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새벽,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eral Reserve Board·연준)는 기준금리(Fed Rate)를 0.75~1%로 인상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0~0.25%를 유지하다 2015년 12월 0.25~0.5%, 2016년 12월 0.5~0.75%로 올린 이후 3개월 만이다. 보통 연준의 금리인상 스타일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이렇게 느리지 않았다. 느려진 가장 중요한 이유는 금융위기 이후 경기회복 속도가 가장 더뎠기 때문. 연준은 성급한 금리인상으로 경기회복 기류를 중간에 꺾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미국의 생산활동은 지속적으로 회복됐고, 2월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 제조업지수 역시 57.7을 기록하며 경제가 회복되고 있음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 이후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 미국 주식시장 역시 긍정적 분위기를 확산했다. 특히 3월 10일 미국 비농업 부문 고용지표가 23만5000명 증가하고 실업률이 4.7%라는 발표가 나오자 미국 금융계는 연준이 금리인상 횟수를 늘리고 속도 역시 빠르게 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하지만 연준은 “기준금리는 시장 예상대로 인상했지만 올해 금리인상 횟수는 종전 예고한 대로 세 번만 할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은 연준이 ‘매파’(물가 안정을 최고 목표로 삼아 금리인상을 옹호하는 강경파)에서 태도가 변했다고 분석했다. 심지어 매파의 정반대인 ‘비둘기파’(낮은 금리를 유지해 경제성장을 돕자는 온건파)로 바뀌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왜 세 번의 인상일까
미국 경기가 좋아졌다면 왜 연준은 여전히 세 번의 금리인상만 예고한 것일까. 간단하게 답하자면 연준은 미국이 인플레이션 목표치인 2%를 꾸준히 유지할 수 있는 상태에 와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나와 있는 올해 1월까지 데이터를 보자. 미국의 1년간 헤드라인 인플레이션(Headline Inflation)은 2.5%, 식료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코어 인플레이션(Core Inflation)은 1.74%로 연준의 목표 인플레이션에 다가가고 있다.하지만 연준은 3월 초 내놓은 ‘연준의 발표문’(연준이 지역별·분야별 경제동향을 조사하고 분석한 보고서)에서 심한 물가상승의 압박은 없다고 밝혔다. 또 이번 ‘연준의 발표문’을 보면 지난해 12월 보고서에 있던 ‘2%의 인플레이션에서 모자란(In light of the current shortfall of inflation from 2 percent)’이란 표현이 빠졌다. 이는 연준 역시 목표로 하는 인플레이션에 가까워졌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확실한 증거다.
중앙은행들은 필립스 곡선(Phillips Curve)이라는 경제이론에 바탕을 두고 경제를 평가한다. 필립스 곡선은 인플레이션과 실업의 관계를 정의한 것이다. 단순화해보면 고용 상태가 좋을 경우 인플레이션이 높아지고, 고용 상태가 나쁠 경우 인플레이션도 내려가는 관계다. 미국의 고용은 매우 건강하게 성장했다.
하지만 연준은 완벽하다고 보지 않는다. 이유는 임금 때문이다. 미국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지난 1년 대비 2.8% 올랐다. 하지만 이 같은 임금상승은 연준이 목표로 하는 2%대 인플레이션을 지속적으로 달성하기에는 약간 모자란 듯하다는 것이다.
인플레이션을 충분히 유발할 수 있는 고용 상태가 되려면 실업률이 더 낮아지거나 임금이 올라 그 차이를 메워야 한다. 만약 시간당 평균 임금이 빨리 오르지 않는다면 현재 굉장히 낮은 실업률로 보이는 4.7%보다 더 낮은 실업률을 마주할 개연성도 상당히 크다. 하지만 미국의 생산성 증가 추이를 볼 때 시간당 평균 임금은 조만간 좀 더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금리인상 횟수를 세 번으로 제한한 이유는 또 다른 고려도 있었을 것이다. 금융위기 때 연준은 위험한 상태에 빠진 많은 자산을 사들여 가격을 지탱했다. 이때 매입한 자산 때문에 연준의 대차대조표는 금융위기 전에 비해 엄청난 규모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연준은 언젠가 이 자산을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하는데, 당연히 시장에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금리를 완전히 올리기 전 연준은 이 자산을 어떻게 할지 고려해야 한다.
물가상승률 2%가 갖는 의미
도대체 2% 이상이라는 연준의 목표 인플레이션(물가상승률)은 어디서 나온 숫자일까. 높은 인플레이션은 경제와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 쉬운 예로, 극도로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오늘 3000원에 먹은 떡볶이 1인분이 내일 6000원이 될 수 있다. 높은 인플레이션은 대체로 엄청나게 불안정한 상황을 가져오기도 한다.그렇다면 인플레이션은 낮을수록 좋을까. 아니다. 경기가 나빠지면 기업은 매출과 생산이 감소하는 만큼 고용 비용도 줄이고자 한다. 하지만 임금을 깎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만약 인플레이션이 조금이라도 있는 상황이라면 실제로 임금액은 줄지 않더라도 임금의 실질가치는 낮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은 고용을 줄이거나 임금을 낮춰야 하는 압박을 덜 받는다.
중앙은행 처지에서도 약간의 인플레이션은 많은 장점을 갖는다. 인플레이션이 너무 낮아 금리를 계속 낮게 유지해야 할 경우 경기가 나빠졌을 때 제로(0) 금리, 심지어 마이너스 금리로 가야 하는 선택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에 세계 많은 국가의 중앙은행은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2~3%로 잡는다.
2008년 이후 봐왔던 미국의 0~0.25% 기준금리 시대는 확실히 갔다. 비록 연준은 시장의 예상과 달리 2017년 세 번 금리를 인상할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번 회의에서 많은 연준 의원은 올해와 내년 예상 기준금리를 지난해 12월 회의 때에 비해 상향 조정했다.
최소한 미국에서는 초저금리 시대가 저문 것이다. 연준 의원 대부분은 앞으로 2~3년 동안 3%대 기준금리를 예상하고 있다. 역사에 비춰볼 때 이는 과거 같은 높은 금리 시대가 다시 온다고 예상하고 있지는 않다는 증거다. 초저금리는 아니지만, 상대적으로 낮은 금리 시대에 살게 될 것은 거의 확실하다.
유럽 역시 지난해와는 상황이 약간 다르다. 3월 둘째 주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위험의 균형이 개선됐다(Improvement in balance of risks)”고 말했다. 유럽 시장은 더는 금리인하가 없고 2018년부터 유럽 역시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을 시작하지 않을까 예상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일본, 유럽중앙은행의 금리정책이 미국 연준의 금리정책과 함께 갈 수 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나 현재 상황으로 보면 세계 주요 국가의 금리 사이클은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싱크(동기화)가 될 수 있을 듯하다. 아마도 초저금리 시대는 생각보다 빨리 지나갈 수도 있을 것이다.
영주 닐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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