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에 베트남 쌀국수 전문점이 첫선을 보인 건 1995년 ‘라우제’라는 식당을 통해서였다. 99년에는 미국식 베트남 쌀국수 붐을 타고 ‘포호아’ 체인과 ‘리틀사이공’ 같은 식당이 국내에 들어오면서 쌀국수 문화가 급격히 퍼졌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 동남아 여행객이 급증한 것도 동남아 음식의 인기를 뒷받침했다.
서울 종각 뒤에 자리 잡은 ‘에머이’는 하루 두 번 직접 쌀국수 생면(生麵)을 만드는 집으로 유명하다. 정작 베트남 현지에서도 직접 생면을 만드는 식당이 흔치 않다. 대부분 식당 주변 작은 공장들에서 생면을 만들어 공급한다. 베트남 생면은 안남미라 부르는 인디카 계열의 끈기 없는 베트남 쌀 96%에 찹쌀 4%를 섞어 만드는데, 면의 끝은 도삭면처럼 날렵하고 가운데는 상대적으로 두툼한 게 특징이다. 면발이 찹쌀떡처럼 쫀득거리면서도 매끄럽다. ‘에머이’의 쌀국수 국물은 기름지지만 느끼하지 않다. 맑은 곰탕 국물에 가깝다. 실제 태국식 쌀국수 국물은 향신료가 많이 들어가 달고 맵지만, 베트남 쌀국수 국물은 우리의 설렁탕이나 곰탕을 닮아 깊고 진한 맛이 난다.
베트남 쌀국수의 기원은 짧게 잡으면 19세기 말이라고 할 만큼 길지 않다. 19세기 말 방직공업이 흥했던 남딘(Nam Dinh) 노동자들이 먹으면서 시작됐다는 설과 프랑스 채소 수프인 ‘포토푀(Pot au Feu)’가 변형된 것이라는 설이 있지만 후자에 더 많은 무게가 실린다. 베트남 쌀국수를 칭하는 말인 ‘포(Pho)’가 ‘포(Pot)’에서 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데다 전통적으로 쇠고기 음식이 발달하지 않은 베트남 사람들이 프랑스 식민시대를 겪으면서 쇠고기 국물을 받아들였을 개연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이후 쌀국수는 전 국토의 공산화로 국민이 대거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세계적인 음식으로 거듭났다.
홍대 앞 먹자거리에 위치한 ‘하노이안’은 베트남 현지 유명 식당에서 공수한 국물과 분짜(bun cha)로 유명하다. 분짜는 구운 돼지고기, 까나리액젓과 비슷한 단맛이 나는 느억맘,

한편, 중식당이 강세인 마포구 연남동에서 쌀국수로 이름을 날리는 ‘소이연남’은 한국화한 태국식 쌀국수인 쇠고기국수가 대표 메뉴다. 태국식 쌀국수답게 전체적으로 맛과 향이 강한 반면, 국물은 깊고 진하다. 소의 아롱사태 부위를 부드럽게 삶아낸 실력도 좋고 개운한 국물도 수준급이다. 부드러운 면의 식감과 진한 한국식 육수 덕에 찾는 이가 날로 늘 것으로 보인다. 주당에겐 해장용으로도 제격인 쌀국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