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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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여야의 지겨운 ‘내로남불’ 타령 “‘내불남로’, 자발적 붕괴가 필요해”

인사기준, 업무지시, 추경안 등 부딪혀…文, 협치 명분 탕평인사에서 코드인사 복귀?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7-06-16 16: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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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유행하는 표현이 ‘내로남불’이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준말이다. 과거 갑이던 자가 을이 되면, 을이었다 갑이 된 자에게 푸념처럼 늘어놓던 말이다. 그런데 요즘은 종종 반대 현상이 나타난다. 갑이 된 자가 오히려 약자 행세를 하면서 늘어놓는 말로 변한 것이다.

    국회 인사청문회 초기, 문재인 대통령이 내정한 후보자마다 과거 정권과 유사한 의혹에 휩싸이자 야권이 ‘내로남불 식 인사’라고 지적하고 나섰다. 언제나 야당이 되면 이런 식이다. 그래서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분위기였다. 의외의 상황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거부하는 자유한국당의 태도야말로 내로남불이라고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이례적 일이 벌어졌으니 눈길이 안 갈 수 없다.



    위대한 과학의 힘?

    지난 보수정권 시절 정부 여당을 향해 어지간히 내로남불 타박을 하던 민주당이다. 워낙 입에 익어 자연스럽게 나온 말인지 모르겠으나, 그것을 받아들이는 야권은 어이가 없을 수밖에 없다. 웬 피해자 ‘코스프레’? 특히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여당이던 자유한국당의 반응이 더 그러해 보인다. 갑작스러운 야당 생활에 애로를 겪고 있는데, 저쪽도 매한가지라는 생각을 하니 이해가 가긴 한다. 그래도 괘씸한 건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다.

    최근 가장 뜨거운 내로남불 소재는 ‘인사기준’이다. 자유한국당은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와 박근혜 정부 초기 연쇄적으로 낙마한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 안대희 전 대법관,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자주 비교한다. 김 전 소장은 아들 병역 문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 문 전 주필은 일본 식민지배가 하나님의 뜻이라는 발언 논란, 안 전 대법관은 전관예우와 고액 수임료 논란으로 인사청문회에 들어가기도 전 자진사퇴했다. 원천배제된 것이다. 이에 자유한국당은 이낙연 후보자는 더 많은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인사청문회 전 자진사퇴하지 않았고, 더욱이 인준까지 받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민주당은 보수정권 시절 검증기준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 때보다 많이 낮아졌다는 점을 지적하길 즐긴다. 당시 여대야소라는 우월적 지위를 최대한 활용해 야당을 밀어붙여 부적격 후보자를 대거 통과시키지 않았느냐는 주장이다. 좀 더 과학적인 근거를 대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임명을 강행한 경우가 19건에 달하고, 그나마 탈락한 경우는 여론조사 지지율이 너무 낮아 불가피하게 수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여론조사 찬성 지지율이 높은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는 임명을 강행하더라도 군소리하지 마라”고 주장한다. 역시 과학의 힘은 위대하다. 꽤나 설득력 있게 들린다.

    그다음으로 뜨거운 내로남불 소재는 ‘업무지시’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일련의 업무지시를 쏟아냈다. 그 하나하나가 국민의 감성에 다가서는 것이어서 이 또한 임기 초반 지지율 상승 변수로 작용했다. 정말 ‘사이다 업무지시’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업무지시 대부분이 의지는 충만하되 결과를 예단하기는 어려운 미완의 작품이다. 일자리 추경안도 그렇고,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도 그렇다. 미세먼지 대책으로 내놓은 노후 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조치도 마찬가지다. 4대강 일부 보 전면 개방 조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약효 짧은 사이다 ‘업무지시’

    업무지시라는 거창한 이름을 달고 나온 탓에 국민적 기대는 한껏 고조된 상황인데, 정작 현장에서는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양상이다. 4대강 일부 보 전면 개방 조치를 내리고 나니 모내기를 할 물이 부족하다며 인근 농민이 아우성이다. 노후 화력발전소 일시 가동 중단 조치를 내렸지만 지구온난화의 가속화로 여름이 일찍 닥치면서 전력수요도 함께 높아지고 있어 내년을 기약하기 어렵다. 더욱이 전기자동차 공급 확대 계획까지 잡혀 있어 전력수요는 연중 증가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거의 모든 업무지시가 임시 처방에 그칠 개연성이 높아졌다. 사이다 업무지시에서 톡 쏘는 맛이 생각보다 빨리 사라질 조짐이 보이고 있다.

    검찰개혁도, 국방개혁도 일단 시작은 했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 정윤회 감찰 문건 재수사 지시도 이후 별 후속 소식이 전해지지 않는다.  윤석열 검사를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지검장으로 전격 발탁하고 정유라를 강제 소환했지만 구속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관련해 절차적 문제를 제기하려던 것이 배치 철회로 받아들여지면서 그것을 무마하는 데 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무엇보다 미국과 중국을 과도하게 긴장시키면서 또 다른 개입을 유발하기도 했다. 최근 중국은 사드 시찰까지 요구하고 나섰다.

