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고용노동부는 네이버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했다. [동아DB, GETTYIMAGES]
이러한 급성장 이면에는 ‘젊은 꼰대’ 문화가 숨겨져 있었다. 5월 네이버 본사에서 근무하던 한 직원이 업무상 스트레스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사건이 벌어졌다. 파장이 커지자 한성숙 네이버 대표는 실적 발표 자리에서 “건강한 조직문화 조성을 비롯해 미흡한 부분들이 지적된 점들을 하반기 최우선으로 개선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네이버는 최고경영자(CEO)·최고운영책임자(COO) 등 소수의 C레벨 경영진으로 구성된 집단경영체제인 CXO체제의 변화를 예고한 상태다.
급성장 이면의 ‘꼰대’ 문화
오세윤 네이버사원노조 ‘공동성명’ 지회장(왼쪽에서 네 번째)이 6월 7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네이버 그린팩토리 앞에서 열린 ‘동료의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노동조합의 입장 발표’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네이버는 2014년 직급 폐지, 2017년 임원제 폐지, 2018년 선택적 근로시간제 도입 등 근로 환경을 일신했다. 2019년 고용노동부가 주관한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2016년 ‘고용창출 100대 우수기업’(‘현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에 뽑힌 것을 시작으로 5년째 정기 근로감독에서 제외되는 혜택을 누렸다. 그 기간 조직 내부는 예상치 못한 ‘갑질’로 얼룩져갔다.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네이버 조직문화의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수평 문화에서 시작된다. 조직마다 자율성을 강조하다 보니 각 조직의 ‘리더’와 ‘책임리더’(리더와 대표급 사이 중간관리급)에게 과도한 권한이 쏠리는 부작용을 낳았다. 이는 ‘이너서클’ 문제로도 직결됐다. ‘이너서클’이란 조직에서 실질적 권력을 점유하는 소수 핵심층을 의미한다.
네이버파이낸셜에 불똥
이번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은 일명 ‘최인혁 라인’으로 통한다. 최인혁 전 COO는 네이버 창업자인 이해진 글로벌투자책임자(GIO)의 최측근으로 꼽힌다. 서울대 동문인 두 사람은 네이버 창업 때부터 함께했다. 네이버 직원들은 “가해자로 지목된 책임리더가 사내에서 ‘최인혁 라인’으로 통하는 상황에서 직장 내 괴롭힘 신고채널은 무용지물이었다”고 주장한다.최근 고용노동부가 네이버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실시한 결과 사망한 노동자를 포함한 다수 직원이 최 전 COO에게 가해자의 직장 내 괴롭힘과 관련해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으나 이를 인지하고도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대해 네이버 측은 “추가로 소명할 사항이 있다. 향후 조사에서 소상히 설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네이버 노조는 최 전 COO를 네이버파이낸셜 대표와 해피빈재단 대표직에서도 해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네이버파이낸셜 대표직과 관련해서는 금융권에서도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네이버파이낸셜은 직접 ‘플레이어’ 역할을 하는 카카오(카카오뱅크)와 달리, 기존 금융사에 플랫폼을 제공하는 방식이라 금융권으로부터 ‘꼼수’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은행이 아니어도 거래계좌를 발급할 수 있는 종합지급결제사업자 신설과 후불결제(한도 30만 원) 허용을 골자로 하는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의 경우 ‘빅테크 특혜법’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이에 대해 네이버파이낸셜 측은 “종합지급결제사업자를 검토한 적이 없다”며 선을 그었다.
금융권의 불만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전자금융업자인 네이버파이낸셜이 금융업 라이선스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은행법’이나 ‘금융소비자 보호에 관한 법률’(금융소비자보호법) 등을 지키지 않고 금융 플랫폼 지배력만 높이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융업은 기본적으로 규제산업이다. 현재 네이버는 거래 행위, 자본금, 시스템 등 다양한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가운데 금융소비자보호법마저 피해 논란이 가중되고 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네이버를 통해 들어와 네이버의 네임밸류를 믿고 금융상품을 사는 경우가 많은데, 회사가 책임을 지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며 “최인혁 대표 문제만 해도 은행이나 금융회사였다면 금융감독원이 모니터링을 했을 거다. 플랫폼 역할을 어떻게 정의해야 할지 고민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직원 수당 86억여 원 미지급… 독과점 논란 여전
네이버는 지난해 10월 ESG(환경·사회·지배구조)위원회를 설립하고, 올해 본격적으로 ESG 경영 행보에 나섰다. ESG 등급은 요즘 기관투자자들이 가장 중시하는 지표 중 하나다. 7월 9일 ESG 등급을 평가하는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네이버의 S(사회책임경영) 개별등급을 A에서 B+로 하향 조정했다. ESG 경영 첫해부터 체면을 구긴 셈이다.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후폭풍으로 인한 추가 리스크도 남아 있다.고용노동부에 따르면 네이버는 주52시간 근무 위반과 함께 최근 3년간 직원들에게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네이버가 지급해야 할 수당은 86억7000여만 원에 달한다. 임산부 보호 의무도 지키지 않았다. 고용노동부는 ‘노동관계법’ 위반으로 네이버를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다.
네이버의 시장지배력에 따른 독과점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네이버는 쇼핑, 동영상, 부동산 사업에서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277억 원대 과징금을 부과 받은 것에 불복해 공정거래위원회와 법정 싸움을 벌이고 있다. 1년 전 법률 상담 플랫폼 ‘엑스퍼트’를 불법 운영한 혐의로 법조인들로부터 고발당한 사건은 최근 증거 불충분으로 검찰 불송치 결정이 났다.
플랫폼 사업과 관련한 여러 논란을 의식한 듯 네이버는 7월 26일 온라인 쇼핑 플랫폼 스마트스토어의 수수료를 리뉴얼하겠다고 발표했다. 사업 초기 단계 판매자의 정착을 돕고자 주문관리수수료(결제수수료·2~3.3%)를 12개월간, 매출연동수수료(검색광고비·2%)를 6개월간 무료로 지원한다는 내용이다.
최근 들어 유통 성장축이 기존 서치플랫폼에서 e커머스와 핀테크로 옮겨감에 따라 중소상공인 보호 차원에서 네이버의 사회적 책임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현재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판매자 수는 41만여 개로, ‘판매자 수를 5년 내 100만 개 이상으로 키우겠다’는 목표를 이루려면 ESG 경영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
그 첫걸음으로 ‘집안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장기적 성장을 위해선 외부 갑질 문제로까지 이어진 조직 문제부터 차근차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직 규모가 커진 만큼 청와대 국민청원처럼 직원들이 대표에게 직접 고충을 제보할 수 있는 커뮤니케이션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충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