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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당시 英 위조화폐 유통한 독일
먼저 일반인은 인플레이션이 가져다줄 폐해를 간과하고 있다. 인플레이션이 한 국가에 얼마나 치명적인 악영향을 미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사례가 있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에서 이기고자 인위적으로 영국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작전을 썼다. 이른바 ‘작전명 베른하르트’다. 독일은 영국 경제를 파탄으로 몰고 가기 위해 위조지폐를 대량 유통했다. 아이디어는 단순했다. 한 국가에 위조지폐가 범람하면 진폐와 구분할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해 대대적인 인플레이션이 발생해 결국 국민은 자국 통화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는 것이다. 국가 통화가 제구실을 못하면 경제가 파탄에 이르러 전쟁에서 수월하게 우위를 점할 수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위조지폐 제작을 위해 독일은 화가, 인쇄업자, 동판조각가, 식자공, 석판인쇄사, 심지어 미용사까지 강제 동원했다. 이때 동원된 인력이 대부분 유대인이었다. 그리고 1942년부터 1945년까지 위조지폐 900만 장을 찍어냈다. 이는 영국에서 실제로 유통되는 진폐의 13%에 해당하는 양이었다. 독일이 제작한 위조지폐를 1943년 영국 중앙은행이 처음으로 발견했는데, 너무 정교해 지금까지 발견된 위조지폐 가운데 가장 위험한 지폐라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 작전은 대규모로 실행되지는 못했다. 당시 독일 공군이 막대한 자금을 살포하기 위한 비행 연료가 부족하다며 반대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영국도 똑같은 생각을 했다는 사실이다. 영국도 독일 화폐를 위조한 뒤 대량 살포해 독일 경제를 무너뜨리려다가 중간에 포기한 바 있다. 당시 베른하르트 작전 수행을 위해 만들어진 위조지폐가 지금 경매에서 수천만 파운드에 거래된다는 점도 아이러니라 할 것이다.
인플레이션과 관련한 또 다른 오해는 인플레이션이 경제와 화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던 고대나 중세시대에 극심했지, 20세기 들어서는 심각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착각이다. 하지만 가장 극심한 인플레이션인 하이퍼인플레이션은 20세기에 접어들어 본격화됐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한 달 동안 인플레이션율이 50% 이상 유지되는 초인플레이션을 의미한다. 어찌 보면 물가가 가장 안정적이던 시절은 고대시대라고 할 수 있다. 고대에는 일종의 상품화폐라고 해서 가축, 곡식, 소금이 화폐로 사용됐다. 그러다 보니 화폐 자체 나름의 가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폐는 다르다. 남발할 경우 종잇조각으로 전락할 수 있다.
베네수엘라는 하이퍼인플레이션으로 화폐가 종잇조각이 됐다. [GETTYIMAGES]
美 연준 매년 폐기 달러만 7000t
인플레이션이 통제 수준을 벗어나 위험한 상황인지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먼저 해당 국가의 인플레이션은 그 나라 중앙은행이 관리한다. 그런데 해당 국가의 중앙은행이 발표한 인플레이션율과 실제 인플레이션이 큰 차이를 보이기 시작하면 이때부터 국가 통제를 벗어났다고 판단할 수 있다. 다음으로 비공식 환율이 급등할 때다. 암달러 시장 환율은 그 나라 공식 환율 시장과 다소 차이가 나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그 편차가 커져 비공식 환율이 급등했다면 이는 해당 국가의 화폐가치가 크게 떨어지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국제 투자자들이 대출금리 인상을 요구할 때도 인플레이션이 통제 범위를 넘어섰다는 뜻이다. 일상생활에서도 힌트를 얻을 수 있는데, 정부가 다양한 물품의 가격 상한선을 정하는 정책을 내놓는다면 인플레이션 통제가 어려워졌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있다.세계 각국 정부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화폐 소각까지도 고민하고 있다. [GETTYIMAGES]
지폐는 훼손될 경우 다시 찍으면 된다. 하지만 떨어진 화폐에 대한 신뢰는 원상태로 되돌릴 수 없다. 신뢰는 지폐처럼 원하는 대로 찍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극심한 인플레이션이 유발돼 국민경제가 파탄 난 적이 많다. 그리고 가장 큰 피해자는 언제나 빈곤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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