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은 정부 계획과 그 실패에서 탄생한 한국의 유일한 중심이다. 한국이 망하지 않는 한 강남 일극체제는 앞으로도 100년, 200년 갈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강남은 어떤 의미냐는 질문에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박사는 이렇게 답했다. 한국에서 강남은 단순한 한강 이남이나 강남 3구(서초·강남·송파)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와 부동산 불패 신화를 가로지르는 키워드다.
최근 신간 ‘강남: 우리는 왜 강남에 주목하는가’를 낸 김 박사는 도시에 새겨진 삶의 흔적을 추적하는 ‘도시문헌학자’이자 전국을 누비는 ‘도시답사가’다. 일본 국립문헌학연구소인 국문학연구자료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최근 ‘도시’라는 연구 주제에 천착하고 있다. 거대한 빌딩부터 작은 머릿돌까지 도시 자체를 문헌 삼아 그 형성 배경과 미래를 인문학적 맥락에서 분석하는 게 핵심이다. 입지가 중요한 부동산 특성상, 김 박사의 저서는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투자 참고서가 된 지 오래다.
한 해 전국 수백 곳을 누비는 김 박사의 답사 동료 중에는 투자 인사이트를 얻으려는 이도 적잖다고 한다. 김 박사는 자신이 세입자로서 오랜 세월 살기도 한 강남에 대해 “강남 신화는 현대 대한민국 형성 과정에서 우연과 필연이 교차해 일어났다”며 “과거 고려에서 조선으로 왕조 교체나 대한민국 탄생에 비견할 만한 대격변이 일어나지 한 강남은 특유의 역동성을 유지한 채 계속 확장될 것”이라고 말했다. 7월 1일 김 박사를 만나 강남에서 찾을 수 있는 한국 도시와 부(富)의 미래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1980년대 중반 서울지하철 3호선 잠원역 일대 모습이 담긴 사진을 들고 있는 도시문헌학자 김시덕 박사(왼쪽)와 해당 지역의 현 모습. 지호영 기자·김우정 기자
“폐쇄형 아파트와 수변 공간, 대형 쇼핑몰”
강남이 정부 계획의 실패에서 비롯된 도시라고.“강남 개발 시작은 박정희 정권 시절 안보적 요인에 따른 것이었다. 북한이 재남침할지 모르니 강북 도심 대신 한강 이남을 개발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1975년 베트남전쟁이 북베트남 승리로 끝나면서 박정희 정권의 위기감이 고조됐다. 미국 없이 북한과 일대일로 맞서야 한다는 공포감에 강남마저 북한과 너무 가깝다는 인식이 생겨났다. 정부청사를 경기 과천과 대전에 분산 배치하고 충청도로 수도 이전을 검토한 게 그 결과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강남 개발에 관심을 잃었고 상공부(현 산업통상자원부)·총무처(현 행정안전부로 통합)의 강남구 이전도 무산됐다. 하지만 여전히 서울에 남길 원하는 시민과 자본의 욕망이 그 빈틈을 채움으로써 오늘날 강남 신화가 가능했다.”
강남 신화를 가능케 한 ‘욕망’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바로 ‘강남적 삶의 양식’에 대한 추구다. 택지 개발 지역의 폐쇄형 아파트 단지와 자연 혹은 인공적 수변 공간,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한 생활 스타일 등이 그것이다. 이를 대체할 새로운 삶의 양식이 나타나지 않는 이상 강남적 삶의 양식은 계속 생명력을 유지할 것이다. 주변 다른 지역과 분리된 폐쇄형 아파트 단지는 오늘날에도 선호되는 주거 형태다. 한국의 신도시 개발에서 수변 공간은 원래 없으면 인공적으로라도 조성하는 필수 요소가 됐다. 과거 황무지와 다름없던 송파 개발 과정에서 석촌호수를 메우지 않고 롯데월드로 대표되는 복합 상업·문화시설과 연계한 것이 시발점이었다. 대형 쇼핑몰은 유치 자체가 지역 현안이 될 정도로 중요한 문제로 자리매김했다.”
강남이 고급 아파트의 대명사가 된 배경은 무엇인가.
“과거 사람들 뇌리에는 고급 아파트 하면 1964년 준공된 마포구 도화동 마포주공, 1971년 준공된 영등포구 여의도 시범아파트 등이었다. 여기에 1974년 구반포주공이 건설되면서 고급 아파트 주거지로서 강남 3구 이미지가 조금씩 생겨났다. 그런데 1978년 압구정 현대아파트 특혜 분양 사건으로 강남 아파트에 부자가 산다는 공식이 전 국민에게 알려졌다. 대형 비리 사건 덕에 일종의 네임 밸류가 생겨난 것이다. 부동산은 사람들 심리의 영향을 크게 받기에 가치를 높이려면 사람들 입길에 올라야 하는데, 압구정 현대아파트가 그 시초인 셈이다.”

