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일럿 어시스트로 주행하다 사고가 난 볼보 V90.
서울에 사는 A씨는 3월 7일 볼보 V90을 파일럿 어시스트로 운전하다 고속도로 중앙 가드레일에 부딪히는 사고가 났다. A씨는 “파일럿 어시스트 기능으로 직선 고속도로 1차선을 시속 100㎞로 주행하던 중 차가 차선을 벗어나 중앙 가드레일로 향했다. 급하게 핸들을 2차선 쪽으로 돌렸으나 핸들 조향이 바로 되지 않았다”며 “핸들을 과하게 돌려 2차선을 침범해 다시 왼쪽(1차선 방향)으로 돌렸는데, 결국 운전석 측면이 중앙 가드레일에 부딪히는 사고가 발생했다”고 사고 당시를 설명했다.
볼보코리아 “운전자 핸들에서 손을 떼고 주행했다”
사고 직후 차량은 볼보 서초서비스센터로 견인됐으며 3월 15일 볼보 스웨덴 본사에 사고 리포트를 보냈다. A씨는 한 달이 지난 4월 중순까지 일주일에 한 번꼴로 사고 처리 담당자에게 전화해 사고 처리가 어느 정도 진행됐는지 문의했지만 “스웨덴 본사에서 아무런 피드백이 없으니 기다리라”는 답변만 반복해 들었다.‘주간동아’가 4월 20일 볼보코리아 측에 이번 사고와 관련해 문의한 결과, 볼보코리아 관계자 B씨는 “운전자가 운전 중 핸들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 손을 뗀 상태에서 파일럿 어시스트로 운행하다 보니 기능이 풀려 (차선) 중간으로 가던 차가 왼쪽으로 틀어진 것”이라며 “핸들에서 손을 뗀 운전자 과실로 인한 사고”라는 입장을 밝혔다. 더불어 “차량주는 사고 후 서비스센터에 차를 맡긴 상태로 수리를 안 하겠다면서 계속 컴플레인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에 A씨는 “운전 중 핸들에서 손을 뗀 적이 없다. 볼보코리아에서는 사고 결과를 판단할 수 없어 스웨덴 본사에 제출한 리포트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담당자 얘기만 듣고 기다린 것일 뿐”이라며 “사고 원인을 문의했을 때는 한마디 설명도 없다 이제 와 핸들에서 손을 뗀 운전자의 과실이라니 말문이 막힌다”고 했다.
주간동아 취재 바로 다음 날인 4월 21일 오전 A씨는 e메일을 통해 볼보 스웨덴 본사의 사고 리포트 분석 결과를 받았다(자료 참조). 1쪽짜리 분석 결과는 핸들 조향 시간과 방향이 나타난 그래프가 전부였다. 그래프에는 사고 직전 운전자가 핸들을 왼쪽(중앙 가드레일 쪽)으로 돌렸다 오른쪽(2차선 쪽)으로 돌린 뒤 다시 왼쪽으로 돌렸다고 분석했다. 사고 전부터 운전자가 핸들을 조향했다는 것이다. 사고 당시 핸들에서 손을 떼고 있었다는 볼보코리아 측 주장과 상충되는 분석 결과다.
주간동아가 볼보코리아 측에 스웨덴 본사와 달리 사고 원인을 핸들에서 손을 뗀 운전자 과실로 설명한 이유를 물으니 관계자 C씨는 “처음 서비스센터에 들어왔을 때 고객이 ‘반자율주행은 손을 놓고 타야 되는 것 아니냐’고 얘기한 것 같더라. 그 얘기만 듣고 ‘손을 놓고 탔구나’라고 파악했다. 하지만 모듈 시스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운전자는 핸들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고 말끝을 흐렸다. 이에 대해 A씨는 “서비스센터에서 손을 떼고 운전했다고 말한 적이 없다. 사고가 일요일에 발생해 서비스센터 직원을 만나지도 못했고 셔터가 내려진 서비스센터 앞에 사고 차량을 두고 왔다”며 “무엇보다 처음 왼쪽으로 핸들을 돌린 것은 내가 아니라 파일럿 어시스트”라고 주장했다.
볼보 스웨덴 본사 분석 “운전자 핸들에서 손 뗀 적 없다”
이번 사고로 앞뒤 자동차 휠이 깨지고 운전자석 옆 에어백이 터지는 손실이 났다. 볼보 서초서비스센터는 수리비로 2500만 원의 견적을 냈다. 교체가 필요한 부품은 총 73개.A씨는 볼보 측으로부터 영문으로 작성된 견적서를 받고 한글 견적서를 요청했으나, 한글 견적은 발행하지 않으니 인터넷에서 찾아보라는 답변을 들었다고 했다. 거듭된 한글 견적서 요청에 사고 처리 담당자는 서비스센터에 방문하면 어떤 부품인지 설명해줄 수 있다고 했다.
