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청약 요건을 까다롭게 한 ‘11·3 부동산대책’에 조기 대선 이후 새 정권의 부동산 정책 변화 가능성, 미국 금리인상 등 불확실성 요소까지 더해지면서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될 곳’으로만 집중되고 있다.
서울에서는 강남권 재건축 아파트로 몰린 투자 자금이 집값 상승세를 견인하고, 지방에서는 분양권 전매 제한 규제를 피해간 부산 분양시장으로 청약 수요가 몰리고 있다. 반면 기타 지방에서는 수요를 웃도는 공급이 이어지며 주인을 찾지 못한 주택이 쌓여가고 집값도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3월 16일 1순위 청약 접수에 나선 ‘부산연지꿈에그린’. 전체 1113가구 중 481가구를 일반 분양하는데 모두 10만9805건의 청약통장이 몰렸다. 평균 청약 경쟁률 222.8 대 1로, 직전 ‘해운대롯데캐슬스타’(57.9 대 1) 기록을 가뿐히 제치며 올해 청약 경쟁률 1위 자리에 올랐다.
이 두 단지를 포함해 지난달까지 전국에서 분양한 신규 아파트의 청약 경쟁률 상위 10개 단지 가운데 4개가 부산에서 나왔다. 11·3 부동산대책 이후 전체 청약 경쟁률이 크게 떨어졌는데도 부산 분양시장만큼은 활황세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저금리 기조에 대출 규제까지 완화되며 최근 2년간 분양시장에 분양권 웃돈을 노리는 ‘단타 투기족’이 몰려들자 정부는 지난해 11월 3일 ‘실수요 중심의 시장형성을 통한 주택시장의 안정적 관리 방안’을 꺼냈다. 이 안은 분양시장이 과열을 보이는 지역을 ‘청약조정대상지역’으로 선정해 청약 1순위 요건과 재당첨 제한 요건을 강화하고 분양권 전매 제한 기간을 늘리는 등의 규제책을 담았다.
청약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된 시·군·구는 모두 37곳. 서울에서는 25개 자치구 전체가 들어갔고 경기지역에서는 과천, 성남, 하남, 고양, 화성 동탄2, 남양주시가 포함됐다. 지방에서는 세종시와 함께 부산 해운대구, 연제구, 동래구, 남구, 수영구가 들어갔다.
대학생들까지 분양권 웃돈을 노리고 ‘묻지마’ 청약에 나서던 이전과 달리 청약조정대상지역에선 가구주가 아니면 1순위로 청약할 수 없고 한 번 당첨되면 5년 이내 재당첨이 불가해 지난해 말부터 청약시장이 전체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부산의 경우 청약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됐지만 전국에서 유일하게 분양권 전매 제한 규제를 비켜갔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이 더는 분양권 단타 수익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서울 등 수도권에서 벗어나 일제히 부산으로 몰려든 것이다. 현지 부동산공인중개업소 관계자들은 “다른 지역에선 모두 분양권 전매가 제한되다 보니 투자자들이 부산으로 모여들고 있다”며 “청약자의 60% 이상은 투자자”라고 입을 모았다.
서울은 신규 분양시장이 한풀 꺾인 대신, 강남 재건축 단지에 집중된 투자 자금이 서울 전체 집값을 밀어올리고 있다. 지난달 서울 평균 아파트값은 처음으로 6억 원을 넘어섰다. KB국민은행 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 가격은 6억17만 원으로 2015년 5억 원대에 접어든 지 22개월 만에 6억 원대로 올라섰다.
양극화 부추기는 오락가락 부동산 정책
강남 11개 구 평균 아파트값은 지난해 말과 비교해 431만 원 올랐지만, 같은 기간 강북 14개 구 아파트값은 평균 247만 원 상승하는 데 그쳤다. 특히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투자 자금이 몰리는 강남, 서초, 송파 등 강남3구의 매매 가격 상승폭은 서울 전체 지역을 크게 웃돌았다.
