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 광풍이 취업 전선까지 위협하고 있다. 공기업과 대기업 입사시험은 물론, 언론사 입사와 로스쿨 입학을 위한 고액과외까지 등장했다. 이는 각 기업과 정부기관이 신입사원 선발과 관련해 과도한 스펙 쌓기의 폐단을 없애고자 정량적 평가보다 자기소개서, 면접, 국가직무능력표준(National Competency Standards·NCS) 등 기준이 애매한 정성적 평가의 비중을 강화하면서 생긴 부작용이다.
시간당 10만 원인 법학적성시험 강의에서부터 2장에 50만 원짜리 자기소개서 첨삭지도, 시간당 25만 원인 입사컨설팅, 45만 원짜인 NCS 개인과외에 이르기까지, 가난한 취업준비생들의 어깨는 갈수록 무거워지고 있다. 서민은 꿈도 못 꿀 고액 취업과외가 판을 치면서 취업준비생 사이에선 “돈 없으면 취업도 못 한다”는 ‘수저 색깔론’조차 등장했다.
비싸도 너무 비싼 취업과외비
변호사를 꿈꾸며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는 수험생 중에는 입학 첫 관문인 법학적성시험에 대비하고자 시간당 10만 원짜리 과외(강의)를 받는 이도 적잖다. 서울의 유명 사립대 로스쿨에 재학 중인 노모(27) 씨는 “최근 로스쿨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 가운데 법학적성시험에 대비하고자 시간당 10만 원을 지불하고 강의를 듣는 학생이 많다고 한다. 실제 내 친구도 그 강의를 들었는데, 비록 강의료는 비싸지만 강사 자신이 법학적성시험 고득점자이고 해당 시험의 검토위원 출신이어서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했다”고 귀띔했다.경기 고양시에 사는 하모(31·여) 씨는 최근 대입 논술과외를 했던 경험을 살려 기업 입사지원 자기소개서 첨삭지도를 시작했다. 과외는 3주간 수강생이 원하는 시간에 만나 자기소개서를 첨삭하고 조언해주는 형식으로 진행했다. 하씨는 2장짜리 자기소개서를 첨삭지도해주고 50만 원을 받았다. 적잖은 액수지만 하씨에게 과외를 문의하는 전화는 끊이지 않았다. 그는 “수강생 대부분이 전문직 종사자 부모를 둔 부유한 집안 출신”이라며 “큰 액수를 지불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고 말했다.
심지어 국가 고등고시에도 고액과외가 등장했다. 현재 정부 모 부처에 재직 중인 김모(28·여) 사무관은 “고시의 마지막 단계인 최종 면접에 대비해 유명 헤드헌터를 초빙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2시간 동안 진행하는 모의면접 지도 비용은 60만 원. 김씨는 많은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워 일반 기업의 최종 면접을 앞둔 친구들을 모아 함께 교육받은 뒤 비용을 지불했다. 김씨는 “어차피 마지막 한 번뿐이라고 생각하니 돈이 아깝지 않았다. 여유가 있는 사람은 일대일로 준비하는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유명 취업학원은 대기업 인사팀 출신 강사들과 취업준비생의 일대일 컨설팅을 주선하고 있다. 강의비는 일반적으로 시간당 12만 원 선. 국내 대기업 인사팀장이나 인사부장 출신 강사에게 해당 기업의 입사시험 또는 면접과 관련된 컨설팅을 받으려면 시간당 25만 원의 수강료를 줘야 한다. 서울 강동구에 사는 이모(25·여) 씨는 서울 유명 사립대 경영학과 출신에 영어도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 ‘고등 스펙자’임에도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수차례 고배를 마셨다. 이씨는 고민 끝에 강남 취업학원을 찾아 일대일 컨설팅을 받았다. 이씨는 “자기소개서와 면접은 회사마다 기준이 다르고 주관성이 커 준비하기 난감하다”면서 “수강료는 비싸지만 대기업 인사팀 출신 강사라면 무엇이 부족한지 지적해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처럼 고액 사교육이 성행하는 까닭은 기업들을 비롯해 공공기관과 로스쿨이 정량적 스펙을 대신해 자기소개서, 면접 등으로 선발하는 경향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 취업포털 ‘사람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준비생이 사교육을 받는 이유(복수응답)는 ‘혼자 준비하는 것보다 효과적일 것 같아서’(61.4%)가 가장 많았고, ‘취업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51.8%), ‘혼자 준비할 자신이 없어서’(34.2%),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잘 몰라서’(32.2%), ‘학교 교육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아서’(26.6%)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정부가 직종별로 표준 채용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과도한 스펙 쌓기로 인한 사회적 낭비를 줄이자는 취지로 시작한 NCS 기반 채용에도 개인과외가 도입돼 충격을 주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국정과제인 ‘학벌이 아닌 능력 중심 사회’를 만들고자 야심 차게 도입한 정책이 취업준비생들에겐 오히려 ‘또 하나의 스펙’이 된 셈이다.
