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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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정권교체 정조준한 美, 혁명 실세 기소하고 항모 배치

‘30년 전 살인 혐의’ 카스트로 기소… 민간 통한 1억 달러 원조 제안도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6-05-28 07: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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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2016년 11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피델 카스트로 추도행사에 참석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이 2016년 11월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피델 카스트로 추도행사에 참석해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미국 정부가 5월 20일(이하 현지 시간) 라울 카스트로 전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을 기소했다. 그는 형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공산정권의 주역이었다. 미국 정부가 그를 기소한 5월 20일은 124년 전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쿠바의 옛 독립기념일이기도 하다.

    15세기 말부터 400년 넘게 스페인 식민 지배를 받은 쿠바에서는 수차례 독립을 위한 투쟁이 벌어졌다. 그러다 미국이 1898년 4월 25일 독립 전쟁에 개입해 스페인과 맞섰고, 스페인은 같은 해 8월 12일 미국에 항복했다. 쿠바는 미 군정을 거쳐 1902년 5월 20일 독립했다. 이후 50여년 간 친미 정권이 쿠바를 통치하다 1959년 카스트로 형제와 체 게바라가 주도한 쿠바 혁명으로 공산정권이 집권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쿠바 공산정권은 5월 20일을 독립기념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때부터 쿠바는 스페인 식민 세력과 전쟁을 시작한 1868년 10월 10일을 기념해왔다. 미국 정부가 옛 독립기념일에 라울 카스트로(이하 라울)를 기소한 것은 쿠바 공산체제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단호한 의지의 표명인 셈이다.

    WP “라울이 쿠바 핵심 정책 결정”

    라울은 쿠바 공산체제를 일군 인물이다. 그는 민족주의자인 형 피델과 달리 철저한 사회주의자였다. 피델은 라울의 설득으로 1962년 쿠바가 사회주의국가임을 선포한다. 쿠바 헌법 제5조에는 “마르크스-레닌주의 공산당이 쿠바 사회와 국가를 지도한다”고 명시돼 있다.

    피델에게 혁명 동지 체 게바라를 소개해준 것도 라울이었다. 라울은 쿠바군 총사령관과 국방장관을 맡으며 옛 소련의 지원을 받아 쿠바에 공산체제가 뿌리내리도록 했다. 라울은 반체제 인사를 탄압하는 등 쿠바 공산체제 수호자 역할도 했다. 라울은 형이 물러난 2008년부터 2018년까지 쿠바 최고지도자인 국가평의회 의장을, 2011년부터 2021년까지는 공산당 제1서기를 각각 지내며 쿠바를 통치했다. 1931년 6월 3일 생으로 95세의 고령인 라울은 지금도 쿠바 공산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쿠바의 핵심 정책 결정은 여전히 라울이 좌우한다”고 짚었다.



    미국 법무부가 라울을 기소한 것은 30년 전 사건 때문이다. 1996년 2월 24일 쿠바군이 미국 구호 단체인 ‘구원의 형제들’ 소속 항공기 2대를 격추했다. 이 단체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 본부를 둔 쿠바 망명자 모임으로, 주로 플로리다 해협 인근에서 쿠바 난민을 찾아내 구조했다. 이 단체 소속 항공기 2대가 이날 쿠바 공군 소속 미그 전투기가 발사한 공대공 미사일을 맞고 추락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쿠바계 미국인 4명이 숨졌다. 

    미국 법무부는 이 책임을 물어 라울과 쿠바 정권 관계자 5명을 기소했다고 발표했다. 기소장에는 △항공기 격추된 장소가 쿠바 영해가 아닌 국제 공역이고 △당시 쿠바 국방장관이던 라울이 무력 사용을 직접 지시했다고 적시했다. 라울이 받는 혐의는 미국 국적자 살해 공모, 항공기 파괴 2건, 살인 4건 등이다. 이에 대한 유죄가 확정되면 법정 최고형은 사형 또는 종신형이다. 토드 블랜치 미국 법무장관 대행은 “라울에 대한 체포 영장이 발부됐다”며 “그가 자발적으로 오든 다른 방식으로 오든 이곳에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서방 전문가들은 이번 기소가 현 정부 정책을 문제 삼는 수준을 넘어 1959년 쿠바 혁명 이후 60년 넘게 이어진 공산체제의 정당성에 형사 책임을 묻겠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1월 미군에 마약을 밀매한 혐의 등으로 체포돼 미국 뉴욕 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처럼 쿠바 공산체제의 지도자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트럼프 “불량 국가 용납 못 해”

    백악관은 5월 21일(이하 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X 계정에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아야툴라 알리 하마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 등과 라울의 사진을 올리고 각각 ‘체포’ ‘사망’ ‘기소’라고 붉은 글씨로 표시한 뒤 “미국의 적들이 무력화됐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X 계정

    백악관은 5월 21일(이하 현지 시간) 소셜미디어 X 계정에 니콜라스 마두로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아야툴라 알리 하마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 등과 라울의 사진을 올리고 각각 ‘체포’ ‘사망’ ‘기소’라고 붉은 글씨로 표시한 뒤 “미국의 적들이 무력화됐다”고 강조했다. 백악관 X 계정

