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바람이 일반 사무실에도 불고 있다. 제조 분야의 무인자율생산 시스템과 같이 소프트웨어 로봇을 이용한 새로운 형태의 자동화가 진행 중인 것. 사람이 하던 업무를 소프트웨어를 기반으로 한 자동화로 전환하는 것인데, 이를 가리켜 로보틱 프로세스 자동화(Robotics Process Automation·RPA)라고 부른다.
그동안 업무 자동화는 전사적 자원관리(Enterprise Resource Planning·ERP)를 중심으로 진행돼왔다. 하지만 이미 ERP를 통한 업무 효율성 개선은 한계에 직면했고, 여전히 많은 인력이 데이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단순 업무에 시간을 뺏기고 있다.
사무실에서 이뤄지는 일들을 보면 시스템이나 웹에 접속해 데이터를 읽고 취합, 복사, 계산하는 단순 업무가 70%에 달한다. 아무리 복잡한 업무라도 이러한 단순 업무가 정해진 기준에 따라 결합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해외 유수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이러한 업무를 ‘소프트웨어 알고리즘’으로 자동화하고 있다.
해외 컨설팅업체 PwC는 일반 사무실 업무의 45%가 자동화가 가능하고, 이를 통해 2조 달러(2278조2000억 원)가량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실제 해외 모 기업에서 조사한 비영업부서의 비용을 비교해보면 절감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통상 5만 달러(5695만 원) 비용이 들어가는 경영지원 분야의 업무를 인도나 필리핀 등으로 아웃소싱할 경우 그 비용이 70~80% 수준인 1만 달러까지 줄어들고, RPA를 이용하면 5500달러까지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구글이나 우버 같은 정보기술(IT) 기업은 물론 제너럴모터스(GM), 테스코(TESCO) 같은 글로벌 제조·유통 기업이 RPA 도입을 서두르는 이유다.
사나흘 걸리는 일감, 로봇은 30분 만에 끝
업무 자동화는 기존 IT 인프라에서 소프트웨어 자동화를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ERP처럼 대규모 IT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또한 구축 기간도 몇 주, 길어도 몇 개월로 짧은 편이다. 다른 IT 투자 프로젝트에 비해 투자 비용 대비 재무적 성과도 비교적 명확하게 산출된다.
투자 비용 대비 장점도 훨씬 크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업무상 과실을 대폭 줄일 수 있고, 프로세스 표준화를 통해 업무 투명도를 높일 수 있다. 365일, 24시간 근무가 가능한 것은 물론이고, 갑작스러운 업무량 증감에 따른 인력 관리 어려움도 피할 수 있다. 단순 반복 업무가 줄어 핵심 업무에 집중할 수 있으니 직원의 업무 만족도도 높아진다.
RPA는 글로벌 은행과 보험사를 중심으로 빠르게 도입되고 있다. 특히 비영업부서 고객업무 분야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23%가량 비용이 절감됐으며 향후 3~4년 안에는 적용 영역이 확대돼 전체 비용의 46%까지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추산된다.(그래프 참조)
실제 한 은행 사례를 살펴보면, SW(소프트웨어)로봇 20대로 직원 11명이 하루 8시간에 걸쳐 처리한 2500여 건의 고위험 고객 대상 대출심사를 단번에 해냈다. 인건비를 줄인 것은 물론, 대출심사의 투명성과 공정성도 높였다.
보험사도 보험 계약관리와 위험관리 관련 업무를 중심으로 18%가량 비용 절감 효과를 경험 중이다. 향후 3~4년 내 47%까지 비용 절감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한 보험사는 사나흘씩 걸리던 500여 건의 고객 보험증권 처리 업무를 ‘퍼피’라는 SW로봇이 30분 만에 처리한다.
업무 자동화는 제조·건설업의 경영지원 분야로 확산 중이다. 금융산업의 비중이 여전히 크긴 하지만, 제조·서비스·여행·레저 등 관심 분야가 넓어지고 있다. 해외 한 건설사는 매달 500여 건의 거래상품 명세서(송장)를 발송하는데, 건당 평균 5시간이 소요되던 것을 SW로봇을 이용해 11분으로 단축했다. 수백만 달러의 비용 절감은 덤.
더욱 주목해야 할 점은 초기 RPA는 비교적 단순하고 반복적인 업무에서 자동화를 이뤄냈다면, 최근에는 인공지능(AI)과 결합돼 더욱 치밀한 업무 처리도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은행권에서 고객 상담을 위해 도입한 ‘챗봇’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최근 금융권에서 주로 사용하는 ‘로보어드바이저’는 사람이 아닌 프로그램(로봇)이 자산을 관리하는 서비스를 말한다.
출입국 심사, 교통관제에도 도입
최근 국내에서도 대형증권사를 중심으로 로보어드바이저 도입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자동으로 포트폴리오를 관리하기 때문에 수수료가 4분의 1 수준으로 줄어든다는 게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미국은 우리보다 앞서 로봇 프라이빗뱅크(PB) 시장이 빠르게 커지고 있다. 웰스프런트, 베터먼트, 퓨처어드바이저, 마켓라이더 등 20여 개 업체가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 중이다.
법률 분야도 마찬가지다. 베이커앤드호스테틀러라는 미국 로펌은 변호사 업무의 30~40%를 차지하는 판례 분석을 AI를 통해 자동화했다. 우리나라의 한 법률회사도 건당 30만~40만 원 하는 고객의 채무소송 소장 작성을 AI를 이용해 3만9000원에 제공하고 있다.
특히 텍스트나 사진, 동영상의 패턴을 인식하고 판독하는 업무를 중심으로 AI 자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영국 공항에서는 인력 수십 명이 맡아 하던 출입국심사를 안면인식기술이 결합된 로봇으로 대체했다. 교통관제나 시설물 출입관제도 자동화가 가속화되고 있다.
AI를 도입하면 보험 보상심사나 보상금 산정 업무 시 보험 사정사가 직접 현장에 나가지 않아도 된다. 로봇의 사진 판독만으로도 손해율이 산정되기 때문이다. 스포츠 중계나 문서 작성도 음성·데이터·기록물을 로봇이 스스로 인식해 요약하고 정리한 뒤 e메일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발송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 사무실 모습이 달라지고 있다. 공장 제조라인에서 노동자가 빠르게 사라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반 사무 분야에서도 더는 사람의 손길이 필요 없게 됐다. 원치 않는다고 피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오히려 적극적으로 대응해 기업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 또한 인력구조를 바꾸고 조직운영을 재설계해 다가오는 미래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