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사기는 확신에서 시작된다”고 말하는 김태권 만화가. [조영철 기자]
대표적 사기는 다단계
김태권 만화가는 테라·루나 폭락 사태와 FTX 파산 등 지난 몇 년간 코인시장에서 발생한 굵직한 사기의 패턴을 분석해 만화책 ‘코인 묵시록’을 출간했다. 역사상 사기는 비슷한 패턴으로 반복돼왔다. 다시 말해 과거를 살펴보면 앞으로 일어날 사기에 대비할 수 있다는 뜻이다. 가상자산 사기도 마찬가지다. 5월 22일 김 만화가를 만나 대표적인 가상자산 사기 사례를 들어보고 코인투자 전 유의해야 할 점을 알아봤다. 김 만화가는 서울대 미학과 졸업 후 만화가로 활동하면서 ‘김태권의 십자군 이야기’ ‘르네상스 미술 이야기: 피렌체 편’ 등을 출간했다. 지난해까지 블록체인 전문매체 ‘코인데스크 코리아’에서 일하며 NFT(대체 불가능한 토큰)와 디지털아트에 대한 글을 썼다.가상자산 투자 시 가장 위험한 것은 무엇인가.
“확신이다. 가상자산은 확신을 가지고 투자하는 것도, 확신을 가진 사람도 위험하다. 가상자산은 불확실한 미래 가치를 보고 투자하는 것이라 확실한 게 하나도 없다.”
현재 가상자산시장에서는 어떤 사기가 발생하고 있나.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기가 가상자산으로 옷을 갈아입고 발생하고 있다. 그중 피해 규모가 가장 큰 것은 다단계 사기이고, 피해자가 가장 많은 것은 보이스피싱이다. 다단계는 가상자산 투자자를 데려오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준다는 식이다. 보이스피싱은 전화를 걸어 ‘당신이 가상자산 범죄에 연루돼 있으니 빨리 당신 개인정보를 보내라’는 식이다.”
다른 가상자산 사기 수법으로는 어떤 것이 있나.
“투자금을 돌려막는 폰지사기와 시세를 조작해 이익을 취하는 펌프/덤프도 있다.”
펌프/덤프는 무엇인가.
“펌프란 큰손 몇 명이 저렴한 가상자산을 사서 가격을 어느 정도 올리면 개미투자자들이 뒤쫓아 그 가상자산을 매수해 가격이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덤프는 덤프트럭이라고 할 때 그 덤프로, 큰손이 가상자산이 비쌀 때 내다 팔면 너도나도 가상자산을 팔아 가격이 급락하는 것이다.”
“전 세계 사람이 이 문제로 토론 중이고, 머스크는 이에 대해 ‘나는 펌프만 하고 덤프는 하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머스크의 도지코인 시세 조작에 대한 소송도 진행 중인데, 소송 결과가 머스크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나올 것 같지는 않다. 이익을 취하려는 의도가 있었는지 입증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머스크 자신도 도지코인을 펌프/덤프 했는지 잘 모를 것 같다(그래프 참조).”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왜 일어났나.
“테라와 루나는 1테라=1달러어치 루나로 고정한 알고리즘형 스테이블 코인이다. 테라 값이 떨어지면 알고리즘은 루나를 자동으로 찍어내고, 루나 값이 떨어지면 테라로 루나를 사들인 뒤 사들인 루나는 폐기해 ‘1테라=1달러어치 루나’ 공식을 이어간다. 다시 말해 가상자산을 찍어내 다른 가상자산 값을 안정시키겠다는 것이다. 테라와 루나 가격이 계속 오를 때는 이 시나리오가 맞지만, 두 가상자산이 동반 하락할 때는 맞지 않는다. 지난해 큰손들이 테라를 팔아치우자 루나는 테라 가격을 안정시키기 위해 자동으로 발행됐다. 6억 개 남짓하던 루나가 몇 시간 만에 6조 개를 넘어섰다. 테라와 루나는 복구할 수 없을 만큼 곤두박질쳤고 가상자산시장 전체에 타격을 줬다.”
권도형 테라폼랩스 대표는 이 사태를 예견하고 있지 않았을까.
“아마 권도형은 끝까지 몰랐다고 주장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싶다.”
테라·루나 폭락 사태 당시 저가매수를 노렸다가 낭패를 본 투자자도 많은데.
“가상자산시장에서 폭락 사태가 발생할 때 데드캣 바운스(자산 가격이 큰 폭으로 떨어지다 잠깐 반등하는 상황) 타이밍을 맞추는 것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비슷하다.”
