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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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억 위스키’ 맥캘란의 성공 스토리

[명욱의 위스키 도슨트] 빈티지 전략으로 마시는 위스키를 역사적 유물로 탈바꿈

  • 명욱 주류문화칼럼니스트

    입력2025-10-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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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켈란 양조장(위)과 맥켈란 글렌리벳·1926 빈티지. 디앤피 스피리츠 제공 

    맥켈란 양조장(위)과 맥켈란 글렌리벳·1926 빈티지. 디앤피 스피리츠 제공 

    2005년 5월 서울 한 호텔에서 초고가 위스키가 대중에게 공개됐다. 가격은 7000만 원. ‘맥캘란 파인 앤드 레어(Fine&Rare) 1926’ 60년 숙성 제품이었다. 그리고 약 18년이 흐른 2023년 11월 해당 위스키와 같은 해에 증류된 또 다른 맥캘란 위스키(발레리오 아다미 라벨 버전)가 영국 소더비 경매에서 약 36억 원이라는 기록적인 가격에 낙찰됐다. 맥캘란은 대체 어떻게 이런 초고가 위스키 시장을 만들 수 있었을까. 원래부터 맥캘란은 최고 위스키로 군림했던 것일까.

    2등으로 시작한 맥캘란 역사

    맥캘란도 시작부터 ‘1등 위스키’는 아니었다. 1823년 영국에서는 소비세법(Excise Act)이 시행되며 합법적인 위스키 증류소 시대가 열렸다. 이후 1824년 스코틀랜드에 1호 공인 증류소로 등록된 것이 ‘더 글렌리벳’(당시 글렌리벳)이다. 그리고 그 뒤를 이은 2호가 바로 맥캘란이었다.

    맥캘란은 19세기 말부터 스페인산 셰리 캐스크 숙성(셰리 와인이 담겨 온 오크통을 위스키 숙성에 활용하는 것)을 브랜드의 확고한 원칙으로 삼았다. 셰리 캐스크가 위스키에 풍부한 과일, 건포도, 초콜릿 뉘앙스를 부여해 복합적인 풍미를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맥캘란이 100년 넘게 고수한 이 원칙은 20세기 중반 이후 셰리 캐스크의 수급이 어려워지면서 빛을 발했다. 스페인이 1981년 법률 개정으로 셰리 와인을 병입 상태로만 수출하도록 규제하면서 셰리 캐스크의 희소성이 커졌고, 꾸준히 셰리 캐스크를 고집해온 증류소에 대한 시장 관심도 집중됐다.

    당시 맥캘란은 자사 브랜드보다 다른 위스키 기업에 원액을 공급하는 회사로 알려져 있었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다양한 증류소에서 생산된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섞어 만드는데, 맥캘란의 주된 사업은 바로 이 블렌디드 위스키 회사에 원액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이때 맥캘란은 업계 전문가 사이에서는 극찬을 받았지만 정작 소비자들은 최종 제품 이름만 알 뿐 원액 공급처 존재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맥캘란의 초기 사명이 ‘맥캘란-글렌리벳(Macallan-Glenlivet)’인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글렌리벳 지역에 있다는 지리적 의미와 함께 1호 공인 증류소 더 글렌리벳의 후광을 업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랬던 맥캘란이 1980년 역사적 결단을 내린다. ‘글렌리벳’을 떼어내고 정관사 ‘The’를 붙여 ‘The Macallan’으로 새 출발을 한 것이다. 빌려온 명성을 버리고 오직 자기 이름과 품질로 승부하겠다는 독립 선언이었다.



    이후 맥캘란은 자사의 정체성을 적극 알렸다. 맥캘란의 어원, 즉 비옥한 땅을 의미하는 게일어 ‘Magh’와 성 필란(St. Fillan)의 이름 ‘Ellan’이 합쳐진 ‘성 필란의 비옥한 땅’이라는 의미를 부각했다. 위스키 한 잔에서 스코틀랜드 스페이사이드의 자연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셰리 캐스크 숙성으로 희소성 확보

    독립 브랜드로 확고히 자리 잡은 맥캘란은 21세기 들어 시장 판도를 바꾸는 전략을 실행한다. 바로 2002년 ‘파인 앤드 레어 컬렉션’을 통해 대체 불가능한 희소성을 내세우기 시작한 것이다. ‘12년’ 같은 숙성 연수 대신 ‘1926년’처럼 위스키가 증류된 빈티지를 전면에 내걸었는데, 특정 연도에 한정 생산된 빈티지 위스키는 재생산이 불가능하기에 본질적 희소성을 지닌다. 이 전략은 위스키를 마시고 즐기는 소비재에서 시간이 담긴 역사적 유물이자 금융자산으로 탈바꿈시켰다.

    맥캘란은 네 가지 핵심 철학으로 자사 제품을 차별화했다. 첫째는 유난히 작은 증류기(curiously small stills)다. 생산 효율성은 줄어들지만 증류액과 구리의 접촉을 최적화해 깊은 과일 향이 응축된 원액을 얻을 수 있다. 둘째는 100% 천연색(natural colour)이다. 스카치위스키 법규상 캐러멜 색소 첨가가 가능하지만, 맥캘란은 이를 거부하고 오직 셰리 캐스크에서 오랜 숙성을 거친 천연색만 고집했다. 셋째는 셰리 캐스크 직접 제조 및 관리 운영(mastery of wood)이다. 맥캘란은 스페인 현지에서 손수 셰리 캐스크를 제작·관리·공급함으로써 일관된 품질과 희소성을 확보했다. 넷째는 스모키 향이나 요오드 같은 피트 향이 적은 매끄러운 맛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에 맥캘란은 위스키 입문자도 쉽게 즐길 수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맥캘란은 한 병의 위스키를 파는 게 아니라, 200년에 걸친 역경과 극복 스토리를 통해 ‘히스토리’를 팔고 있다. 많은 사람이 맥캘란에 열광하는 이유다. 최고 브랜드란 가장 좋은 제품을 넘어 가장 풍성한 이야기를 건네는 그 무언가인지도 모른다. 

    명욱 칼럼니스트는… 주류 인문학 및 트렌드 연구가. 숙명여대 미식문화 최고위과정 주임교수를 거쳐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로 재직 중이다. 저서로는 ‘젊은 베르테르의 술품’과 ‘말술남녀’가 있다. 최근 술을 통해 역사와 트렌드를 바라보는 ‘술기로운 세계사’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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