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 삼례책마을.
매년 책마을을 찾다보니 규모 있게 꼴을 갖춰가는 걸 보게 된다. 한 때 충청과 호남의 쌀들이 모여들던 양곡창고가 미술관으로 고서점으로 박물관으로 다시 태어나고 있다. 거대한 규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층고가 높은 양곡창고는 그 용도를 재미나게 물려주고 있었다. 충청도와 전라도의 교통 요지인 삼례는 1892년 수천 명의 동학교도들이 최제우의 신원을 회복하고 신앙의 자유를 외쳤던 곳으로 동학혁명의 시발점이다. 또 일제의 쌀 수탈 중심에 있던 곳도 삼례였다. 김제와 익산, 정읍 등지의 쌀을 군산항으로 옮기던 삼례역 주변에 포진한 양곡창고가 그래서 만들어졌다. 지금은 낡고 허물어질 것 같던 창고를 개조해 삼례책마을이 조성되고 있다. 영국의 책마을 ‘헤이 온 와이’를 모델로 완주군과 삼례책마을 박대헌 이사장이 공들이고 있는 곳이다.
코로나 와중에도 흥미로운 전시가 여러 개 오픈됐다. 작년 11월 오픈한 ‘문자의 바다’ 전시와 근래 오픈한 ‘프랑스와 예술의 혁명’, 어린이날 오픈하기 위해 준비를 마친 ‘그림책 미술관’이 그것이다.
문자의 바다
고대 레반트의 쐐기문자 등을 볼 수 있는 ‘문자의 바다’ 전시.
이광사의 서예이론서인 ‘원교서결’(圓嶠書訣)은 개인적으로 매우 흥미로웠다. 한때 서예를 공부했지만 우리 조상이 쓴 ‘서예이론서’를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필법과 묵법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는데, 조선서예사를 이론적으로 체계화했고 획의 운용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정리하고 있어 놀라웠다. 왜 선배들은 이런 걸 가르쳐주지 않았나? 지금이라도 서예가들이 좀 보았으면 한다.
또한 한글 필사본과 판각본, 연활자본 등이 많았는데 임금이 백성에게 내린 교서(척사윤음·斥邪綸音)와 천주교가 들어온 이후 성경의 내용을 번역하거나, 외국 선교사가 우리나라에 파견되기 전 우리를 알기 위해 그들이 정리한 한글의 자모 소개 내용과 비숍 여사가 쓴 ‘조선과 그 이웃 나라들’ 등 한국학 자료도 꽤 있고, 미국에서 처음 조선으로 진출한 석유회사의 간판 디자인 ‘솔표-승리표 석유’도 있었다. 국어학자 이숭녕 박사가 친필로 쓴 ‘문법총설’도 있어 이후 책으로 출간됐는지 궁금했다. 이렇게 내가 알아볼만한 자료 외에도 세계 각지의 고대 문자와 결혼계약서나 종교 관련 자료가 186종에 2775점이나 되는 대규모 전시였다. 재미있는 건 내용은 모르더라도 그 형태와 생김만으로도 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내게는 이 정도 재미지만 좀 더 아는 사람들이라면 하루 종일 놀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류는 지혜를 전승하면서 문명을 발전시켜왔다는 걸 보여주는 이번 전시는 종교서적부터 다양한 전시물로 풍성하기 그지없다. 조그만 시골 동네의 전시가 그렇겠지 하던 생각을 완전히 뒤집어 놓을만한 규모였다. 내가 언급한 것은 극히 일부고 지역에서 한 사람의 노력으로 이뤄놓은 성과가 가히 국가적이다.
프랑스와 예술의 혁명
‘프랑스와 예술의 혁명’ 전시.
아폴리네르의 첫 시집 ‘알코올’과 혁명적인 형식의 타이포그래피 시집 ‘칼리그람(Calligrammes)’, 동물 판화와 함께 편집된 ‘동물시집’ 등 문학 자료가 전시돼 있었다. 로아폴리네르는 피카소를 비롯해 입체파 화가 친구들이 많았기에 그의 초상화와 조각상도 많은 편이다. 전시에는 아폴리네르를 그린 피카소의 초상과 조각을 비롯해 다른 화가들의 아폴리네르 초상도 보인다. 로랑생도 많은 그림을 남겼는데, 전시된 그림들은 석판화와 르노자동차 광고 그림, 여러 작품의 수채화 등이며 당시의 사진자료를 추가해 이해를 도왔다.