    쿠바 정권의 압박감은 클 수밖에 없다. 미국 정부는 1월 3일 항공모함 전단을 베네수엘라 앞바다에 배치해 해상 봉쇄를 단행했고, 특수부대를 보내 마두로를 체포했다. 미국은 이번에도 라울을 기소한 직후 항공모함인 니미츠호 전단을 카리브해에 전격 배치했다. 미국 본토와 2200㎞ 떨어진 베네수엘라와 달리 쿠바와 미국 사이 거리는 145㎞에 불과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월 20일 발표한 성명에서 “오늘날 쿠바 정권은 건국 선조들이 피 흘리며 목숨 바쳐 세우고자 했던 나라를 정면으로 배신한 존재”라며 “국민이 고통 받는 동안 쿠바 정권의 도둑 정치 엘리트들은 남은 자원을 독식해 사치스러운 생활을 영위해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마두로 축출을 언급한 뒤 “적대적 외국군과 정보기관, 테러 조직을 품고 있는 불량 국가를 용납할 수 없다”면서 “미국을 위협하는 불량정권은 상응하는 결과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성명은 군사력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백악관은 소셜미디어 X (옛 트위터)계정에 마두로, 아야툴라 알리 하마네이 전 이란 최고지도자 등과 함께 라울의 사진을 올리고 각각 ‘체포’ ‘사망’ ‘기소’라고 붉은 글씨로 표시한 뒤 “미국의 적들이 무력화됐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라울을 기소한 날 부모가 쿠바 망명자 출신인 마코 루비오 미국 국무장관은 스페인어 영상 메시지로 쿠바 국민을 위한 1억 달러(약 1489억 원)규모의 인도적 지원과 위성 인터넷 서비스 제공 의사를 밝혔다. 단 지원 물자는 쿠바 정부를 거치지 않고 가톨릭교회나 신뢰할 수 있는 자선단체를 통해 직접 배분돼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루비오 장관은  “미국은 쿠바와의 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 준비가 돼 있다”며 “미래를 가로막는 유일한 장애물은 여러분의 나라를 장악한 자들뿐”이라며 쿠바 공산정권 지도부를 겨냥했다. 

    미국은 쿠바 공산정권과 일반 주민을 분리해 정권을 압박하면서 민심 이반을 유도하려고 한다. 실제로 미국 정부 대표단을 이끌고 5월 14일 쿠바를 방문한 존 랫클리프 미국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쿠바 정권에 마두로 사례를 언급하며 폐쇄적인 정치체제와 경제를 개방하라고 요구했다. 쿠바 혁명 이후 미국 CIA 국장이 쿠바를 방문한 건 이번이 두 번째로,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랫클리프 국장을 보낸 것은 쿠바 정권의 체제 변화 가능성을 타진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라울 친족들이 실권 장악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가운데)이 5월 22일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반미 시위에 참석해 쿠바 국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미겔 디아스카넬 쿠바 대통령(가운데)이 5월 22일 쿠바 아바나에서 열린 반미 시위에 참석해 쿠바 국기를 흔들고 있다. 뉴시스

    미국의 목표는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을 물러나게 하는 등 쿠바 공산정권을 교체하고 자유 민주선거를 통해 새로운 정부를 출범시키는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헤리티지 재단의 애나 퀸타나 연구원은 “디아스카넬은 은퇴 이후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라울의 충복에 불과하다”면서 “라울이 발탁하고 라울이 후계자로 선택한 디아스카넬은 진정한 개혁을 추진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60년생인 디아스카넬은 2018년 라울 후임으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된 후 2019년 개헌을 통해 대통령직을 부활시키고, 임기를 4년으로 하되 중임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개혁’을 단행했다. 당시 대통령에 선출되고 2023년 재선에 성공한 디아스카넬은 2021년 라울로부터 물려받은 공산당 1서기직 역시 유지하고 있다.

    디아스카넬 외에도 쿠바 정권을 좌지우지하는 실세 중에는 라울의 외아들 알레한드로 카스트로 에스핀 장군이 있다. 소련 유학을 다녀온 공학자이자 육군 준장인 알레한드로는 쿠바 정보기관의 핵심 직책을 거쳐왔다. 2014년 오바마 정부 시절 미국과의 비밀 협상에서 쿠바측 협상 대표를 맡기도 했다. 쿠바의 핵심 외교·안보 의사 결정에 깊숙이 관여하지만 공개 석상에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그는 ‘그림자 속 왕자(prince in the shadows)’로 불린다.

    새로 부상하는 인물도 있다. 라울의 조카인 오스카르 페레스 올리브 프라가 부총리 겸 대외무역·외국인투자부 장관이다. 그는 최근 쿠바 망명객들에게 본국 기업 투자를 허용하는 파격적 개방 정책을 발표했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그를 ‘쿠바판 델시 로드리게스’ 후보로 주목하고 있다. 로드리게스는 베네수엘라 부통령으로, 마두로 축출 이후 임시 대통령을 맡고 있다.  

    쿠바 경제의 최대 70%를 통제하는 군부 산하 국영기업 가에사(GAESA)의 최고경영자(CEO)인 아니아 기예르미나 라스트레스 모레라도 정권 실세다. 라울의 딸인 아니아는 남편이 2022년 사망한 후 가에사를 운영하고 있다. 라울이 30년 전 설립한 가에사는 5성급 호텔들과 항만, 상업은행, 슈퍼마켓, 주유소, 송금업체 등을 운영하며 막대한 수익을 내고 있다. 루비오 장관은 “가에사는 쿠바 정권의 돈줄”이라고 비판했다. 

    서방 전문가들은 “쿠바 정권은 장기간 숙청과 정보 통제를 거쳐와 엘리트 집단의 내부 분열이 거의 없는 구조”라면서 “카스트로 가문의 결속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한다. 디아스카넬 대통령은 미국이 공격하면 전국민이 결사항전할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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