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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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의 비밀 담은 상수 파이(π) [궤도 밖의 과학-34]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0-11-10 10:4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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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지름에 대한 원둘레의 비를 ‘원주율’ 혹은 ‘파이(π)’라 부른다. [게티이미지]

    원지름에 대한 원둘레의 비를 ‘원주율’ 혹은 ‘파이(π)’라 부른다. [게티이미지]

    올 들어 트로트 열풍이 대한민국을 뒤흔들고 있다. 트로트를 소재로 한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최고 시청률이 35%를 넘었을 정도다. 이 프로그램에서 진행한 대국민 실시간 문자 투표에서 최다 득표를 차지했던 임영웅은 일약 스타가 됐고, 전국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리모컨만 누르면 그가 등장하는 광고가 나오며, 길거리에서 들려오는 익숙한 노랫가락에는 항상 그의 목소리가 담겨있다. 현재 트로트의 인기는 단순히 하나의 현상을 넘어 트로트에 대한 인식 자체를 바꿨다는 점에서 문화적 혁명에 비견되기도 한다.

    변하지 않는 고유한 수

    이렇게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을 끌었던 존재가 수학계에도 있었다. 학창시절 싫증나도록 들었을 ‘파이(π)’다. 당연히 영국에서 유래된 넓적한 빵을 말하는 건 아니다. 물론 공대생 유머인 ‘초코파이의 초콜릿 함유량을 구하기 위한 계산’에서 파이(π)가 보유하고 있는 중의적 의미를 활용하기도 한다. 초콜릿을 초코파이로 나누면 1/파이(π)만 남고, 결국 이를 백분율로 환산하면 31.83%라는 결과가 나온다. 이런 간단한 계산이 가능할 정도로 파이(π)는 유명하다.

    파이(π)라는 기호를 처음 사용한 18세기 스위스 천재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 [Deutsches Museum 소장본]

    파이(π)라는 기호를 처음 사용한 18세기 스위스 천재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 [Deutsches Museum 소장본]

    파이(π)라는 기호는 둘레를 뜻하는 그리스어 ‘περιμετροζ’의 첫 글자를 가져온 것이며, 스위스의 천재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가 처음 사용했다. 이 녀석의 정체를 보여주는 다른 이름은 원의 지름에 대한 원둘레의 비인 ‘원주율’이다. 둘 사이의 관계는 원의 크기와 무관하며 늘 일정하게 유지되는데, 그 값은 3.14로 시작해서 끝도 없이 이어진다. 무한해서 끝까지 셀 수 없다니 뭔가 새롭게 느껴지지만, 결국 0이나 1처럼 그 값이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상수다. 상수는 수의 종류가 아니라 주어진 식에서 변하지 않는 고유한 수를 의미하며, 반대로 값이 변할 수 있다면 변수라고 부른다. 우리가 마트에서 장을 볼 때 열심히 카트에 집어넣는 맥주 캔의 개수 정도만을 수라고 인식하지만, 제곱해서 음의 수가 나오는 허수 역시 수의 한 종류다. 그 외에도 정수와 분수로 적는 것이 가능한 유리수, 그리고 그렇게 나타내기가 어려운 무리수를 합쳐 실수라고 한다. 바로 이 무리수에 소속된 유명인사가 바로 원주율, 파이(π)다. 무리수에서도 ‘초월수(Transcendental Number)’라는 친목 모임에 속한다. 유한 차수 다항 방정식에서 계수가 전부 정수로만 이루어져 있을 때, 그 해가 될 수 없는 수가 초월수이다. 쉽게 말해, 대놓고 노리지 않는 이상, 고등학교 수준의 간단한 수학 문제에서 답으로 뽑힐 만큼 딱 떨어지지 않는 수라고 보면 된다. 다른 선수에 비해 키가 작았지만, NBA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앨런 아이버슨이 남긴 명언이 있다. ‘농구는 신장으로 하는 것이 아닌, 심장으로 하는 것이다.’ 서류상의 키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작아서 이길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을 신장과 심장이라는 비슷한 두 단어의 언어유희로 바꾸었다. 이렇게 원문의 느낌을 직역보다 훨씬 효과적으로 살려낸 것을 초월번역이라고 한다. 비약이 좀 심하긴 하지만, 번역에 정답이 없는 초월번역만큼 정해진 답을 찾을 수 없고,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에 이른 수를 초월수라고 봐도 좋겠다. 원주율 외에도 알려진 초월수가 더 있지만, 이걸 증명하려면 대학 수준의 대수학이나 정수론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기에 쉽지 않다. 다행히 인기스타 원주율은 초월수로써 검증을 마쳤다. 그런데 원의 지름과 원둘레가 그렇게나 중요한 이유가 뭘까? 그래 봐야 끝없이 이어져서 외우기만 힘들 텐데 말이다. 

    가끔 동글동글 우습게 보일지 몰라도, 원이라는 도형이 우주에서 가장 보편적인 형태라는 것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둥근 태양 주위를 돌고 있는 지구도 원을 그리며 돌고, 달 역시 지구 상공에서 원형의 궤도를 쉬지 않고 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플라톤의 제자로 유명한 아리스토텔레스는 우주를 움직이는 힘을 설명하기 위해 ‘원동자’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움직이는 거대한 세상에서, 과연 최초로 이러한 움직임을 시작한 원인이 무엇일까를 고민하다가 그럴싸한 운동의 궁극적인 기원을 찾아냈다. 원동자가 영원한 원운동을 일으키며, 이로 인해 태양과 달, 지구가 끝없이 돌고 있다면 모든 게 깔끔했다. 그는 원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원만큼 신성한 것은 없다. 그래서 신은 태양이나 달, 그 밖의 별들을 둥글게 만들었고, 모든 천체는 원을 그리며 지구 주위를 돌도록 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천동설은 이미 오래전에 지동설로 대체되었지만, 원에 대한 그의 애정 어린 신성화는 여전히 그럴듯해 보인다. 이처럼 과거 수학자들에게 원은 매력적인 대상이었으며, 그 안에 담긴 비밀을 밝혀내기 위한 노력은 꾸준히 이어져왔다.

