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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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천 년 시간 품은 역사 도시 로마

[재이의 여행블루스] 로마를 본 괴테 “세계의 수도에 도착했노라. 마치 새로운 삶이 시작된 듯하다”

  • 재이 여행작가

    입력2025-10-2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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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콜로세움 내부. GETTYIMAGES

    콜로세움 내부. GETTYIMAGES

    지중해의 부드러운 햇살과 테베레강의 물결이 어우러진 이탈리아 수도 로마는 수천 년 시간을 품은 역사 도시다. 고대와 중세, 르네상스와 현대가 한꺼번에 살아 숨 쉬는 이곳은 마치 거대한 서사시의 한 장면 속으로 발을 들이는 것 같은 감동을 준다. ‘영원의 도시’라는 이름은 결코 과장이 아니다. 공항에서 시내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붉은 기와지붕과 회색빛 성벽, 가로수 너머로 보이는 옛 건물들이 시선을 붙든다. 첫인상은 ‘시간의 층위’다. 건물 외벽의 균열과 대리석의 색 바램, 그리고 그 위에 덧입혀진 현대 간판까지 모든 것이 서로 다른 시대의 숨결을 나란히 품고 있다. 

    콜로세움, 성 베드로 성당 품은 ‘세계 수도’

    로마 심장부는 단연 ‘콜로세움’이다. 2000년 전 이 거대한 원형 경기장은 검투사들의 피와 관중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반원형 아치로 층층이 쌓은 외벽은 세월에 깎였지만, 위엄은 조금도 사라지지 않았다. 안으로 들어서면 관중석의 경사와 지하의 복잡한 통로가 드러난다. 돌바닥에서 반사된 열기가 발끝을 타고 올라오고, 발자국 소리가 아치 벽에 부딪혀 부드럽게 메아리친다. 내가 걷는 자리로 햇살이 내려앉으면 그 순간 과거와 현재가 겹친다. 

    콜로세움에서 걸어 나와 고대 로마의 정치·경제·사회 중심지였던 ‘포로 로마노’로 향한다. 무너진 신전 기둥과 돌길 위로 잡초가 자라고 올리브나무가 바람에 흔들린다. 돌길 사이로 햇빛이 흩어지고, 그림자는 천천히 기둥을 타고 오른다. 한때 로마제국의 심장이던 광장은 이제 고요한 폐허가 됐다. 하지만 발길을 멈추고 눈을 감으면 웅성거림과 말발굽 소리가 환청처럼 들려오는 듯하다. 그 소리 사이로 철학자 키케로가 연설을 하고 시인 베르길리우스가 서사시를 읊조리는 장면이 스쳐간다. 로마의 공기는 여전히 문장과 운율, 그리고 웅변의 리듬을 머금고 있다. 

    도시 중심을 걷다 보면 로마의 분수와 광장들을 만나게 된다. 트레비 분수 앞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모여 있다. 낮에는 햇살이 흩어지는 하얀 대리석이 찬란하고, 밤에는 가로등 아래 물결이 금빛으로 빛난다. 트레비 분수를 등진 채 동전을 오른손에 쥐고 왼쪽 어깨 너머로 던지면 다시 로마로 돌아온다는 전설이 있다. 작은 동전을 던지면서 다음 로마 여행을 약속해보자. 

    로마의 매력은 화려한 유적만이 아니다. 테베레강 건너편, 로마시대 유대인이 집단을 이루며 살던 트라스테베레 지역은 로컬의 일상이 숨 쉬는 구역이다. 좁은 골목 양옆으로 세월이 만든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창문마다 빨래가 바람에 흔들린다. 골목 끝 작은 레스토랑에서 마르게리타피자를 주문하면 주인은 토마토소스와 모차렐라, 바질을 올리며 “로마의 맛은 단순함”이라고 말한다. 밤이 깊어지면 골목마다 현지인의 노래와 기타 소리가 퍼진다. 로마의 젊은 예술가들은 벽돌담 앞에서 짧은 연극을 펼치거나 시를 낭독하며 여행자와 웃음을 나눈다. 



    이른 아침에는 나보나 광장 남쪽에 자리한 캄포 데 피오리 시장이 가장 활기차다. 따스한 햇살 아래 놓인 레몬과 토마토, 산처럼 쌓인 올리브와 치즈, 그리고 잘게 썬 파르미자노레자노 치즈의 짭조름한 풍미가 여행자의 감각을 깨운다. 올리브유의 풀향과 갓 구운 빵의 고소한 냄새, 잘 익은 토마토에서 퍼져 나오는 달콤한 향이 공기를 촘촘히 메운다. 색과 향, 그리고 장터를 울리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얽혀 시장은 한 장의 그림이자, 한 권의 이야기책이 된다. 손에 빵과 살라미를 들고 시장을 걸으며 한 입씩 베어 물면 그것만으로도 훌륭한 로마의 아침식사가 된다.

    테베레강변. GETTYIMAGES

    테베레강변. GETTYIMAGES

    예술과 일상이 하나 되는 경험

    로마 가톨릭의 심장부라고 할 바티칸시국의 성 베드로 대성당도 로마 여행의 또 다른 정점이다.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돔 아래에서 올려다본 천장은 장엄하고, 성당 내부 조각과 모자이크는 압도적이다. 광장 한가운데 서면 로렌초 베르니니가 설계한 회랑이 양팔처럼 펼쳐져 여행자를 감싸안는다. 종소리가 울리면 로마의 하루가 또 다른 빛으로 물든다. 바티칸 박물관에서는 세기의 화가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미켈란젤로의 생애 역작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가 숨을 멎게 한다.

    저녁 무렵 테베레강변 다리를 건너면 석양이 강물 위에 금빛을 흩뿌린다. 아름다운 야경으로 사랑받는 산탄젤로성의 실루엣이 그림처럼 드리우고, 거리 음악가의 바이올린이 강바람에 섞인다. 사람들은 벤치에 앉아 젤라토를 먹거나 연인과 손을 맞잡은 채 강을 바라본다. 매년 여름이면 강변은 ‘에스타테 로마나’라는 문화 축제가 열려 영화 상영장과 공연 무대로 변한다. 그 순간 예술과 일상은 하나가 된다. 

    로마에는 역사와 예술, 음식과 사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묶는 시간의 흐름이 있다. 이곳에서는 오늘이 과거에 스며들고, 과거가 오늘로 살아난다. 괴테는 ‘이탈리아 기행’에서 로마에 도착한 날을 이렇게 적었다. “드디어 이 세계의 수도에 도착했노라! 내 눈으로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마치 새로운 삶이 시작된 듯하다.” 그의 말처럼 로마 거리를 걷는 순간 여행자는 단순한 구경꾼이 아니라, 수천 년간 이어진 이야기 속에 한 줄을 보태는 존재가 된다. 그 여정은 언젠가 당신 마음속에서 다시 펼쳐져 또 다른 여행을 부르는 문장이 될 것이다. 

    재이 여행작가는… 세계 100여 개국을 여행하며 세상을 향한 시선을 넓히기 시작했다. 지금은 삶의 대부분을 보낸 도시 생활을 마감하고 제주로 이주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으며 다양한 여행 콘텐츠를 생산하는 노마드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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