사고 당시 사용한 파일럿 어시스트 기능은 운전자가 설정한 속도로 앞차와 거리를 유지하면서 주행하는 것은 물론, 차로를 벗어나지 않도록 차가 스스로 조향하는 기능이다. 볼보코리아 자료에는 파일럿 어시스트는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주행 속도와 차간거리를 일정하게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시스템)에 차선 유지 보조 기능이 합쳐진 주행 보조 시스템으로, 자율주행이나 반자율주행이 아닌 ‘운전자 보조 시스템’이라고 돼 있다.
파일럿 어시스트,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고속도로 주행 보조(HDA), 차로 유지 보조(LFA), 차로 이탈 방지 보조(LKA), 전방 충돌 방지 보조(FCA), 차선 중앙 유지, 차선 유지 보조 기능 등 제작사마다 명칭은 다르지만 기능은 비슷하다. 버튼 조작을 누르면 자동차가 앞차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차선을 따라 스스로 주행하는, 사실상 반자율기능이다.
미국 자동차공학회(SAE)는 자율주행 기능을 레벨 0부터 5까지 총 6단계로 분류하고 있다. 이 분류에 따르면 레벨 0은 자율주행 기능이 없고, 레벨 1은 조향 혹은 가감속 중 한 기능을 지원하며, 레벨 2는 조향과 가감속을 모두 지원한다. 국토교통부는 SAE 분류에 따라 국내 안전 기준상 레벨 1~2는 운전자 지원 기능을 탑재한 차량, 레벨 3부터는 자율주행차로 구분하며 레벨 1, 2로 주행하면서 발생한 모든 사고는 운전자 책임으로 본다. 볼보의 파일럿 어시스트는 레벨 2에 해당한다.
또한 ‘도로교통법’ 제48조에는 ‘모든 자동차의 운전자는 조향장치와 제동장치, 그 밖의 장치를 정확히 조작해야 하며, 도로 교통 상황과 자동차 구조 및 성능에 따라 다른 사람에게 위험과 장해를 주는 속도나 방법으로 운전하여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돼 있다. 즉 교통사고 원인이 파일럿 어시스트를 포함한 첨단 주행 시스템의 오류에 의한 것이라 하더라도 운전자 책임이라는 뜻이다.
A씨는 “기능상 문제가 있다면 운전자가 아무리 안전하게 운전해도 사고를 당할 수밖에 없지 않은가. 무조건 운전자 책임이라니 누구를 위한 법인가”라고 반문했다.
〈자료〉 볼보코리아에서 A씨에게 e메일로 보내온 1쪽 짜리 스웨덴 본사 사고 원인
분석 결과.
해당 사건은 운전자가 가드레일을 충돌하였을 때 등록된 이벤트입니다. 하지만 해당 사건의 경우 운전자가 높은 조향 토크(steering torque)로 좌측으로 직접 힘을 가하였습니다. 운전자는 가드레일 방향으로 높은 조향 토크를 가하였으며 이러한 상황에서 PA(Pilot Assist)는 운전자가 조향 기능을 조정하는 것으로 간주합니다. KR 349251.dookPA가 가할 수 있는 최대 조향 토크는 1Nm입니다. 해당 사건의 경우 운전자가 1.5~2.4Nm의 조향 토크를 사용하였으므로 PA는 무시되고 운전자의 조향이 반영됩니다. 사건 당시 운전자는 PA를 현 상태에서 115km/h로 직진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 운전자는 좌측으로 스티어링 휠을 돌렸고 그에 따라 조향 지원은 중단되었으며 차량은 좌측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또한, 첨부된 영상을 보면 차량이 중앙 가드레일을 충돌하려 할 때, 여성이 비명을 지른 후 운전자가 가드레일을 출격한 뒤 차량의 자세가 흐트러지고 ESC(Electronic Stability Control) 시스템이 개입됨에 따라 PA는 종료되었습니다. 즉 사고 당시 차량에 이상은 없었습니다.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김우정 기자입니다. 정치, 산업, 부동산 등 여러분이 궁금한 모든 이슈를 취재합니다.
[영상] 유럽축구에 혜성같이 떠오른 마르무시
‘괴짜 사업가’ 트럼프로 기우는 美 유권자… 서민들의 ‘경제적 박탈감’ 공략이 주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