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강조한 ‘소버린 AI’ 개발
정부는 특히 ‘소버린(sovereign·주권) AI’ 개발에 적극적이다. 소버린 AI는 해외 기업이나 글로벌 빅테크에 종속되지 않고, 개별 국가가 자체 데이터와 언어 등을 기반으로 만든 AI 서비스를 가리킨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20일 울산에서 열린 ‘AI 데이터센터 출범식’에 참석한 뒤 “‘챗GPT가 있는데 소버린 AI를 왜 개발하느냐, 낭비다’라는 얘기는 ‘베트남에서 쌀이 많이 생산되는데 (한국이) 뭐 하러 농사를 짓느냐, 사 먹으면 되지’라는 얘기와 똑같은 것”이라며 소버린 AI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LLM이 AI 시대 핵심 플랫폼으로 자리 잡아가는 흐름 속에서 한국 기술로 독자적인 LLM을 개발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최근 LLM은 국가안보와 직결된 핵심 기술로도 대두되고 있다. 따라서 한국형 LLM 개발은 분명 필요하다. 하지만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LLM 개발은 매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미 미국 빅테크 기업들이 천문학적 투자와 막강한 AI 기반 시설, 최고 수준의 인재 풀을 바탕으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한국은 데이터 및 그래픽처리장치(GPU)의 양과 질, AI 연구 인재 등 LLM 개발에 필요한 모든 자원에서 상대적으로 한계를 지닌다.
경쟁력 있는 LLM 개발이 쉽지 않다는 것은 과거 한국이 글로벌 운영체제(OS) 개발에 나섰다가 실패한 경험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90년대 이후 다양한 국가가 OS 자체 개발에 나섰지만, 세계시장을 장악한 것은 마이크로소프트(MS) 도스(DOS)와 윈도(Windows), 애플 iOS, 구글 안드로이드(Android) 등으로 모두 미국 기업 제품이다. 한국 ‘티맥스’나 중국 ‘기린(Kylin)’ 등은 정부 주도로 개발됐지만 시장의 선택을 받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OS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글로벌 자본, 인재, 생태계가 뒷받침돼야 하는 ‘플랫폼’이기 때문이다.
LLM 개발과 운영에는 OS보다 더 많은 자원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가 LLM 개발에만 집중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제조 AI나 의료 AI처럼 개별 산업에 특화된 ‘수직형 소형언어모델(Vertical sLLM)’ 개발에도 관심을 둬야 한다. 응용형 AI 서비스, 차세대 AI 디바이스, 차세대 AI 반도체 등 한국이 더 잘할 수 있는 분야를 육성하는 것도 필요하다. AI 로봇, 자율주행차, AI가 적용된 확장현실(XR) 기기 등을 개발해 차별화를 노리는 것이 유리할 수도 있다. 이미 한국은 외국에서 개발된 OS를 활용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신토불이 웹서비스와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만들어낸 경험이 있다.

이재명 대통령(가운데)이 6월 20일 울산 울주군 울산전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인공지능(AI) 글로벌 협력 기업 간담회’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듣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외국 OS 기반으로 창의적 앱 개발했던 한국
AI 발전 과정을 농사에 비유한다면 LLM은 씨앗에 가깝다. 좋은 씨앗이 농사에 도움이 되는 건 분명하지만, 그것만으로 수확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농사에 성공하려면 뿌린 씨앗이 잘 자라는 데 필요한 농기구와 기름진 토양, 적절한 기후, 농부의 땀방울 등 여러 가지가 뒷받침돼야 한다. 한국이 AI 경쟁력을 갖추는 과정 또한 마찬가지다. 질 좋은 데이터 확보, 인재 양성, AI 응용 서비스 개발 등이 모두 필요하다.독자적 LLM 확보는 AI 주권을 갖기 위한 유일한 조건이 아니다. 한국이 어떤 방식으로 AI 생태계를 조성할지, 국가 경쟁력 강화에 AI를 어떻게 활용할지 등도 AI 주권을 확립하는 데 중요한 문제라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