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가이드 서울’ 편이 발간됐습니다. 116년 전통에 빛나는 ‘미쉐린 가이드’는 식당의 가치에 따라 매기는 별로 유명한데요. 이번에 한국은 식당 24곳이 미쉐린 가이드 별을 받았습니다. 19곳이 별 1개(맛있는 식당), 3곳이 별 2개(멀어도 가볼 만한 식당), 2곳이 별 3개(일부러 찾아갈 만한 탁월한 식당)를 받았으니 총 31개의 별이 한국 식당에 주어진 것입니다. 그 밖에 미쉐린이 주목하는 서울시내 식당 147곳도 공개됐습니다. 이에 업계의 희비가 엇갈립니다. 명단에 들어간 식당엔 벌써 예약이 밀려든다는 전언입니다. 마침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여파로 울상을 짓던 참인데 해당 식당엔 가뭄 끝 단비가 따로 없습니다.
그런데 한번 생각해볼 일입니다. 흔히 ‘음식은 문화’라고 합니다. “네가 좋아하는 음식을 얘기하면 네가 어떤 사람인지 말할 수 있다”는 말처럼 문화는 그 사람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그 무엇입니다. 그러니 맛이란 건 절대적일 수 없는 상대적인 개념이며 맞고 틀림도, 낫고 못함도 없습니다. 우리 입맛에 맞지 않는 외국 음식이 있듯 그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우리 음식 또한 있을 겁니다. 지금 같은 식이라면 코를 뻥 뚫어주는 삭힌 홍어요리는 결코 별을 받을 수 없을 겁니다. 한국 식당에 대한 미쉐린 가이드의 별에 마음이 불편한 이유입니다.
물론 누구나 납득 가능한 합리적인 기준이라면 고개를 끄덕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 기업에서 주는, 어떤 사람이 어떤 기준으로 어떻게 매기는지 모든 게 베일에 싸인 별에 우리 식당이 왜 웃고 울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맛이란 객관식의 ‘선택’이 아니라 주관식의 ‘풀이’이기 때문입니다.
기업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뭔가 기준이 하나 생기면 다들 그 기준에 맞추려고 안달입니다. 소리 높여 차별화를 부르짖으면서도 모두가 비슷해지는 우를 범하는 건 그래서입니다. 다른 회사보다 ‘나은’ 회사가 아니라 뭔가 ‘다른’ 회사가 살아남습니다. ‘벤치마킹’의 유효기간은 끝났습니다. 남과는 다른 자신만의 차별적 강점에 집중해야 하는 요즘입니다. 누가 뭐라 하든 씩씩하게 팔 흔들며 내 갈 길 걸어가는 겁니다. 우리를 옥죄던 상자를 깨부수고 나가야 합니다. 그래야 고객도 눈여겨봅니다.
“나는 미술을 믿지 않는다. 미술가를 믿는다.” 화장실 변기에 ‘샘’이라는 제목을 붙여 전시회에 출품한 마르셀 뒤샹이 했던 말입니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작품’으로 승화했습니다. 그의 말을 빌려 표현해봅니다. “나는 미쉐린 가이드 별을 믿지 않는다. 내 혀를 믿는다.” 다른 이의 기준에 맞출 일이 아닙니다. 외국 기업의 ‘우리 식당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 차제에 미쉐린 가이드에 필적할 만한 우리의 기준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차별화’라는 관점에서도 우리의 음식과 맛은 우리가 경영하고 마케팅해야 합니다.
아차, 문득 불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한류 요리를 통한 ‘문화융성’을 목적으로 ‘K 요리재단’을 만들겠다고 나서는 정부의 모습이 어른거려서입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미쉐린에 우리 식당의 평가를 맡기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음은 쓰지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