정부의 NCS도 고액과외
NCS는 산업현장에서 직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능력(지식, 기술, 태도 등)을 정부가 국가 차원에서 산업 부문별, 수준별로 체계화하고 표준화한 것을 말한다. NCS는 지난해 공기업 및 공공기관 채용에 본격 도입돼 130개 기관에서 검증 잣대로 활용됐는데, 산업 분야 대부분에서 공통적으로 요구하는 능력인 직업기초능력에 대한 평가와 직무수행에 필요한 지식, 기술, 태도를 아우르는 능력인 직무수행능력에 대한 평가로 이뤄진다. 이와 관련해 공기업 취업준비생을 상대로 NCS 개인과외를 하는 자칭 취업전문가는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공기업 NCS 직업기초능력 평가 대비는 10시간에서 15시간이면 충분해요. 아무래도 개인역량에 따라 준비 시간이 달라지기 때문에 일대일 개인과외가 수월한데 수강료는 시간당 3만 원이지만 요즘 대학생들이 과외를 해도 이 정도는 받기 때문에 그렇게 비싸다고 할 수도 없어요. NCS 직업기초능력 평가 준비는 공기업 취업 준비의 일환으로 꼭 필요해요.”
이 전문가의 말대로라면 NCS 관련 개인과외를 받으려면 적게는 30만 원에서 많게는 45만 원이 필요한 셈. 고정적인 소득이 없는 취업준비생에게는 결코 적잖은 비용이다. 그럼에도 그는 “부산에서 국립대를 다니던 학생도 서울로 올라와 수업을 받고 있다”며 “요즘처럼 취업이 안 되는 때에 취업준비생들을 위해 그 나름대로 합리적인 가격에 과외를 진행하는 것”이라고 자랑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고용노동부는 NCS를 기반으로 한 채용 모델을 내년부터 모든 공기업과 공공기관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에 서울 강남, 노량진의 취업 대비 학원을 비롯한 각종 취업 준비 웹사이트에는 NCS 관련 강의가 지난해부터 신설됐고, 관련 기출문제를 재가공한 수험서도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불티나게 팔린다.
2월 16일 오후 7시, 서울 강남에 자리한 한 취업 대비 학원의 NCS 관련 강의는 한 달에 40만 원을 웃도는 수강료를 내야 하지만 공기업 취업준비생들로 50여 명 규모의 강의실이 꽉 찼다. 강의를 수강하는 대학생 이모(25·여) 씨는 “솔직히 수업료가 부담되지만 검증되지 않은 정보 때문에 헤매느라 시간까지 버리느니 한 번 돈 쓰고 빨리 (취업)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강의를 수강하는 이유를 밝혔다. 이에 대해 한국산업인력공단의 NCS 담당 한 관계자는 “취업준비생들에게 NCS 개념이 아직 익숙지 않아 생기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공단의 또 다른 NCS 담당자는 “취업준비생들이 NCS 필기시험을 사기업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기관 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노용운 연구위원은 “NCS 도입 취지는 긍정적이지만 시험 형태로 문제를 예시함으로써 취업준비생들이 NCS 기반의 채용을 기존 인·적성 시험의 또 다른 변형으로 인식하고 있다”며 “능력 기반의 채용이 자리 잡기 위해선 공공기관과 기업의 노력이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취업과외 받으려 대출, 아르바이트…
엄청난 취업 사교육비는 취업준비생의 어깨를 더욱 무겁게 누르고 있다. ‘사람인’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과 관련해 사교육을 받은 사람의 90%는 ‘사교육비가 경제적 부담으로 다가왔다’고 답했다. 같은 조사에서 취업 사교육을 받지 않은 가장 큰 이유로는 비용 문제가 꼽혔다. 다시 말하면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사교육을 받았다는 뜻이다.가정의 경제상황이 넉넉지 않은 취업준비생들은 취업 사교육을 받고자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은 물론, 심지어 대출까지 받는 경우도 있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는 김모(25) 씨는 지난 6개월 동안 자신이 다니는 대학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한 일간지에서 운영하는 언론사 준비반에 등록할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생활비까지 벌어야 하는 그는 80만 원이 넘는 수강료가 부담스러웠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김씨는 “언론사는 일반 기업과 채용 방식이 다르다.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잘 모르고 알려주는 곳도 없어 학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집안의 도움을 받아 경제적 걱정 없이 수강하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것이 사실이다. 주변에는 수강료가 부담스러워 등록을 망설이는 친구도 많다”고 전했다.
취업 사교육을 받으러 서울로 유학을 오는 지방 취업준비생도 적잖다. 부산에 사는 김모(30) 씨는 1월 취업 준비를 위해 상경했다. 취업 연령의 마지노선이라 부르는 서른이 되자 사교육의 힘이라도 빌려야겠다는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김씨는 주거비, 학원비, 생활비를 부모 명의로 대출받은 돈으로 해결했다. 무직자라 본인 명의의 대출이 불가능한 데다 아르바이트를 하면 취업 준비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의 상황을 배수진에 빗대며 “서울 취업학원에 마지막 희망을 걸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과열된 취업 사교육시장을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선은 정작 차갑기만 하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컨설팅을 받고 온 지원자는 대답하는 방법이나 말투에서부터 티가 난다”며 “오히려 진실해 보이지 않아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이렇듯 고액 취업과외가 성시를 이루는 풍조가 계속된다면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금수저’만 대를 물려가며 좋은 직장을 독점하는 시대가 오지 말란 법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