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는 10월 15일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 및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묶는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뉴스1
10월 22일 경기 구리역 인근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는 집을 매입하려는 사람들의 방문과 전화로 북새통을 이뤘다. 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A 씨는 “구리가 규제를 피하면서 주말에는 수도권에 집을 사려는 지방 사람들도 방문하고 있다”며 “집주인들이 24평형대부터 호가를 5000만 원에서 최대 1억 원까지 올리는 추세”라고 말했다.
정부가 10월 15일 서울 전역과 경기 12개 지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 및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묶는 초강력 ‘주택시장 안정화 대책’(10·15 대책)을 발표한 이후 부동산시장에는 혼란이 이어지고 있다. 구리·남양주·동탄 등 규제를 피한 지역들은 갭투자(전세를 낀 매매) 문의가 빗발쳐 호가가 오르는 반면, 집값 상승의 영향을 적게 받았던 일부 규제지역에서는 “왜 우리까지 묶었냐”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수도권에 집을 마련하고자 했던 실수요자들도 “집값은 잡지 못한 채 현금 부자만 유리하게 됐다”며 불만을 나타냈다.
“구리·동탄·다산 상승열차 올라탈 마지막 기회”
10·15 대책은 문재인 정부가 2017년 8월 서울 전역을 조정대상지역에 포함한 이후 가장 강력한 규제 대책으로 꼽힌다. 8월 말부터 아파트값이 과열 양상을 띠고 있다고 판단한 정부는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에 적용되던 ‘3중 규제’를 서울 전역과 수도권 일부로 확대했다. 해당 지역은 2년 실거주 의무가 부과되며 갭투자가 불가능하다.이에 따라 지하철 8호선 개통으로 강남 접근성이 용이해진 구리, 경기 남부에서 규제를 피한 동탄 지역에 갭투자 수요가 몰리며 가격 상승이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에 따르면 화성 동탄더레이크팰리스 전용면적 84㎡는 10월 18일 10억5000만 원에 거래됐는데, 6월 같은 타입 거래가보다 1억4100만 원 올랐다.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구리·동탄·다산(남양주) 상승열차 올라탈 마지막 기회”라는 내용의 글이 게시되기도 했다.
반면 ‘3중 규제’를 받은 지역에서는 ‘거래 절벽’이 나타나고 있다. 10월 22일 구리와 경계를 맞댄 노원구의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 다수는 한가한 모습이었다. 10·15 대책이 시행된 10월 20일 이후 1주택자가 대출을 받아 원하는 지역으로 ‘갈아타기’하는 것은 물론, 무주택자 역시 적은 금액으로 전세 낀 매물을 사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노원구 한 공인중개사사무소에서 근무하는 B 씨는 “대책 발표 이후 시행 전까지 계약을 빨리 해치우려는 이들이 몰려들었다가 이번 주부터는 하루에 전화 한 통 못 받을 때도 있다”며 “노원구는 최근 들어서야 집값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는데, 마용성(마포·용산·성동구)과 함께 규제지역으로 묶여버려 주민 단톡방 등에서 불만이 속출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갈아타기를 준비하던 집주인들도 대출 규제로 매물을 거둬들이고 있다. 노원구 월계동에서 전세를 사는 이모 씨(33)는 “부모님과 공동명의로 용산구에 집을 사려고 했던 계획이 다 어그러졌다”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박대수 씨는 “매도자는 매도하고 싶어도 실거주할 소유자를 찾아야 하고, 매입자 입장에서도 무조건 들어와 살아야 하니 거래가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무주택자가 전세를 끼고 집을 사는 것까지 투기로 볼 수는 없지 않나”라고 말했다.
“팔지 못하게 묶어두고 집값 낮출 순 없다”
정부의 강력한 대책에도 집을 마련해야 하는 무주택 실수요자들은 투기 수요 억제에 초점을 맞운 정부 대책에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내년 5월 결혼을 앞둔 유모 씨(30)는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수도권 내 1주택 매매 심리를 자극하는 정책만 나와서 무리해서라도 꼭 집을 장만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다”고 말했다. 변모 씨(33)는 “아내의 육아휴직으로 소득이 줄게 되면 대출 이자가 부담스럽다 보니 갭투자를 알아보고 있었는데 정부가 그걸 막아버렸다”며 “문재인 정부에서 계속된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걸 지켜본 터라 점점 마음이 조급해진다”고 말했다.이런 상황에서 정부 고위 인사들이 갭투자로 수십억 원대 부동산을 보유한 것이 알려져 지탄을 받고 있다. 경기 분당에 33억 원대 아파트를 보유 중인 이상경 국토교통부 1차관은 한 유튜브 채널에서 10·15 대책을 설명하며 “지금 말고 집값이 안정되면 그때 돈 모아서 사면 된다”고 말했다가 대국민 사과를 했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역대급 규제가 단기간에는 집값 상승세를 누를 수 있지만 근본 해결 방안은 될 수 없다는 게 중론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오히려 규제지역 거래 감소가 연쇄 작용을 일으켜 수요가 많은 지역의 전월세 대란이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규제는 일시적 효과에 그칠 텐데 비규제지역 집값이 오르는 풍선효과 탓에 그간 집값 상승세가 덜했던 노도강(노원·도봉·강북구) 주민은 억울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집주인이 집을 팔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어놓고 집값을 떨어뜨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안녕하세요. 문영훈 기자입니다.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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