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44

..

“변한 것은 호주 아닌 중국” 호주 새 노동당 정부 反中 정책 강화

中 남태평양 진출 야심에 안보 위협… 쿼드 등 반중 협력체 적극 참여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2-06-21 10: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맨 왼쪽)가 5월 24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쿼드 정상회의에서 쿼드 정상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앤서니 앨버니지 트위터]

    앤서니 앨버니지 호주 총리(맨 왼쪽)가 5월 24일 일본 도쿄 총리 관저에서 열린 쿼드 정상회의에서 쿼드 정상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앤서니 앨버니지 트위터]

    호주 북단에 위치한 노던준주(Northern Territory)의 주도 다윈(Darwin)은 진화론으로 유명한 영국 생물학자 찰스 다윈의 성을 본뜬 항구 도시다. 다윈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2년 2월 19일 일본군 전투기와 폭격기들의 기습 공격으로 쑥대밭이 됐다. 호주군을 비롯한 연합군 병사와 민간인 300여 명이 사망하고, 미 해군 구축함 페어리호 등 함정 10척과 전투기 23대가 침몰하거나 파괴됐다. 호주 국민은 지금까지도 당시 일본군의 기습 공격을 잊지 않고 있다. 다윈은 일본군에 패해 필리핀에서 철수한 더글러스 맥아더 당시 미국 극동군 사령관이 새 사령부를 차리고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던 곳이다. 맥아더 사령관은 호주 방어를 대폭 강화하고 미군과 호주군 등 연합군을 투입해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 등 일본군이 점령한 남태평양 섬들을 차례차례 탈환했다.

    다윈은 지금도 미국의 전략 요충지다. 미국은 2012년부터 해병원정대 병력 2600여 명을 순환배치 형태로 이곳에 주둔시키고 있다. 해양 진출을 가속화하는 중국에 맞서 억지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의 일환이다. 다윈은 태평양과 인도양의 길목에 있는 데다, 교역 요충로인 말라카해협과도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특히 영유권 분쟁 지역인 남중국해와는 2900㎞가량 떨어져 있다. 또 중국의 탄도미사일 위협 범위에서도 벗어나 있다.

    그런데 노던준주 정부는 2015년 다윈항을 민영화하면서 항구 운영권을 3억9000만 달러(약 5036억8500만 원)에 중국 기업 랜드브리지에 99년간 장기임대했다. 랜드브리지는 중국 란차오(嵐橋)그룹이 소유한 기업으로, 예청 최고경영자는 인민해방군 출신이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맬컴 턴불 호주 총리에게 다윈항은 미군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라며 임대 사실을 알리지 않은 데 대해 항의하기도 했다. 이후에도 미국은 이 계약에 계속 불만을 표출해왔다. 호주에서도 안보상 위험이 있을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반면 중국 정부는 랜드브리지는 민간기업이며 다윈항 장기임대는 자국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이 때문에 난처해진 호주 자유당 정부는 지난해 말 안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공식 확인하기도 했다.

    中 기업 장기임대 항구 운영권 전면 재검토

    그런 다윈항이 또다시 중국과 호주 사이에서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5월 21일 치른 총선에서 승리한 호주 노동당 정부가 노던준주 정부의 다윈항 99년 임대계약 전면 재검토 계획을 밝혔기 때문이다. 앤서니 앨버니지 신임 호주 총리는 “다윈항을 둘러싼 모든 상황과 현안을 고려할 것”이라면서 “다윈항 임대계약과 관련해 주정부 또는 하위 기관의 대외관계에 연방정부가 개입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활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호주 의회는 2020년 12월 연방정부가 국가 안보와 관련해 지방정부를 비롯한 공공기관이 외국 또는 외국기관과 체결한 각종 계약을 재검토해 파기할 수 있도록 한다는 내용의 ‘대외관계법’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호주 외교부는 지난해 4월 빅토리아 주정부가 2018년과 2019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와 각각 체결한 일대일로 사업 관련 양해각서와 기본합의를 파기한 바 있다.

    앨버니지 총리가 이렇듯 강경한 입장을 보이는 데는 중국 전투기가 남중국해 상공에서 호주 초계기를 향해 초근접 위협 비행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호주 국방부에 따르면 중국 인민해방군 소속 J(젠)-16 전투기가 5월 남중국해 상공에서 호주 P-8A 해상초계기에 충돌 직전까지 위협적으로 다가왔으며, ‘채프(Chaff)’를 무더기 발사했다는 것이다. 채프는 알루미늄이나 아연 등 작은 쇳조각으로, 레이더 교란을 위해 사용된다. 리처드 말스 호주 국방장관은 “J-16이 쏜 채프의 일부가 P-8A 엔진으로 빨려 들어가 추락 등 매우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뻔했다”고 비판했다. 앨버니지 총리도 “호주는 국제법에 따라 공해 및 상공에서 항해와 비행의 자유를 행사하고 있다”며 “중국 전투기의 초근접 위협 비행은 공격 행위”라고 강력하게 비난했다.



