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설된 강좌는 생후 1개월부터 들을 수 있는 베이비 마사지와 베이비 요가 등 신체놀이에서부터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의 명화와 함께하는 미술수업, 다양한 악기를 통해 음감을 키운다는 음악수업 등 예체능 관련 수업까지 다양하다. 강좌명에 ‘영어’ ‘영재’가 들어간 영아 인지발달 관련 수업은 빠르게는 생후 6개월부터 수강할 수 있다. 영아 대상 강좌는 같은 수업이라도 아이 개월 수에 따라 6~12개월, 8~13개월, 14~20개월, 21~36개월 등 여러 반으로 나뉜다.
“지(G)~, 검(Gum·껌), 그레이프(Grape·포도), 글루(Glue·풀), 고트(Goat·염소), 고스트(Ghost·유령), 고릴라(Gorilla·고릴라)!”
2월 23일 서울 영등포구 A백화점 문화센터. 강사가 그림이 그려진 영어단어 카드를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콤팩트디스크(CD) 노래 반주에 맞춰 단어를 큰 소리로 읽었다. 테이블을 중심으로 빙 둘러앉은 엄마들은 각자 아이를 품에 안고 노래에 맞춰 단어 카드를 손가락으로 열심히 가리켰다. 엄마 무릎 위에 앉은 아이들의 태도는 제각각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친구를 바라보며 눈만 깜빡이는 아이도, 엄마 품을 벗어나려고 꼼지락대는 아이도, 엄마의 가방을 만지작거리는 아이도 있었다. “아영(가명)아, 이러면 안 되지.” 생후 11개월인 아영이가 테이블 위로 기어오르자 강사가 웃으며 타일렀다.
“뇌에 엄청난 스트레스 줄 수도”
수업 40분 동안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동그라미 스티커의 개수를 통해 많고 적음을 분별하는 수 개념에서부터 ‘한 권, 두 권, 세 권…’ 책을 셀 때는 ‘권’을 사용한다는 언어 개념, ‘초승달, 상현달, 보름달, 하현달, 그믐달…’ 등 달의 모양 변화, ‘There are three magic beans(마술콩 3개가 있어요)’ 같은 영어 문장으로 구성된 짧은 그림 동화까지 다양했다.이날 수업에는 첫째 아이와 했던 수업이 만족스러워 둘째 아이와 한 번 더 수업을 듣는다는 엄마도 있었다. 백화점 문화센터 인터넷 홈페이지의 강의 후기 게시판에도 ‘아기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수업에 잘 선택했구나 생각했습니다’(*****house), ‘아이의 집중 시간이 길어졌어요’(eschang****) 등 엄마들의 만족스러운 후기가 줄을 잇는다.
같은 날 오후 2시 30분, 서울 중구 B백화점 본점 문화센터. 인터넷 홈페이지에 ‘즐거운 영어놀이에 자연스럽게 노출돼 알파벳, 단어, 숫자 등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강의’라고 소개된 영·유아 대상 영어 강좌를 1일 체험하려고 12명의 엄마와 아이가 문화센터를 찾았다. 영·유아 대상 1일 체험 강좌는 단돈 1000원에 신청, 체험할 수 있어 엄마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다. 비슷한 시간 전모(35·여) 씨는 16개월 된 아기와 함께 강의 카탈로그를 유심히 살펴보다 봄 학기 강좌를 신청했다. 전씨는 “두뇌발달에 좋다고 해서 아기가 5~6개월 됐을 때부터 베이비 마사지 등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를 들었다”며 “문화센터에서 아이랑 함께 수업을 들으면 집에서보다 더 잘 놀아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 비슷한 개월 수의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과 육아 정보를 공유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이처럼 백화점 문화센터의 영·유아 대상 강좌는 일반적으로 수업료가 저렴한 데다, 수업 후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육아 정보를 공유하기에도 좋아 엄마들 사이에서 만족도가 높다.
그렇다면 실제로 아이들에게 문화센터 강좌가 효과적일까. 최현주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연구원은 “발달과정상 아이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받는 인지 자극(영어·한글 사교육)은 효과가 없다”고 말한다. 윤은주 숙명여대 아동복지학부 교수는 “프로그램 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직 영재로 판별하기 어려운 영아 때부터 영재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진행하는 사교육은 상업적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30~40분 수업을 통해 인위적으로 그림 카드 등을 접하기보다 되도록이면 실생활에서 자연스럽게 놀이를 통해 문자나 숫자에 노출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고객님이 원하시니까
전문가들은 뇌 발달 측면에서도 영·유아 대상 문화센터 강좌에 우려를 표한다. 이부미 경기대 유아교육학과 교수는 “너무 어린 나이에 인위적인 집중을 요구하는 수업은 아이의 뇌 발달이나 이후 학습능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조급한 부모가 아이 뇌를 망친다’의 저자 신성욱 과학저널리스트는 “한글을 가르치고 영어를 가르치는 등 36개월 미만 영·유아가 감당하기 어려운 문자 자극은 스트레스를 유발해 뇌 성장에도 악영향을 끼친다”고 뇌과학 측면에서 비판했다. 아울러 신씨는 “수업을 듣는 아이가 그걸 알아보고 따라한다고 해서 집중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이는 마치 훈련에 의해 재주를 부리는 돌고래나 물개처럼 몸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는 것과 같다. 그 과정에서 아이에게 발생하는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하다”고 말했다. 신씨의 말대로 뇌과학자들은 만 6세 미만 아이에게 문자를 가르치는 것은 뇌에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생물학적으로 위험한 일이라고 경고한다.다른 사교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업료가 저렴한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는 보통 지역 문화센터에서 강좌를 진행하는 것과 비슷한 방식으로 운영된다. 이에 대해 B백화점 한 관계자는 “강사와 직접 접촉해 계약하고 강좌를 개설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업체에서 개발한 프로그램을 활용한 강좌의 경우다.
부작용이 적잖다는 지적에도 꾸준히 개설되는 영·유아 대상의 백화점 문화센터 강좌에 대해 백화점 관계자들은 “백화점 주 고객인 주부와 주요 소비층인 20, 30대의 수요에 맞춘 것”이라며 “영·유아 사교육에 부작용이 있다고 하지만 그에 대한 수요는 여전하고,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일반적인 인식이 있기 때문에 영·유아 대상 강좌를 개설할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