두 번째 공간은 나폴레옹과 ‘조선 서해안 항해기’를 주제로 한 전시였다. 영국 해군함장 바실 홀은 1816년 우리나라 서해안을 항해하며 10일간 탐사했다. 9월 1일부터 9일까지 백령도 부근 서해 5도와 장항만, 고군산열도 등을 들러보고 주민도 접촉했다. 이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과 비인 현감 이승렬이 그들의 배, 리라 호에 올라 여러 가지를 살펴보고 물었다고 한다. 바실 홀은 조대복과 말이 통하지 않았지만 배의 이곳저곳을 안내하며 도서실의 책을 선물하고 체리브랜디를 대접하기도 했는데 이때 화가 윌리엄 하벨(William Havell)이 조대복의 모습을 스케치했다. 이러한 내용은 그의 여행기 ‘조선 서해안 항해기’(1818)에 소개됐다. 바실 홀은 귀국하는 길에 세인트헬레나 섬에 유배돼 있던 나폴레옹을 방문해, 나폴레옹에게 조선에서 보고 들은 바를 상세히 전하면서 그려진 조대복을 보여주었다. 나폴레옹은 갓과 장죽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조대복의 풍모는 서양의 어느 사교계에서도 결코 뒤지지 않을 문명인이라고 했다는 내용이 홀의 또 다른 항해기 ‘중국사행’(1826)에 수록돼 있다. 이 책도 전시돼 있다. 나폴레옹의 죽음은 한 세기 영웅의 죽음답게 많은 화가들에 의해 그려졌다. 전시장에 전시된 샤를 드 스테방의 유화는 그 중 대표적인 작품이다.
‘프랑스와 예술의 혁명’ 전시의 마지막 공간은 근대 프랑스 화가들의 작품 스무 점을 보여준다. 안토니 반다이크, 프랑수와 부셰, 위베르 노베르, 쥘 라자레 지로, 프란츠 빈터할터, 디아즈 드 라 페냐, 아드리앵 루소, 레옹 빅터 듀프레, 앙리 샤를 앙투안 바롱, 아돌프 몽티셀리, 외젠 부댕, 카미유 피사로, 샤를 에두아르 프레르, 폴 세잔, 알프레드 루이 비니 자코멩, 아돌프 카우프만, 앙리 아드리앙 타눅스, 마르셀 르프랑, 부르딘의 오리지널 유화 작품이다.
전시에는 눈에 띄는 작품이 여럿 있었는데, 샤를 에두아르 프레르가 그린 ‘당나귀 타고 장에 가는 여인’과 모네의 스승이었던 외젠 부댕의 풍경화, 그리고 파리 근교의 바르비종과 퐁텐블로 숲을 그린 화가의 풍경화와 폴 세잔의 ‘르메쉬르센에서 본 믈랭’이다. 앙리 아드리앙 타눅스의 ‘시골처녀’도 신선했다. 당대에는 부르주아들이 화판에 많이 등장했는데, 빨래하러 가는 시골처녀를 전면에 내세우고 과감한 구도로 화면을 장악했다.
압권은 세잔의 그림이었다. ‘르메쉬르센에서 본 믈랭’은 세잔이 마흔 즈음에 그린 작품 중 하나다. 세잔은 같은 전시장에 ‘몽마르트 거리’를 그린 카미유 피사로에게 인상파의 작화를 배우기는 했지만 빛에 의해 나타나는 대상들의 모습보다는 그 밑에 깔린 구조를 그리려했기에 그의 미술 개념은 20세기 화가들과 입체파에 큰 영향을 주었다. 세잔은 1885~1887년 사이 생트빅투와르 산을 주제로 풍경을 그리며 실험을 했는데, 전시된 그림은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다. 그는 외양의 희미한 베일에 가려져 있는 단순한 형태, 좀 더 본질적인 실체로 재발견하려고 했다. "자연의 모든 것은 구(球)와 원추 및 원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는 이 단순한 도형들로 그림 그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동시에 그의 그림은 깊이 없이 완전히 평면적으로 보일 수 있도록 어른거리는 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엑상프로방스 근처의 생트빅투와르 산을 그린 세잔의 대표작 ‘큰 소나무들이 있는 생트빅투와르 산’과 같은 전성기에 그려진 ‘르메쉬르센에서 본 믈랭’은 전형적인 세잔 양식을 보여준다. 오직 색채를 통해서 원근감을 보여주는 그의 명작을 그것도 원본으로 이 조그만 미술관에서 보게 되다니 놀랍기만 하다.
앙시앙 레짐(ancien régime)과 혁명은 한 몸이다. 전시장은 천장의 목조 트러스와 통나무를 절반으로 갈라 벽면을 사선으로 세웠는데 공간이 조화로워 보는 것만도 즐거웠다. 아폴리네르와 마리 로랑생, 나폴레옹과 조선 항해기, 그리고 프랑스 근대 회화 전시를 ‘프랑스와 예술의 혁명’이라고 작명한 이유를 알겠다.