지난해 가상자산 거래소 FTX의 파산도 큰 사건이었다.
“샘 뱅크먼 프리드 FTX CEO가 FTT 코인을 발행한 뒤 본인이 세운 투자회사 알라메다리서치를 활용해 자전 거래를 하다 발생한 사건이다. 가상자산 거래소 바이낸스를 이끌던 자오창펑 CEO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FTT를 팔자 FTT 가격이 폭락했고, 투자자들도 FTX에 맡긴 돈을 인출하면서 ‘코인런’ 사태가 발생해 파산에 이른 것이다.”
거래소 키와 함께 사라진 제럴드 코튼
가상자산 거래소 사고가 사기꾼보다 위험해 보이는데.“넷플릭스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된 캐나다 가상자산 거래소 쿼드리가CX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8년 12월 제럴드 코튼 쿼드리가CX CEO가 인도 여행 중 갑자기 사망했다. 그런데 거래소 비밀번호를 코튼 혼자만 알고 있었다. 가상자산을 찾으려면 거래소 비밀번호를 알아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모르니, 7만6000여 명의 자산 2억5000만 캐나다달러(약 2433억 원)가 그의 죽음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그런데 캐나나 금융당국에 의하면 코튼이 죽기 전 거래소 자산은 이미 비어 있었다고 한다.”
투자자들은 쿼드리가CX에 가상자산이 없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말인가.
“가상자산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을 사면 거래소 계좌에 비트코인이 들어온다. 하지만 이는 투자자의 전자지갑에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거래소 계좌만 보면 내 비트코인이 맞는데, 블록체인을 보면 거래소의 전자지갑에 들어가 있다. 그래서 거래소에 사고가 발생하면 내 비트코인이라고 증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개인 전자지갑을 이용하기도 번거롭다. 혹시 개인 키를 잃어버리면 가상자산을 영영 찾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영국 제임스 하우얼스는 2009년 7500비트코인을 채굴했지만 개인 키가 저장된 하드디스크를 실수로 내다 버려 지금까지 영국 쓰레기장을 뒤지고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가상자산 거래소를 선택할 때 어떤 점을 살펴봐야 하나.
“우선 가입자가 적은 거래소는 사람이 덜 모이기 때문에 시세 조정에 휘둘릴 수 있다. 이런 가상자산 거래소는 차익 거래를 하는 사람들의 밥이 된다. 또 상장된 가상자산이 너무 많아도 문제다. 이런 거래소는 가상자산 상장 심사 기준이 엄격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코인시장 미래를 어떻게 보나.
“닷컴 버블 당시 인터넷 확산을 믿는 사람도 있었고, 믿지 않는 사람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인터넷 세상이 됐다. 당시 인터넷 성장을 믿었던 사람들도 미래 대장 기업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했다. 나는 당시 야후가 뜰 줄 알았는데, 결과적으론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가 대장이 됐다. 가상자산시장도 비슷할 것이라고 본다. 현재 대다수 사람이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대장이라고 주장하지만, 웹3(탈중앙화) 시대에도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이 대장 가상자산이 될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최근 들어 웹3 시대로 가려면 비트코인처럼 완전히 탈중앙화를 지향하는 가상자산이 산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오히려 탈중앙화를 덜 하는 가상자산이 웹3 시대에 맞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한 차원 진화한 새로운 기술을 가진 가상자산이 등장하면 그 가상자산이 대장이 될 수 있다.”
NFT 시장은 안갯속
디지털아트와 NFT 전문가인데, 이 시장은 어떻게 전망하나.“디지털아트가 예술 한 분야로 인정받고 가상자산시장 거품이 빠지면 NFT 시장도 안정적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하지만 생성형 인공지능(AI)이 부각되면서 작가들이 만들던 디지털아트를 기계가 생산하게 됐다. 장인이 만들던 도자기를 공장에서 찍어내는 상황인 것이다. 지금은 디지털아트를 NFT로 거래하기가 어려워졌다. 이 시기가 지나야 NFT 시장을 전망할 수 있을 듯하다.”
현재 가상자산시장에서 관심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앞으로 가상자산시장의 화두는 중앙은행 디지털화폐인 CBDC가 될 텐데, 그 안에서 어떤 갈등들이 생길지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다.”
한여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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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한여진 기자입니다. 주식 및 암호화폐 시장, 국내외 주요 기업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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