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멜로드라마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줄리에타’는 그가 즐겨 다루던 주제인 ‘어머니와 딸’에 관한 영화다. 이를테면 할머니에서 손녀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의 운명을 다룬 ‘귀향’(2006)과 비교된다. 어머니와 딸 사이 오해로 인한 이별과 고통, 이에 따른 죄책감이 이야기의 주요 모티프를 구성하고 있어서다. 중년 여성 줄리에타(에마 수아레스 분)는 파트너와 함께 지금 살고 있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포르투갈로 이주할 계획이다. 그런데 길에서 우연히 만난 딸의 친구로부터 13년 전 연락이 끊긴 딸의 소식을 들은 뒤 모든 계획을 취소한다. 혹시 딸이 자기를 찾아올지 모른다는 희망에 마드리드에 남기로 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온화한 인상을 가진 줄리에타가 그렇게 오래 딸과 연락하지 못하고 살았을까. 이때부터 알모도바르 특유의 복잡한 플래시백과 내레이션이 이어지며, 우리는 모녀 사이의 기구한 운명을 따라가는 것이다.
알모도바르의 멜로드라마는 표현의 과장법, 특히 컬러의 과장법이란 점에서 할리우드 고전기의 거장인 더글러스 서크의 작품과 자주 비교된다. 팝아트에서처럼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이 마치 색의 삼각관계를 이루 듯 서로 경쟁하는 게 두 감독 영화의 공통된 특성이다. ‘줄리에타’에서 강조된 색깔은 빨강과 파랑이다. 줄리에타가 딸과 연락이 끊긴 과거를 회상하며 화면은 1980년대로 넘어가고, 젊은 줄리에타(아드리아나 우가르테 분)는 마치 펑크족처럼 파란색 가죽 미니스커트와 파란색 스타킹, 그리고 산발한 듯한 금발을 한 채 등장한다. 푸른색이 강조돼서인지 줄리에타의 인상은 대단히 차가워 보인다. 동시에 순수해 보이기도 한다. 바로 그런 청색의 특성, 곧 맑고 순수하지만 타인에게 차가운 청춘의 특성이 젊은 줄리에타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있다.
보통 청춘의 특성으로 강조되는 색은 빨강이다. ‘이유 없는 반항’(1955)에서 제임스 딘이 입고 나온 붉은 점퍼가 대표적이다. 빨강은 도전적이고 열정적이며 또 반항적인 색깔로 해석된다. 그런데 ‘줄리에타’는 흥미롭게도 청춘의 색으로 푸른색을 내세웠다. 청춘은 대개 푸른색처럼 맑고 순수해 의도하지 않은 실수를 범한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일 테다. 반면 빨강은 중년의 색으로 사용되고 있다. 젊은 줄리에타가 시종일관 푸른색으로 표현된다면, 중년의 줄리에타는 불타는 붉은색으로 표현된다. 통념의 반대인데, 어쩌면 알모도바르의 컬러 표현법이 더 사실적일 듯하다. 중년의 사랑이, 또는 중년의 감성이 붉은색처럼 더 위험하고 열정적이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이때 ‘피’를 흘리는 듯한 고통이 인생에 찾아오기 때문이기도 할 테다. 줄리에타의 삶도 그렇게 전개된다.
‘줄리에타’는 푸른 여성이 붉은 여성으로 변해가는 일종의 성장영화다. 그런 변신은 우리 대다수의 삶에도 통하는 공식일 테다. 색깔에 의한 강렬한 동일시와 감정이입, 이것은 알모도바르가 선사하는 멜로드라마의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