양지영 리얼투데이 리서치실장은 “지난해 말 부동산 규제 기조로 다소 가격이 빠졌던 강남권 재건축 단지들은 현재 사업 속도가 빨라, 올해 말 유예가 종료되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를 피할 수 있는 단지들을 중심으로 투자자가 몰리면서 지난해 고점을 회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방에서는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고 미분양 물량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올해만 2만2000여 가구가 입주를 앞둔 대구에서는 공급과잉에 대한 우려감으로 집값이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울산 역시 조선업계 불황으로 지역 내 수요가 줄어드는 데 반해 입주 물량은 늘어나면서 11개월 연속 집값이 떨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월 말 기준 지방 미분양 물량은 4만3049가구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42%가량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대도시가 아닌 지방은 대규모 미분양 사태에 신음하고 있다. 지난달 충북 음성 ‘생극태경에코그린’은 104가구 분양 모집에 나섰지만 2순위까지도 청약 접수자가 1명도 나타나지 않았다. 경북에서 같은 달 분양한 ‘칠곡왜관드림뷰’도 68가구 모집에 청약자는 10명에 그쳤다.
이처럼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심화된 데는 관련 정책이 시장 상황에 따라 온탕과 냉탕을 오간 영향이 크다.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부동산시장을 활성화하려는 목적으로 규제를 대거 풀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가 처음 내놓은 ‘4·1 부동산대책’에 따라 주택 구매자의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면제해줬다. 2014년에는 대출 규제를 대폭 완화해 ‘빚내서 집 사라’는 신호를 보냈다.
2014년 7월 경제부총리로 취임한 최경환 전 기획재정부 장관이 “부동산시장이 한여름에 겨울옷을 입고 있다”며 LTV(주택담보인정비율)와 DTI(총부채상환비율)를 각각 70%, 60% 완화한 것이다. 그해 말에는 부동산시장의 규제를 크게 완화하는 이른바 ‘부동산 3법’의 국회 통과가 이어졌다. 분양가 상한제 폐지,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 유예, 조합원 분양주택 수 제한 해제 등을 내용으로 한 부동산 3법은 강남 재건축시장에 불을 지폈다.
정부가 시장을 향해 끊임없이 ‘집을 사라’는 신호를 보내면서 부동산시장은 활황세를 이어갔다. 2015년에는 119만3691건으로 주택 매매 거래량이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고, 신규 공급 물량도 대거 쏟아졌다. 온라인 주택거래 정보 사이트 부동산114에 따르면 2015년과 지난해 분양한 아파트는 각각 43만4179가구, 37만6077가구로 2011년 이후 매년 20만 가구 안팎이던 신규 분양 물량을 크게 뛰어넘었다.
특히 2015년과 지난해 지방에서 분양된 물량만 각각 21만5673가구, 19만2145가구로 예년 전국 공급 물량 수준에 달했다. 이 같은 부동산경기 부양책 때문에 공급과잉은 물론 가계부채 급증을 우려하는 목소리까지 번지자 정부는 결국 지난해 11·3 부동산대책으로 ‘급제동’을 걸었다. 금융권 역시 집단대출에까지 여신심사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는 등 규제 기조로 돌아섰다.
투자보다 부채 감당 여부가 중요
송인호 KDI(한국개발연구원) 공공투자정책실장은 “선분양 제도를 시행하는 우리나라 주택시장에서 지역별 양극화를 줄이려면 부동산경기에 따라 인위적인 부양 정책과 규제 정책을 오갈 것이 아니라, 투기 수요의 진입장벽을 높이는 실수요 중심의 정책을 일관되게 끌고 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는 올 하반기로 갈수록 더 심화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김규정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하반기로 갈수록 입주 물량이 증가하고 대선 이후 새로운 부동산시장 규제책이 나올 수도 있어 양극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 역시 “지난달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한 데 이어 올해 2차례 더 금리를 인상하겠다고 예고한 만큼 국내 대출이 더욱 어려워지면 안정적인 곳으로 돈이 몰릴 개연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상황에서는 자금 조달 능력 등을 꼼꼼히 따져 신중하게 투자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한다. 함 센터장은 “최근 2년처럼 주택 가격이 단기간에 상승하는 시기는 지나갔다”며 “규제 기조가 이어지면서 대출 부담이 더 커질 수 있는 만큼 투자에 앞서 부채 감당 수준에 대한 포트폴리오를 짜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입지적 희소성이 대두되는 강남 재건축이나 교통망 구축 등의 호재가 있는 지역은 투자 자금이 집중돼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라면서 “검증된 부동산을 조정 타이밍에 잡을 수 있는 투자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