흠뻑 젖은 선수들 모습을 보니 괜히 콧잔등이 시큰해지면서 선수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응원을 보내고 있는 것 아닌가.

    축구 결과는 90분 동안 누가 경기를 잘하느냐보다 누가 골을 많이 넣느냐로 판결 난다. 아무리 세계적인 스타 플레이어가 제트기처럼 돌진해온다고 해도 각자 자신이 맡은 공간에서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상대 공격수의 손발을 묶다가 상대의 0.1초 실수도 간과하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들어 상대의 허를 찌르는 팀이 결국 이긴다.

    물론 그날 우리 수비가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이근호는 느슨해진 상대 허점을 간과하지 않고 그대로 통쾌한 슛을 날렸다. 그 슛은 근래 국민의 가슴속에 맺힌 어떤 응어리를 풀어줬고, 전 국민에게 짜릿한 전율을 선사했다.



    알제리戰 창의력을 발휘할 차례

    일부 외신은 러시아 골키퍼의 초보적인 실수라며 이근호의 골을 폄하하려 했다. 그들에게 이탈리아의 저명한 저널리스트 토사티의 말을 들려주고 싶다. “갑작스럽게 실수를 유발할 수 있는 순발력도 고도의 실력이고 강력한 능력이다”라고.

    12년 만에 진출한 월드컵 무대 첫 경기여서 그랬을까. 러시아 선수들은 승리에 목말라 있다기보다 보이지 않는 짐에 눌려 주눅이 든 모습이었다. 지역 예선에서 보여줬던 야성적이고 자신 있는 눈빛은 자취를 감췄다. 강한 조직력으로 철통수비를 만들어 환상적인 그림을 그리는 팀이라고 했지만, 이번 경기에서 그들의 그림은 너무나 평범했다.

    이젠 우리가 창의력 돋보이는 그림을 그릴 차례다. 6월 23일 월요일 알제리전이 시작이다. 알제리는 강팀은 아니지만 쉽게 질 팀도 아니다. 그동안 유럽 축구와의 활발한 교류로 개인기가 뛰어난 선수들을 보유한 알제리 대표팀은 벨기에전을 마치고 감독, 언론, 선수 간 여러 문제로 삐꺽거리고 있다.

    1963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알제리인들은 그보다 5년 먼저 알제리민족해방전선(FNL) 축구팀을 창설, 본격적으로 축구를 시작했다. 알제리인에게 축구는 독립운동의 증거이자 독립정신의 상징이었다.

    알제리인의 축구 사랑은 절대적이다. ‘이방인’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알제리의 알베르 카뮈(1913~60)도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축구에서 배웠다”라는 말을 남겼다. 카뮈는 사실 골키퍼 출신으로 “결핵만 아니었으면 축구선수로 남았을 것”이라고 망설임 없이 말했던 문인이다.

    카뮈의 후예들과 우리 대표팀은 1986 멕시코월드컵을 6개월 앞두고 4개국 초청대회에서 마주한 바 있다. 당시 우리는 축구 변방 국가였지만 특유의 투혼과 투지로 2-0 승리를 거머쥐었다. 당시 우리 대표팀 선수들이 직접 장비를 챙기고, 공에 바람을 넣고, 유니폼까지 빨아 대회 관계자들을 경악하게 만든 일화도 전해진다. 28년 전 그날처럼 알제리와의 경기에서 우리 대표팀은 정신력과 집중력에서 앞선 경기를 선사할 테고, 여기에 더해 상상력과 저력이 겸비된 모습으로 다가올 것이다.

    벨기에戰 다크호스 등극의 기회

    러시아처럼 12년 동안 복수의 월드컵 칼날을 갈아온 벨기에는 최강 드림팀을 구성해 이번 월드컵 최대 복병으로 점쳐졌다. 1998 프랑스월드컵 조별리그에서 우리 대표팀과 비겨 함께 16강 진출 팀을 부러워하며 눈물을 훔쳤던 그들이 아니다. 2014년 벨기에의 중심에는 알제리와의 1차전에서 짜릿한 역전승을 거두며 자신의 용병술을 빛냈던 윌모츠 감독이 있다.

    하지만 선수들의 연륜과 월드컵 무대 경험이 부족해서일까. 6월 18일 막상 알제리와의 경기가 시작되자 그의 금쪽같이 귀하고 화려한 선수들은 지극히 단조롭고 평범해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고, 몸도 굳어 있어 집중조차 제대로 못 하는 듯 보였다. 물론 우리 대표팀과의 경기가 3번째이기 때문에 잃어버린 안정감을 되찾아 다시 다크호스 팀으로 돌아올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경기가 시작되면 모든 것은 선수들 몫으로 남는다. 우리 대표팀은 6월 27일 벨기에와의 경기에서 ‘손자병법’의 풍림화산(風林火山)이라는 말처럼 ‘빠르기는 바람처럼, 조용하기는 숲처럼, 공격할 때는 불처럼, 서 있을 때는 산처럼’ 집중한다면 그 경기가 월드컵 역사에 한 줄 남길 절호의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기장 밖 우리는 두려워 말고 든든한 5000만 붉은 악마가 돼 마음껏 즐기자!

    러시아 카펠로 감독 말 오역

    “한국 선수 이름까지…” → “선수로서 특징이 더 중요”


    파비오 카펠로 러시아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사진)의 말이 화제였다. 카펠로 감독이 6월 17일(한국시간) 한국과의 경기를 하루 앞두고 공식 기자회견에서 “한국 선수의 이름까지 알 필요는 없다. 그 선수들의 특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며 한국 언론들은 그의 ‘오만한’ 인터뷰 기사를 대서특필했다.

    인터넷에서 이 기사를 접하고 나는 도저히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이탈리아에서 10년 동안 살았고, 카펠로가 어떤 감독인지 나 나름대로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카펠로 감독은 월드컵 출전국 감독들 가운데 최상위권인 115억 원이라는 연봉을 받을 만큼 명장으로 손꼽힌다. 그는 완벽함을 부르짖으며 선수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자신의 레이더망에 놓고 사생활, 인터넷 사용, 음식까지 강압적으로 조절한다. 그렇게 철두철미한 카펠로 감독이 오히려 상대의 사기를 진작하고 투혼을 지필 수 있는 말을 그것도 경기 직전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구단과 선수들에게는 자신이 구상하는 이상적인 완벽 축구를 구현하기 위해 제왕처럼 군림한다. 더욱이 언론을 잘 다룰 줄 알고 팀 승리를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연극배우처럼 과장스럽게 으르렁거리며 항의하다가도 바로 익살스럽게 애원하기도 하는 ‘여우’ 같은 감독이다.

    그래서 문제의 인터뷰 장면을 다시 자세히 들여다보고는 할 말을 잃었다. 이탈리아어로 진행된 인터뷰에서 카펠로 감독은 “러시아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모른다”는 러시아 기자의 질책성 질문에 “한국 선수들의 이름을 아는 것보다 선수로서의 특징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고 명확하게 말했다. 외국인 감독이 러시아 기자에게 상대 선수의 이름보다 그 선수가 가지는 장단점을 분석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 것을 우리 언론은 ‘카펠로의 오만함’으로 잘못 전한 것이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어느 한국 기자는 “더는 한국 대표팀을 공부하지 않을 것 같아 말해드린다. 오늘 골을 넣은 선수의 이름은 이근호이며 군인 신분이라 연봉이 아주 적다”고 말했다. 카펠로 감독은 기자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을까. 다행스럽게도 외신에서 이를 크게 다루지 않은 것 같지만 잘못된 언어의 해석에서 나온 해프닝이란 것을 알면 웃음거리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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