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1일 열린 국정원 새 원훈(院訓) 제막식.
그런데 국내 업무에 대해서는 유독 국정원 목소리가 작아진다. 그동안 정치 관여 행위가 계속됐기 때문이다. 이는 국가와 특정 정권을 동일시하는 정보기관 구성원의 잘못된 인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프랑스 절대군주 루이 14세처럼 ‘짐이 곧 국가’였던 절대왕정 시대에는 권력자가 곧 국가일 수 있다. 하지만 주권재민사상에 근거한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 그 자체’와 ‘국민으로부터 국가권력 행사를 위임받은 특정 정권’은 엄연히 구별돼야 한다. 국정원은 국가에 충성해야지, 특정 정권에 충성해서는 안 된다.
그럼에도 그동안 국정원이 집권 여당이나 대통령에게 유리한 정치 관여 행위를 해왔다는 의혹을 받는 이유는 자신을 임명해준 대통령 및 정권에 개인적으로 충성심을 가진 일부 국정원 구성원이 국정원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임기제한이 없는 국정원장 및 차장은 정무직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정원장은 임명권자인 대통령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국가에 앞서 특정 정권을 먼저 생각하는 구조적 모순이 생겼다. 따라서 이제는 다음과 같은 시스템 개선을 생각해봐야 한다.
첫째, 국정원장 임명제도 개선이다. 국정원장을 현행대로 대통령이 임명하더라도 대법관 후보추천회의나 검찰총장 후보추천위원회처럼 국정원장 후보추천위원회 제도를 신설해야 한다. 국정원장 후보 자격을 일정 경력이나 자격을 갖춘 자로 법정화하고, 여야가 추천하는 동수 위원으로 구성해 3배수의 국정원장 후보를 추천하면 그 가운데 대통령이 지명하고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그를 임명하는 방식을 고려해볼 수 있다.
국가에 충성하는 조직과 기관
둘째, 국정원에 대한 국회의 통제다.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영국 역사가 액튼 경(卿)의 말을 반면교사 삼아 국가 최대 권력기관인 국정원을 국민이 통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그러려면 현행 국회 정보위원회로는 부족하고 가칭 ‘국정원감독위원회’(감독위원회)를 국회 내에 신설할 필요가 있다. 감독위원회에 국정원 업무 전반 및 예·결산에 대한 감사와 감독권을 부여해 국정원의 국내 정치 관여 금지, 인적 조직 쇄신, 예산 집행 투명성을 강구해야 한다. 지금처럼 국정원을 대통령 산하에 두더라도 국회 통제를 받게 한다면 특정 정권 수호에 매진하는 잘못된 업무방식을 개선할 수 있으리라 본다.
셋째, 해외 조직 확대 및 업무 개편이다. 외교관들의 전언에 따르면, 국정원 해외주재관의 주요 업무가 외국 공관에서 근무하는 우리 외교관들에 대한 업무 동태 파악 및 국내 보고라고 한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권한을 남용하지 않도록 통제해야 한다.
넷째, 국내 정보 수집을 경찰에 이양하는 문제와 대폭적인 조직 축소, 음지화된 국정원 지부 등을 양지화하는 문제도 고민해야 한다. 지역별로 설치된 국정원 지부는 위장용 명칭을 사용하는데, 이를 국정원이라는 정식 명칭으로 바꾸고 양성화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보기관으로서 비밀활동이 보장돼야 하지만, 이는 활동을 비밀리에 하라는 것이지 조직까지 완전히 위장하라는 뜻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개선에 앞서 국가 수호기관 구성원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정의롭고 올바른 국가기관’에 몸담은 조직원이자 공직자로서 임무에 충실하는 것이 먼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