    원의 넓이를 구하는 새로운 방식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도형을 연구하던 수학자들은, 원 안에 정육각형을 꼭 맞게 넣었더니 정육각형의 둘레 길이가 접해있는 원 반지름의 6배가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두 도형의 둘레 사이에 존재하는 관계를 알아낸 것이다. 계산 결과, 원주율은 3.125였다. 이집트의 수학자였던 아메스는 종이 대용으로 쓰던 파피루스에 원의 지름과 정사각형 변의 길이를 각각 적었다. 두 도형의 넓이가 비슷하다면 원주율은 3.16이 나온다. 두 가지 결과 모두 지금의 원주율에 비해 정확도가 떨어지지만, 원의 둘레나 넓이를 통해 원주율을 비슷하게 구했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꽤 많은 천재 수학자를 배출해낸 인도 역시 3.1416이라는 정확한 원주율을 찾아냈으나, 아쉽게도 제대로 된 풀이 과정은 남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의 안티폰과 브라이슨은 마치 피자 자르듯이 원의 중심부터 바깥쪽으로 자르다 보니, 잘게 잘린 조각들을 모아 직사각형으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아냈다. 원의 넓이를 구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 것이다. 그리고 이 성과는 위대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아르키메데스가 원주율을 계산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그는 넓이 대신 둘레의 길이에 초점을 맞추었고, 원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만나는 정다각형을 각각 그려서 자르기 시작했다. 결국, 원의 둘레는 두 정다각형의 둘레 범위 안에 있기에 변을 늘려가면서 정밀도를 높여 나갔고, 무려 96개의 변을 갖는 정다각형에 도달해서야 비로소 3.1416이라는 원주율을 얻을 수 있었다. 인도의 수학자와 달리 계산 과정을 꼼꼼히 남겨둔 덕분에, 원주율은 ‘아르키메데스의 수’라고도 불린다.



    원주율을 소수점 이하 둘째자리까지(3.14)만 활용하는 계기를 만든 중국 수학자 유희(왼쪽). 유희의 수학책 ‘구장산술’. [바이두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원주율을 소수점 이하 둘째자리까지(3.14)만 활용하는 계기를 만든 중국 수학자 유희(왼쪽). 유희의 수학책 ‘구장산술’. [바이두백과사전, 위키피디아]

    이후 고대 중국의 수학자 유희는 ‘구장산술’이라는 수학책을 다시 집필하는 과정에서 현대의 무한등비급수와 비슷한 방법을 통해 정밀한 원주율의 범위를 구했고, 소수점 둘째 자리까지면 일상 속에서 활용하기에 충분하다는 것을 깨달았던 유희 덕분에 원주율, 파이(π)라는 수학계 대스타의 일상 속 계산 값은 이렇게 3.14로 깔끔하게 정해졌다.

    우주의 비밀까지 담아낸 원주율

    원주율인 파이(π)는 원에서 찾아낸 상수였기에 더욱 신비로웠다. 이제 누구나 원주율만 알고 있다면, 마치 마법처럼 원의 지름만으로 둘레를 알아낼 수 있었다. 지혜로운 우리의 선조들도 원주율을 사용했다.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석굴암 내부에는 본존불상을 둘러싼 돔 형태의 천장이 있는데, 돌로 쌓은 구조 사이에 동심원을 그리며 박힌 끼임돌의 간격은 놀라울 정도로 오차가 없이 일정하다. 원주율로 원의 둘레를 정확하게 계산할 수 없었다면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파마하러 미용실에 갈 때도, 내 머리카락의 길이에 꼭 맞는 헤어롤을 고르기 위해서는 원주율이 필요하다. 굳이 시도해볼 필요는 없겠지만,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도 원주율만 알면 둥근 통에 남은 커피의 양을 쉽게 계산할 수 있다. 161년간 누구도 증명해내지 못한 세계 7대 수학 난제 중의 하나인 리만 가설을 증명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도 소수의 곱으로 표현된 식이 하나 나오는데, 원주율을 구하는 식의 형태와 비슷했다. 그만큼 원주율은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인류와 함께해왔다. 

    이제 원주율은 흔하다. 이 녀석을 특별히 연구하는 수학자는 없다. 매년 3월 14일도 ‘성 발렌티누스’(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기원이 된, 서기 269년에 순교한 로마의 사제)한테 완전히 밀렸다. 누구도 파이(π) 데이를 기념일로 챙기지 않는다. 그래도 잊지 말자. 원주율 덕분에 인류는 굉장한 이득을 얻어왔고, 파생된 성과는 셀 수조차 없다. 임영웅 역시 지금의 인기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괜찮다. 그가 만들어낸 트로트계의 순풍은 앞으로 등장할 수많은 가수와 음악들로 인해 역사에 영원히 남을 테니까. 원주율처럼 말이다.

    궤도_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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