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법이 자리한 서울법원종합청사. [뉴시스]
노소영 측 ‘재판부 쇼핑’ 의혹
당초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항소심 재판은 지난해 1월 서울고법 가사3-1부(재판장 조영철 부장판사)에 배당됐다. 조영철 부장판사는 평소 법리에 충실한 판결을 내리는 것으로 정평이 난 법관이다. 그런데 노 관장 측은 돌연 지난해 2월 15일 조 부장판사 매부가 대표변호사로 있는 K 법무법인 소속 A 변호사를 선임했다. 재판장 친인척이 대표로 있는 법무법인이 사건을 대리할 경우 공정성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어 사건이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될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로 서울고법 가사3-1부는 지난해 2월 17일 해당 재판에 기피 신청을 냈고, 서울고법은 가사2부(재판장 김시철 부장판사)로 사건을 재배당했다. 노 관장 측이 조 부장판사를 피하려고 재판부를 바꾸도록 만드는 이른바 ‘재판부 쇼핑’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사건이 재배당되자 A 변호사는 다른 법무법인으로 옮겨 노 관장 사건을 계속 맡고 있다.이에 대해 K 법무법인 측은 “우리 법무법인의 대표변호사와 최 회장-노 관장의 항소심 재판장이던 조 부장판사가 매부-처남 사이라서 소속 변호사가 이 사건을 수임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파트너 변호사 모두 이를 알고 있었다”며 “그러나 A 변호사가 불허 방침에도 노 관장을 대리하는 선임계를 대표변호사 모르게 임의로 법원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K 법무법인 측은 “A 변호사가 선임계를 제출할 당시에는 수임계약서가 작성되지 않았고 착수금이 입금된 바도 없는 이례적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노 관장 측은 재판부 변경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한 법조인은 “판결이 안 좋게 나올 것 같거나 재판 진행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재판부 친인척이 다니는 로펌을 선임해 의도적으로 기피하는 재판부 쇼핑이 버젓이 자행되는 게 현실”이라면서 “재판부 쇼핑은 사법부 신뢰를 떨어뜨리고 사법 불신을 초래하는 만큼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관행”이라고 말했다.
1조3808억 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 규모의 재산분할 판결을 한 김시철 부장판사는 5월 30일 선고 과정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김 부장판사는 이번 사건을 선고하면서 사생활을 보호해야 하는 가사사건 특수성에도 최 회장과 노 관장의 파경 과정, 최 회장의 재산 형성 과정 등을 약 50분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판사들이 가사사건 판결을 선고하면서 결론에 해당하는 주문을 선고하고 판결 취지를 간략히 설명하는 것과 대비를 이룬다. 김 부장판사는 선고공판을 비공개로 하지 않고, 일부 출입기자를 법정에 들어올 수 있도록 허용했다. 나머지 출입기자 50여 명도 중계법정에서 선고를 지켜볼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프라이버시가 담긴 판결 내용이 외부에 고스란히 전해졌다.
당시 선고를 지켜본 한 관계자는 “김 부장판사가 언급한 내용 중 일부는 객관적 사실관계가 아닌, 주관적 판단이 상당히 들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객관적 사실이라도 공개적으로 밝히면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는데, 재판장의 주관적 판단이 들어간 내용까지 밝히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 같다”고 말했다. 이를 놓고 법조계 일각에선 재판장의 재량 범위가 어디까지인지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민사소송법, 가사소송법 어디에도 재판장이 은밀한 개인사를 공개적으로 밝힐 수 있다는 규정은 없기 때문이다. 더 심각한 것은 200쪽에 가까운 항소심 판결문이 선고 다음 날 외부에 유출된 점이다.
최태원 기자회견 3시간 만에 판결문 수정
김 부장판사의 재판 진행은 과거에도 논란이 된 바 있다. 그는 2015년 서울중앙지법 형사7부장판사로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댓글 공작’ 사건 파기 환송심을 맡았다. 당시 김 부장판사가 무죄 판결문을 미리 작성하고, 원 전 원장 무죄를 이끌어내려고 검사와 변호사에 대한 문답 시나리오를 준비한 사실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의혹’ 사건에서 드러나 논란이 됐다. 이 같은 재판 진행으로 당시 주심을 맡았던 배석판사와 갈등이 벌어지자 김 부장판사는 다른 배석 판사와 상의하면서 원 전 원장에 대한 심리를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무죄 예단이 있었던 것 아니냐는 논란을 산 김 부장판사는 2015년 10월 원 전 원장을 보석으로 석방한 후 2017년 2월 서울중앙지법 민사16부로 자리를 옮기기 전까지 해당 사건의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김 부장판사의 후임 재판장은 2017년 8월 원 전 원장에게 징역 4년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최 회장-노 관장의 항소심 판결 후 재판부가 판결문을 수정하는 이례적 사태도 발생했다. 서울고법 가사2부는 최 회장 측이 6월 17일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재산분할 판단 과정에서 ‘치명적 오류’가 있었다”고 주장하자 3시간 만인 같은 날 오후 판결문 일부를 수정했다. “최종현 SK그룹 선대회장이 사망한 1998년 당시 SK C&C 지분가치를 10분의 1로 축소하는 바람에 최 회장 기여도가 35.5배에서 355배로 10배가 부풀려졌다”는 최 회장 측 주장을 사실상 인정해 판결문을 경정한 것이다.
천문학적 규모의 재산분할 소송에서 오류가 발생한 것에 대해 논란이 거세지자 서울고법 가사2부는 이튿날인 6월 18일 이례적으로 4장 분량의 입장문을 배포했다. 최 회장과 노 관장의 최종 재산분할 기준을 ‘올해 4월 16일 기준 SK 주가 16만 원’이라고 제시한 뒤, 이에 대한 기여도가 ‘최종현 선대회장 125배, 최 회장 160배’라고 밝힌 것이다. 따라서 재산분할 결론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게 재판부 입장이다. 전제가 달라졌는데도 결론은 같다는 이해하기 힘든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대해 최 회장 측은 “항소심 재판부는 판결문에선 최 회장 기여도를 따진 기간을 1998년부터 2009년까지로 산정해 355배로 적시했다가 경정을 통해 35.6배로 수정했다”면서 “그러나 입장문에선 최 회장의 기여도 산정 기간을 1998년부터 2024년까지로 늘려 잡아놓고 기여도가 경정된 판결문과 달리 160배로 설명했다. 추가로 경정하겠다는 것인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초동 한 법조인은 “서울고법 가사2부는 이미 판결을 내린 만큼 치명적 실수가 있었더라도 판결문을 경정하는 일 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을 것”이라면서도 “서울고법 가사2부가 6월 18일 내놓은 입장문은 기존 판결문 논리를 부정하고 새로운 논리를 추가한 것으로, 사실상 새로운 ‘간이 판결문’을 쓴 것과 같아 혼란을 가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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