1978년 촬영된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건설 현장. 동아DB
“강남 집값 더 오른다”
일각에선 지나친 과밀화와 인구 감소, 기후변화가 강남 미래를 불투명하게 한다는 시각도 있다. 이에 대해 김 박사는 “강남의 위상과 집값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더 강화될 것”이라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강남을 중심으로 한 한국 부동산시장 위계질서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강남이 한국의 모든 인구를 빨아들일 때까지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부동산 투자가 국내에만 한정된다고 여겨서는 안 된다. 뉴욕, 런던, 도쿄 부동산이 비싼 이유는 시장이 세계에 개방됐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한국 부동산시장은 아직 그 정도의 개방성은 없다. 최근 중국인의 한국 부동산 투자 얘기가 나오고 있는데, 그만큼 해외 투자자들이 국내시장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앞으로 강남 집값은 더 오르면 올랐지 떨어지진 않을 것이다.”
최근 세종으로 대통령실과 국회를 이전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강남과 달리 세종은 철저히 공무원들 손에 의해 탄생한 도시다. 그런 점에서 정권 움직임이나 정치적 격변에 대단히 취약하다.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공무원을 대량 해고하자 수도 워싱턴DC 경기가 큰 타격을 입지 않았나. 세종은 인구가 100만 명(5월 기준 약 39만2000명)에 달해도 대전의 신도시 정도로서 기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남이 냉전 시절 안보적 요인에서 탄생했다고 했다. 오늘날 신냉전의 영향은 어떨까.
“최근 신냉전으로 경기 북부의 기회가 30년 만에 다시 닫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전면 남침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부동산에서 심리적 장벽은 크다. 탈냉전 때 경기 고양 일산, 파주 운정, 양주, 동두천 일대가 개발됐지만 이제 상황이 바뀌었다. 거창하게 말하면 한국은 자유진영 최전방이다. 북한은 물론, 중국과도 맞서야 하는 상황에서 한국은 동남쪽 방향밖에 발전 활로가 없다. 남북이 평화 관계를 맺으면 개성으로 가는 길이 열리면서 경기 북부에도 기회가 생기겠지만, 당분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강남을 기점으로 경기 동남부를 거쳐 충남 아산·천안까지 이어지는 반도체 벨트가 ‘확장 강남’으로서 더욱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잠실과 강남 언덕바지 지역 주목”
강남 생명력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면 그중에서도 투자자가 특히 주목할 만한 지역은 어디일까. 김 박사는 “사람마다 자금 여력이나 선호하는 주거 환경이 제각각이기에 쉽게 답하기 어렵다”면서도 “잠실과 강남 언덕바지 지역을 주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지는 그의 자세한 분석이다.“송파 잠실지구의 성장 잠재력이 주목된다. 지금도 아파트 가격 면에선 강남·서초에 밀리지만 상업·문화적 기능까지 감안하면 강남 3구 중심지는 잠실지구다. 특히 앞으로 강남 중부에서 송파로 빠져나가는 축이 크게 발전할 것으로 보인다. 코엑스에서부터 올림픽공원까지 하나로 묶이는 지역이다. 최근 강남의 국제교류복합지구 사업과 그 일환인 영동대로 지하공간 복합개발 사업(삼성동 9호선 봉은사역과 2호선 삼성역 사이 지하 공간에 철도역과 광역복합환승센터, 도심공항터미널을 개발)을 주목해야 한다. 이로써 탄생하는 인프라를 SRT 수서역처럼 강남과 송파가 공유하는 것이다. 이 일대를 중심으로 강남이 다시 한 번 크게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최근 돈 있는 사람들이 강남구 언덕바지에 꼬마빌딩을 짓는 것도 눈여겨볼 수 있다. 강남 언덕바지는 농촌 시절 영동 아랫방아다리(하방하교: 강남역과 양재역 사이 동쪽)과 윗방아다리(상방하교: 강남역 동북쪽 국기원 일대), 역말(양재역 동쪽 도곡동 일대) 등 마을들이 있던 곳이다. 이후 1970년대에는 시영주택이 들어서기도 했다. 언덕이라는 지형 특성상 아파트를 짓기에는 부적합해서 인근 다른 지역에 비해 가격이 묶인 경우가 많다. 이런 곳에 주목하는 것도 하나의 투자전략이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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