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貞洞)은 태조 계비 신덕왕후의 능인 정릉이 도성 안에 조성된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 이 동네는 서울로 들어오는 대문인 숭례문과 경복궁 사이 중간에 자리 잡았다. 임진왜란 당시 궁궐이 불에 타는 바람에 난리 직후 선조가 잠시 거처하던 정동은 개항 이후 갑자기 여러 기록에 등장한다. 1884년 영국대사관이 들어서고, 1890년에는 러시아공사관이 세워졌다. 외교 무대였던 이곳에서 선교사들이 배재학당과 이화학당을 세워 신식교육을 했고, 정동교회와 손탁호텔도 이채로웠다. 그러나 정동은 비운의 역사 속에서 더욱 커졌다. 고종의 아관파천과 덕수궁 환궁, 그리고 대한제국 선포가 정동에서 이뤄졌다. 약 30년 동안 정동은 서구문화가 들어오는 통로이기도 했다. 궁궐과 학교를 비롯해 교회, 공사관 같은 서양식 건물들은 시대의 증거가 됐다.
서울에서 가장 아름다운 덕수궁 돌담길에 가을빛이 한창일, 10월 마지막 주말인 28일과 29일 정동야행 축제가 열린다. 신교육의 산실인 배재학당 동관과 여성교육의 요람인 이화학당, 최초 민간병원인 정동병원(현 정동교회 내), 최초 여성전문병원인 보구여관(이화여고 내), 서울의 첫 호텔인 손탁호텔(이화여고 100주년기념관 자리), 한국 최초의 커피애호가 고종이 커피를 즐겼던 덕수궁 정관헌, 1922년 영국인 A. 딕슨이 설계해 26년 완공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등을 둘러볼 수 있다. 러시아공사관 터의 하얀 전망탑은 인파로 북적일 것이다.
‘2016 문화재 야행(夜行)’은 문화재청이 펼치는 사업이다. 서울 정동을 시작으로 부산, 대구, 강릉, 청주 등 10개 시도에서 5월부터 8월까지 65만 명 넘는 관람객이 참여했다. 그중 정동야행이 가장 인기가 높아 올봄 행사에 13만 명 이상이 모였다. 문화재 야행은 지금까지 낮에 주로 보던 문화유산을 밤에도 볼 수 있도록 구성한 프로그램이다. 모두 흥미 있는 7개 행사가 펼쳐진다. ①야경(夜景·밤에 비치는 문화재) ②야로(夜路·밤에 걷는 거리) ③야사(夜史·밤에 듣는 역사 이야기) ④야화(夜畵·밤에 보는 그림) ⑤야설(夜說· 밤에 감상하는 공연) ⑥야식(夜食·밤에 즐기는 음식) ⑦야숙(夜宿·문화재에서의 하룻밤) 등이다. 지역 문화유산 내에서 공연과 전시, 그리고 체험행사로 진행된다.
가을 정동야행은 다채롭다. 고궁음악회와 박물관 야간 개장, 신나는 거리 공연은 물론, 서울시청 별관 13층 전망대에서 덕수궁 야경 보기 행사가 진행되고, 일 년 후 자신이 보낸 엽서를 받는 느린 우체통 등도 마련돼 있다. 대한제국 시기를 체험하는 프로그램도 흥미롭다. 이 시대로 들어가는 복장인 한복 체험으로 시작해 대한제국 여권 발행과 고종 커피잔 만들기, 그리고 대한제국 문양인 자두꽃(옛 오얏꽃) 모양의 장신구 만들기 등이 준비돼 있다. 한복을 입은 관람객은 덕수궁에 무료로 입장 가능하다. 김안순 서울 중구청 문화관광과 문화행사팀장은 도시축제인 정동야행의 성공에 자부심이 강했다. “수도 서울 한복판에 근대 문화유산 1번지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많은 볼거리가 있고, 걷기에 좋은 골목도 있다. 정동 일대의 박물관과 공연장은 매우 뛰어나고, 지역민들과 관련 기관 단체들이 적극 참여한다. 식당가 먹거리도 빼놓을 수 없다.” 만족할 만한 여건이라는 말이다. 이번 가을 정동야행에는 관람객 15만 명 이상이 다녀갈 것으로 예상된다. 자세한 행사 정보와 참여 방법은 ‘정동야행’ 인터넷 홈페이지(culture-night.junggu.seoul.kr)에 나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