    이 모든 것에서 문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두는 사안은 역시 일자리다. 그래서 일자리 추경안을 취임 한 달도 안 돼 신속하게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그리고 6월 임시국회 중에 통과시켜달라며 직접 국회에서 시정연설까지 했다. 사상 최초다. 당연히 이 문제를 놓고도 ‘내로남불 전쟁’이 거세다. 자유한국당은 국가 재정원칙을 허무는 추경안이라며 원천적으로 거부할 태세다. 자유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 겸 대표 권한대행은 이번 추경안을 이렇게 평가했다. “내로남불의 전형적 형태다. 경제지표가 나빴던 2월 오히려 민주당이 강하게 반대해 추경이 성사되지 못했다.”

    보수정권 시절 그 많은 추경안이 국가 재정원칙에 맞는 것이었는지 의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도, 박근혜 정부도 임기 첫해에는 당연하다는 듯 추경안을 내놨고, 또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그래도 일단 이렇게 주장한다. 이런 자유한국당의 전방위적 공세에 대해 우 원내대표는 재차 이렇게 지적했다. “‘반대를 위한 반대’ 그 이상이 아니며, 전형적인 내로남불의 모습이다.”

    이 내로남불 전쟁에서 누가 승자가 될까. ‘센터’를 차지할 정당은 어느 당일까. 오늘은 여당이고, 내일은 야당이다. 언제나 집권 초반에는 대통령과 여당에게, 집권 후반에는 야당에게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만 그런 것도 아니다.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처럼 장기 집권하는 경우도 없지 않지만, 예외적이다. 미국에서도 길어야 8년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내불남로 자각 증상이다. 내가 하는 게 솔직히 불륜이 맞다는 생각, 그리고 남이 하는 것이 의외로 로맨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상대방을 비난하면서도 사실은 저 인간의 주장이 맞다는 이성적 판단 말이다. 물론 어려운 일이다. 인간은 언제나 자기 처지에서 말하고 행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끔 예상을 뒤엎는 의외의 선택을 하면 돋보인다. 자발적 붕괴는 진화의 시작이다.

    문 대통령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하자 야 3당이 일제히 협치 붕괴를 외치며 투쟁을 예고했다. 이런 속에서 국민의당 천정배 의원은 김 후보자가 최상의 적임자라며 지지하고 나섰다. 같은 당 김성식 의원은 일찍부터 김 후보자가 그 직무를 잘해낼 것으로 믿는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반면 민주당 내에서도 공개적으로 의사를 밝히진 않았지만 강경화 후보자에 대해 부정적 의견을 가진 이가 없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내불남로, 자발적 붕괴와 진화를 선도하는 이들이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우리 사람이 되지 못해도 괴물이 되지는 말자.’ 불륜에도 지켜야 할 도리는 있다. 칭찬받을 일은 아니라는 자각이다. 이런 자각마저 없으면 과도하게 뻔뻔해진다. 갑이 뻔뻔하면 얄밉다. 여당이 유념해야 할 사항이다. 자유한국당이 새누리당이던 시절 당 내외에서 갑이던 친박(친박근혜)계가 그랬다. 그래서 국민의 미움을 샀다. 그들이 간 길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다. 문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참모, 그리고 민주당이 따라가지 않아야 할 길이다. 그래야 생존력이 더 높아지지만 힘든 일인 모양이다. 거의 예외 없이 권력을 쥐면 불륜에 대한 자각증세가 사라진다. 다시 자각증세가 돌아왔을 땐 이미 늦었다.

    문 대통령이 최근 코드인사로 회귀했다. 6월 11일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를 시작으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김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송영무 국방부 장관 후보자,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조명균 통일부 장관 후보자 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진보성이 강하거나 문재인 대선캠프에 관계했던 인물이다. 코드인사나 수첩인사나 도긴개긴이긴 하다. 하지만 임기 초반 반짝 탕평인사에 주력하던 것과 비교하면 극적인 반전이 아닐 수 없다. 숨겨뒀던 비장의 칼을 빼어 든 느낌?


    가파른 지지율 상승의 함정

    대선에서 41.1%를 득표해 집권했지만, 집권 이후 지지율은 80%를 상회하는 중이다. 집권 이후 지지세력이 2배로 불어난 격이다. 불륜을 로맨스라 우겨도 충분히 먹힐 만한 수준이다. 이런 지지율에 힘입어 이제 모든 장관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할 태세다. 물 들어왔을 때 노 젓는다고, 문 대통령과 여당은 배를 단번에 대양으로 내보내려 애쓰는 모습이다. 그 열성과 다급함은 이해한다. 하지만 닻도 올리지 않고 배를 띄울 순 없는 노릇이다. 바람도 함께 불어야 한다. 바람이 약하고 닻도 올리지 않은 상태에서는 아무리 노를 저어도 배는 좀체 앞으로 나아가지 않고 힘만 들 뿐이다.

    임기 초반 일종의 밀월기간이라는 점을 고려해 모두 말을 아끼는 중이다. 하지만 조만간 둑 터지듯 불만이 쏟아져 나올 태세다. 둑이 한 번 터지면 지지율은 롤러코스터를 탈 개연성이 없지 않다. 1개월 전 41.1%를 득표했고, 지금은 지지율이 82%이다. 그것이 다시 40%대로 꺼지는 데 필요한 시간은 1개월이면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잘나갈 때 잘해야 한다. 지금이야말로 내불남로 정신이 필요한 때라는 뜻이다. 그런데 오히려 야당을 상대로 내로남불이라며 역공을 펼치고 있으니, 불안해 보인다. 다시 한 번 영화 대사를 읊조려본다. “사람이 되진 못해도 괴물이 되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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