그림책 미술관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그림책 미술관이다. 그림책미술관은 예술적 가치가 높은 그림책과 오리지널 원화를 수집, 발굴, 전시, 연구하는 목적으로 완주군에서 설립했다. 책박물관과 삼례책마을이 그렇듯 그림책미술관도 양곡창고를 개조해 만들었다. 건물을 바라보자 벽면에는 농협 양곡창고라는 글씨가 또렷하다.개관기념 전시로 ‘요정과 마법의 숲’의 타자 원고와 원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원화의 그림책 작가가 많이 생소했다. 1940년대 영국 동화작가 그레이브스(G. Graves)라고 하는데, 출간되지 않은 미간행 원고를 수집해 전시하는 것이다. 작가의 고향인 영국에서도 출간하지 못했던 작품이 우리나라에서 빛을 보게 된 셈이다. 그림은 아일랜드의 나오미 헤더(Naomi Heather, 1911~1989)가 그렸다. 텍스트 원고 57장과 오리지널 원화 35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원고들은 정성스럽게 정리된 상태였다. 원고는 매 페이지마다 해당 삽화를 실로 꿰매어 아래위로 두꺼운 판지를 씌워 정성스럽게 가편집돼 있었다. 판지 위에는 제목 “Nursery Versery(너서리 버서리)”와 저자 “G. Graves(그레이브스)”라고 쓰였다. 우리나라에서 출간하면서 제목을 ‘요정과 마법의 숲’으로 바꾸었는데 원 제목인 ‘너서리 버서리’는 일종의 동요라고 한다. 너서리 라임은 마더구스 라임(Mother Goose Rhymes)과 함께 영국의 전래동요를 가리키는 말로, 특히 18세기 중반까지는 구전으로만 전해지다 활자화 됐다. 2016년 책박물관의 ‘랜돌프 칼데콧(Randolph Caldecott)’ 특별전을 통해 빅토리아 시대의 그림책으로 한국에 소개되기도 했다.
너서리 라임은 당대의 정서를 어린이의 시선으로 담아내어 사람들의 삶과 세계관을 엿볼 수 있는데, ‘너서리 버서리’ 원고도 당대 사람들의 삶에 대한 태도와 자연에 대한 관심을 드러낸다. 숲의 요정과 꽃, 벌레, 동물 등 자연의 정령이 만드는 다양한 사건들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다.
작품이 쓰인 시기는 1940년경으로 추정되며, 목차와 삽화까지 완전한 상태로 가편집됐다. 그림 작가 나오미 헤더는 당시 아일랜드와 영국 출판계에서 참신한 화가로 좋은 평판을 얻으며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젊은 작가였다. 어떤 사정이 있었던지 그레이브스와 나오미 헤더의 원고는 영국에서도 아일랜드에서도 출판되지 못했다. 아마도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 때문으로 보인다. 그레이브스의 행적도 ‘너서리 버서리’ 원고의 행방도 세상에서 80년간 잊혔다. 2018년 어느 날, 영국의 고서경매를 통해 그레이브스의 원고 뭉치가 온전한 모습으로 세상에 다시 나타난다.
원고는 삼례의 그림책미술관에서 개관 기념으로 첫 공개 전시되고 책으로 출간도 된다. 내용을 살펴보니 그림의 품격도 높고, 동요의 내용도 아이들의 동심을 잘 그려놓은 수작이다.
여섯 개의 작은 빗방울이 세상에 왔어요.
여섯 개의 작은 씨앗들 위로 떨어졌어요.
여섯 개의 잡초가 태어났어요.
여섯 개의 작은 잡초는 다시 씨앗으로 여물었어요.
그들은 멀리 또 널리 흩어져 날아갔지요.
시골 마을 여기저기를 꽤 망쳐놓았어요.
‘씨앗과 잡초’라는 작품인데 정말 아름답고 동심이 넘친다. “시골 마을 여기저기를 꽤 망쳐놓았어요.” 어떻게 이런 표현이 나오겠나? 놀랍다. 그 외에도 ‘뿌린 대로’ ‘개구리와 두꺼비’ ‘달팽이 신사’ ‘무당벌레’ ‘빨강 장미와 분홍 장미’ 같은 작품들은 매우 훌륭했다. 무엇보다 나오미 헤더의 그림은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스노드롭을 의인화한 그림이라든지 씨앗과 잡초의 그림은 너무도 귀엽다.
미술관에는 그 외에도 월터 크레인과 랜돌프 칼테곳, 케이트 그린어웨이 그림책을 비롯한 영국 빅토리아 시대 그림책이 상설 전시돼 있고 읽을 수 있는 곳도 마련돼 가족이 함께 방문한다면 즐거운 한때를 보내며 동심을 다시 찾을 수 있겠다. 앞으로도 다양한 그림책 원화를 기획전시할 예정이라고 하니 정기적으로 방문하면 더 좋을 듯싶다.
세 곳을 커피 한잔 마시지 못하고 돌아보는데 한나절이 걸렸다. 누군가 온다면 나처럼 바삐 다니지 말고 책방과 카페에서 뭐라도 마시며 느긋하게 책마을 자체를 즐겨는 보는 게 더 낫겠다. 목적이 있는 여행은 피곤하지만 즐거운 한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