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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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사드 때문이 아니라니까요”

화장품업계, 中 사드 보복성 제재에도 꿀 먹은 벙어리 된 이유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7-02-17 16:4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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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결정에 따른 중국의 몽니가 ‘케이뷰티(K-beauty)’로 옮겨붙고 있다. 최근 중국 국가질량감독검험검역총국(질검총국)이 발표한 ‘2016년 12월 불합격 수입 화장품 명단’을 보더라도 심상치 않은 기류가 느껴진다.

    중국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12월에도 한국 화장품 수입을 무더기로 불허했다. 이번에 수입 허가를 받지 못한 화장품 68개 가운데 19개가 한국산이다. 품목 개수로 보면 호주가 22개로 가장 많고 그 뒤를 이어 한국이 2위를 차지한다. 하지만 호주는 수입 불허 제품이 대부분 비누이고 한국은 메이크업베이스, 에센스 등 화장품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중국은 품질 안전성을 이유로 지난해 말부터 화장품 관리 규정을 까다롭게 바꾼 데다 위생허가 절차도 지연시키고 있다. 기존에 일반 화장품으로 분류되던 화장품 중 일부가 기능성 화장품으로 재분류되면서 위생허가 절차에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고 있는 것. 또한 지난해 4월부터 중국의 화장품 면세 정책이 바뀌면서 한국 화장품 전문 역(逆)직접구매(직구) 사이트가 직격탄을 맞고 있다. 중국의 새로운 통관 정책에 따르면 과거 100위안(약 1만7000원) 이하 소액 직구에 대한 면세가 폐지되고 화장품 가격에 따라 11.9~32.9% 관세를 내야 한다. 과거에는 100위안에 판매되던 화장품이 면세 혜택이 없어지면서 132위안가량(약 2만2400원)으로 비싸진 것.

    더욱이 지난해 7월 우리 정부가 한반도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한 이후 한국 화장품에 대해 중국 세관 절차가 날로 까다로워지고 있다. 화장품 전문 역직구 사이트 한 관계자는 “EMS(국제특급우편) 택배 물건 중 ‘화장품’이라고 쓰인 물건은 거의 다 박스를 뜯어보고 관세를 매기고 있다. 특별한 이유 없이 택배가 사나흘간 ‘통관검사 대기’에 걸려 배송이 늦어지는 경우도 있어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EMS 택배의 ‘반품’ 사례가 줄을 잇고 있다. 관세가 높다는 이유로 상품 구매를 포기하고 한국으로 다시 돌려보내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이 관계자는 “배송비를 제외하고 환불 처리를 해줄 수밖에 없어 매출에 타격을 입고 있다. 한동안 잘나가던 역직구 사이트도 최근에는 버티기 힘들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보따리상 영업 막히니 내수도 빨간불

    한편 정식 유통 채널이 아닌 ‘보따리상’에게도 ‘사드 보복’ 여파가 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유학생 및 관광객을 포섭해 조직화한 보따리상은 국내 면세점을 돌며 중국 내 인기 제품을 대량 구매한 뒤 중국으로 반입해 온라인 등에서 판매해왔는데, 최근 중국 관세 정책이 까다로워지면서 이들의 입지가 대폭 축소됐다.

    이 때문에 화장품업계는 새로운 고민에 빠진 모습이다. 겉으로는 불법유통업자의 난립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 평가하면서도 속으로는 매출 하락을 우려하고 있는 것. 그동안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활건강은 면세점 제품 판매 수량을 인당 5~20개로 제한해 보따리상을 단속해왔지만 국내 영업 특약점을 통해 나가는 경우는 마땅히 손쓸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보따리상의 활동이 위축되면서 국내 매출이 하락세를 타고 있다. 특히 중소업체의 고민이 깊다. 중소업체의 경우 중국 내 마땅한 유통 라인이 없어 마진이 줄어들더라도 보따리상에게 중국 유통의 상당 부분을 의존해온 게 사실이다.   

    화장품업계 한 관계자는 “보따리상이 매출을 늘려주는 건 물론, 중국 내에서 홍보 까지 해주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끌어들이는 중소업체가 많았다. 보따리상을 눈감아주는 건 대기업도 마찬가지인데, 요즘 같은 상황에서는 국내 영업팀에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다.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내수가 얼어붙은 마당에 보따리상 수요마저 줄어들면 타격이 크다.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마트에서 해당 기업 제품의 특판 행사가 진행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아모레퍼시픽은 “어떤 이유에서든 불법유통업자들을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아모레퍼시픽 한 관계자는 “정식 유통 채널이 아닌 보따리상에 의한 매출은 처음부터 집계 대상이 아니었다. 2016년 영업이익도 2015년보다 32% 증가하는 등 정식 중국 수출 경로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모레퍼시픽은 내수 실적을 뜻하는 국내 화장품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25.5%나 감소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역직구 사이트 및 보따리상의 매출과 직결됐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LG생활건강 화장품사업부도 지난해 분기별 성적표를 들여다보면 낙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최근 수년간 회사 성장을 견인해왔던 화장품사업부의 기여도가 지난해 4분기 다른 분기와 비교해 줄어들었다. 지난해 4분기 화장품사업부 매출 증가액은  992억 원으로 전체 증가분 1284억 원의 77%를 차지했다. 하지만 지난해 1분기 85.7%, 2분기 83.9%, 3분기 87.9%와 비교하면 최고 10%p 낮은 수치다. 



    중국 현지 사업에 차질 생길까 전전긍긍

    한편 사드 배치 결정 이후 화장품회사 주가 역시 큰 폭으로 하락했다. 화장품업계 대장주인 아모레퍼시픽 주가는 사드 배치 결정 직전인 지난해 7월 7일 52주 최고가인 44만3000원까지 기록했으나 2월 10일 기준 28만 원대로 떨어졌다. LG생활건강도 지난해 7월 8일 119만9000원까지 올랐으나 2월 10일 기준 82만8000원으로 하락했다. 같은 기간 중소업체의 주가 하락은 에이블씨엔씨 44%, 토니모리 41%, 잇츠스킨 55%에 달했다. 한국희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중국 정부가 저가 한국 여행을 규제하는 등 중국인 관광객 입국 둔화가 예상되는 만큼 유커 의존도가 높은 화장품업계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화장품업계는 중국의 사드 보복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국내 업계에서는 중국의 사드 보복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지만 사실상 입은 피해는 없다. 글로벌 면세점에서 성장세를 보이는 등 사드 영향이 있는지는 아직 판단하기 이르다”고 밝혔다. LG생활건강 관계자 역시 “어찌 됐든 매출이 꾸준히 느는 상황에서 명확하게 사드 피해를 입고 있다고 얘기하기는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두고 업계 관계자들은 “더 큰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15년 가까이 화장품 홍보 및 영업에 몸담아온 업계 한 관계자는 “사드 배치 대지를 제공한 롯데가 최근 중국 현지에서 세 차례나 규제 명단에 오르는 등 누가 봐도 ‘보복성’ 피해를 입고 있는 만큼 화장품업계 역시 직접적으로 보복을 당하고 있지만 드러내놓고 얘기하기는 곤란한 상황이다. 중국 법인이 현지에 진출해 있고 중국에서 화장품 제조공장도 운영 중인 상황에서 중국이 현지 사업에 제동을 걸고 나서면 그 피해는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현지화 전략으로 중국에 대규모 설비와 유통망을 확보해 중국 여성 피부에 맞는 화장품을 직접 생산하고 있다”며 “한국 화장품에 대한 중국 내 인지도는 여전히 높은 만큼 섣부른 우려는 오히려 좋지 않을 것 같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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