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프랑스 자연주의 문학의 대표작가 에밀 졸라와 후기인상주의 회화의 선구자 폴 세잔의 우정에 대한 기록이다. 소년 졸라가 세잔이 살던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로 이사하면서 두 예술가의 평생 인연은 시작된다. 세잔은 금융업을 하던 이 지역 유명한 집안의 아들이었고, 졸라는 파리에서 이사 온 이탈리아 출신 엔지니어의 아들이었다. ‘이탈리아 놈’이라며 아이들에게 맞고 있던 졸라를 세잔이 구해주면서 두 소년은 특별한 인연을 맺는다. 어릴 때부터 졸라는 시인, 세잔은 화가 지망생이었다. 졸라는 부친이 갑자기 죽는 바람에 모친을 따라 파리로 돌아간 뒤 문학도로서 수련 과정을 밟는다. 세잔도 화가 수업을 받으려고 파리 미술학교에 진학하면서 두 남자는 이제 예술가로서 새로운 우정을 시작한다.
영화의 원 제목은 ‘세잔과 나(Cezanne et moi)’다. 졸라가 세잔을 바라보며 그의 삶을 기록한 형식을 취하고 있다. 아마 졸라의 소설 ‘작품’(1886)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에서 묘사되듯 졸라는 어느 화가의 삶을 그린 ‘작품’이란 제목의 소설을 발표했는데,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비극적인 삶을 사는 주인공 화가는 폴 세잔을 떠올리게 한다.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소설 ‘작품’처럼 작가 졸라가 화가 세잔을 바라보는 시선을 중심으로, 두 예술가의 굴곡진 삶을 그린다.
흥미로운 점은 예술, 그리고 예술가에 대한 두 거장의 자못 비교되는 시선이다. 어쩌면 이 시선이 두 사람의 삶을 다르게 이끌었을 것이다. 알다시피 졸라는 생전에 대가 대접을 받았고, 사회로부터 프랑스의 양심으로 존중받았으며, 수많은 베스트셀러로 유복한 삶을 누렸다. ‘목로주점’(1877), ‘나나’(1880), ‘제르미날’(1885) 등 지금 고전으로 통하는 졸라의 소설은 당대 이미 베스트셀러였다. 졸라는 사회와 활발하게 대화하며 시대 흐름을 읽었다. 주변에 따르는 사람도 많았다. 반면 세잔은 예술적 혁신에 온 힘을 쏟았다. 그에게 대중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세잔은 당대 인상주의 리더였던 에두아르 마네마저 혁신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폄하했다. 대중의 반응에 무심한 세잔은 무명이었고, 그의 예술은 이해받지 못했으며, 그림은 팔리지 않았고, 살림은 궁핍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웠다.
시대의 대변인으로 산 졸라와 미래의 혁신가로 산 세잔. ‘나의 위대한 친구, 세잔’은 두 예술가의 우정에 첨예하게 부딪치는 예술적 갈등을 심어놓았다. 졸라가 보기에 세잔은 자기 세계에 갇힌 미성년자였다. 세잔이 보기에 졸라는 세상과 타협하는 영리한 작가였다. 영화에선 졸라의 현실주의와 세잔의 이상주의가 팽팽히 맞선다. 굳이 편을 들자면 이 영화는 제목에서 보듯 세잔에게 좀 더 기운 듯 보인다. 아마 미래의 혁신을 위해 고군분투한 한 예술가의 순수한 열정에 대한 지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