    중국의 이런 행동은 호주 노동당 정부에 대한 일종의 ‘떠보기’라고 볼 수 있다. 호주 총선에서 진보 성향인 노동당은 9년 만에 보수 성향인 자유당을 밀어내고 정권을 차지했다. 역대 노동당 정부는 전통적으로 친중 노선을 보여왔다. 1972년 중국과 수교했고, 호주에서 대표적인 친중파 정치인으로 꼽혔던 케빈 러드 전 총리를 비롯한 노동당 정부는 중국과 관계를 중시해왔다. 리커창 중국 국무원 총리가 노동당이 승리하자마자 앨버니지 총리에게 “중국은 호주와 과거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바라볼 것”이라며 “상호 존중·이익의 원칙을 견지해 포괄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의 건전하고 꾸준한 성장을 촉진할 준비가 돼 있다”고 축전을 보낸 것도 이 때문이다. 중국 관영매체 ‘글로벌타임스’도 “앨버니지의 승리는 침체된 중국과 호주 관계의 전환점”이라면서 “중국은 분명히 호주의 훌륭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런 상황 때문에 중국은 강경하게 반중 정책을 추진해온 자유당 정부와 달리 노동당 정부가 자국에 유화적인 노선으로 바꿀지 여부를 시험해본 것이다.

    中·솔로몬제도 안보협정, 호주에 심각한 위협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5월 26일 제레미아 마넬레 솔로몬제도 외교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왕이 중국 외교부장(왼쪽)이 5월 26일 제레미아 마넬레 솔로몬제도 외교장관과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국 외교부]

    호주 노동당 정부가 자유당 정부보다 더욱 강경한 반중 노선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보다 중국이 솔로몬제도와 안보협정을 체결하고 남태평양 섬나라들과 안보·경제협력을 확대하려는 야심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호주 입장에서 볼 때 중국과 솔로몬제도가 4월 20일 체결한 안보협정은 심각한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이 협정에는 중국이 솔로몬제도에 해군 함정을 파견해 현지에서 물류 보급을 받을 수 있고, 사회질서 유지를 위해 군과 무장경찰을 파견할 수 있다는 내용 등이 포함됐다. 이 협정에 따라 중국은 솔로몬제도를 해군의 원양 작전 기지로 활용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인구 40만 명, 992개 섬으로 이뤄진 솔로몬제도는 호주 다윈에서 2000㎞, 미국의 태평양 군사 거점인 괌에서 남쪽으로 3000㎞ 떨어진 전략 요충지다. 중국 측 의도는 괌 기지의 백업용인 미군의 다윈 기지를 견제하고 호주 해군의 남중국해 진출을 막으려는 것이다. 미군과 일본군은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2~1943년 솔로몬제도의 과달카날섬을 차지하려고 격전을 벌인 적이 있다. 찰스 에델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당시 미국은 과달카날 전투에서 승리해 일본의 남태평양 진출을 차단했고, 솔로몬제도를 발판 삼아 태평양 전선에서 반격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솔로몬제도를 시작으로 남태평양 섬나라 10개국과 안보·경제협력을 확대하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중국은 솔로몬제도를 시작으로 남태평양 섬나라 10개국과 안보·경제협력을 확대하려는 야심을 보이고 있다.

    호주 총선에서도 솔로몬제도의 이런 전략적 중요성은 주요 이슈가 됐다. 당시 앨버니지 노동당 대표는 자유당 대표인 스콧 모리슨 전 총리를 겨냥해 “솔로몬제도와 중국의 안보협정 체결을 막지 못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외교 실책”이라며 강하게 비난했다. 특히 앨버니지 총리는 5월 27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페니 웡 외교장관을 제2회 중국·태평양 도서 국가 외교장관 회의가 열리는 피지 수도 수바에 급파했다. 중국계인 웡 장관은 중국이 주도하던 남태평양 섬나라 10개국(솔로몬제도·키리바시·사모아·피지·통가·바누아투·파푸아뉴기니·니우에·쿡제도·미크로네시아)의 안보·경제협력을 위한 ‘포괄적 개발 비전’이라는 협정 체결을 무산시키는 데 상당한 외교력을 발휘했다. 웡 장관은 “중국이 추진하는 협정은 역내 국가의 단결을 방해하고 안정과 번영에 위협이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설득 작업 덕분인지는 몰라도 피지는 남태평양 섬나라로는 처음으로 미국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IPEF)에 참여하기로 했다.

    호주에 친중 정책 기대하던 中 당혹

    호주 다윈항 인근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는 호주 해군 함정들. [왕립 호주 해군]

    호주 다윈항 인근에서 기동훈련을 하고 있는 호주 해군 함정들. [왕립 호주 해군]

    호주 노동당 정부는 이와 함께 자유당 정부가 추진해온 쿼드(미국·인도·일본·호주 등 4개국이 참여하는 안보협의체) 등 반중 협력체에도 적극 참여하기로 했다. 실제로 앨버니지 총리는 취임한 지 하루 만인 5월 24일 일본에서 열린 쿼드 정상회의에 참석해 중국 견제를 위해 4개국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앨버니지 총리는 “우리의 협력은 공유하는 가치인 민주주의·법치주의·평화롭게 살 권리에 대한 헌신에 기반한다”며 “호주 정부는 교체됐지만 쿼드에서 호주의 약속은 변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다짐했다. 4개국 정상은 앨버니지 총리의 제의에 따라 내년 호주에서 제3차 쿼드 정상회의를 갖기로 합의했다.

    앨버니지 총리와 호주 노동당 정부는 앞으로 안보와 국익, 국민의 반중 정서를 고려해 중국과의 관계를 설정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앨버니지 총리는 “중국 공산당은 대담해졌고 더욱 공격적으로 행동한다”며 “이는 호주가 대응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앨버니지 총리는 “변한 것은 호주가 아니라 중국”이라면서 “중국이 호주에 대한 제재부터 폐기해야 한다”고 밝혀 친중 정책을 기대하던 중국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앨버니지 총리의 말처럼 이제 호주와의 관계 개선이라는 ‘공’은 중국 코트로 넘어간 셈이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