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연패 기록을 달성한 한화 이글스. [동아DB]
소설가 박민규 씨는 (1990년대 PC통신 '천리안'에서 유행하던 게시물 '거꾸로 보는 프로야구'를 표절해) 2003년 발표한 소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통해 프로야구 초창기 꼴찌팀의 대명사였던 삼미를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이 꼴찌팀이 18연패를 당한 1985년으로부터 35년이 지난 올해 한화 이글스가 같은 기록을 남겼습니다. 18연패 이후 두 경기에서 승리한 것도 1985년 삼미와 올해 한화가 닮은꼴입니다. 혹시 모르는 분이 있을까 싶어 밝히면, 프로야구 역사상 두 팀을 제외하고 그 어떤 팀도 18연패에 빠진 적이 없습니다.
삼미는 프로야구 출범 당시 6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국가대표 출신이 단 1명도 없는 팀이었습니다. 심지어 2004년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 나온 것처럼 일반인을 대상으로 선수단을 모집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최근 한화는 국가대표 1, 2번 타자가 차린 ‘밥상’을 국가대표 4번(급) 타자가 이어받는 라인업을 꾸렸습니다. 또 현역 프로야구 선수 동문이 제일 많은(41명) 북일고 졸업생을 대상으로 1차 지명권을 행사할 수 있는 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도 한화는 못해도 너무 못하고 ‘암흑기’가 길어도 너무 깁니다. 도대체 한화는 왜 이렇게 ‘용의주도하고 주도면밀하게’ 지고 또 져야 했던 걸까요?
피타고라스는 야구도 잘 안다?
한화 이전 최초로 18연패 기록을 달성한 삼미 슈퍼스타즈. [동아DB]
세이버메트릭스(야구통계학) 이론이 발전하면서 지수에 어떤 숫자를 쓰는 게 좋은지 많은 논의가 있었습니다. ‘다이 하드’ 세이버메트릭스 사이트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BP)에서는 로그함수를 활용해 지수를 계산합니다. 그 덕에 계산 과정은 복잡하지만 팀 전력을 평가할 때 가장 정확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10년대 한화가 유독 실제 승률과 피타고라스 승률의 차이가 컸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요?
‘야왕’의 덤
2011년 한화가 남긴 제일 재미있는 기록은 ‘끝내기’였습니다. 이해 한화는 안방 경기에서 31승을 거뒀는데 그중 11승(35.5%)이 끝내기 승리였습니다. 반면, 끝내기 패배는 한 번도 없었습니다. 끝내기 승부에서 11승 무패를 기록한 거죠.물론 끝내기로 지는 것보다 끝내기로 이기는 편이 100만 배 좋습니다. 그런데 끝내기 승리를 거두려면 안방 팀이 9회 이후에도 공격을 해야 합니다. 안방 팀이 9회 말에도 공격을 한다는 건 절대 좋은 뜻이 아닙니다. 상대 팀에 앞서지 못한 상태로 경기 막바지에 이르렀다는 뜻이니까요.
그러면 끝내기로 거둔 11승을 ‘덤’이라고 생각해야 팀 전력을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일단 플루크(fluke)라는 낱말을 떠올려야 했던 거죠. 하지만 한화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전년도 8위(최하위)에서 6위로 순위가 올랐거든요. 김태균(38)이 일본에서 돌아오고 박찬호(47)마저 팀에 합류하자 새로 바뀐 구장 사장과 단장은 2012 시즌 우승을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계약 마지막 해였던 한대화 감독은 “4월에 모든 걸 건다”고 천명했지만….
한화는 결국 5승 12패(승률 0.294)로 4월을 마쳤습니다. 이후에도 팀이 39승 2무 64패(승률 0.379)에 그치자 한화 프런트는 결국 팬들이 ‘야왕(野王)’이라고 부르던 한대화 전 감독을 ‘야인’으로 만들었습니다. 야구계에 ‘대한민국에서 야구를 제일 잘 아는 사람은 한화 단장’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널리 퍼진 다음이었습니다.
‘야신’이 맡은 가장 약한 팀
2010~2012 시즌 한화 감독을 맡은 한대화 전 감독. [스포츠동아 박화용 기자]
2014년 한화는 김 전 감독이 맡았던 팀 가운데 가장 전력이 떨어졌습니다. 승률만 놓고 보면 이해 한화(0.389)가 1988년 태평양 돌핀스(0.319)나 1995년 쌍방울 레이더스(0.319)보다 높았습니다. 하지만 피타고라스 승률에서는 한화(0.322)가 당시 태평양(0.347)이나 쌍방울(0.368)보다 낮았습니다.
김 전 감독은 한화를 맡기 전까지 6개 팀 감독을 맡아 이듬해 평균 9.4승을 추가했습니다. 2014년 한화는 49승 2무 77패를 기록했으니까 9승을 더 거둔다고 하면 58승 2무 68패로 승률 0.460이 됩니다. 실제 2015년 한화는 68승 76패(0.472)를 기록했습니다. 비록 6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김 전 감독이 자기 능력은 충분히 발휘한 셈입니다.
문제는 이듬해(2016) 또 ‘우승 바람’이 불었다는 점입니다. 이번에는 프런트뿐 아니라 감독도 이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불과 두 시즌 전 프로야구 역사상 제일 나쁜 평균자책점을 남긴 팀이었다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시즌 개막 전까지 외국인 투수를 찾지 못해 ‘땜빵’이라는 사실을 공개한 상태로 알렉스 마에스트리(35)와 계약했는데도 그랬습니다.
2017년에도 우승 ‘구호’는 달라지지 않았고 그 결과 ‘야신(野神)’이라는 별명은 존경보다 조롱에 가까운 뉘앙스가 되고 말았습니다.
행운은 제자리를 찾는다
6월 7일 자진사퇴한 한용덕 한화 이글스 전 감독.
1점 차 승부에서 강한 게 나쁘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그런데 진짜 강팀은 상대를 큰 점수 차이로 이깁니다. 1점 차 승부에서 시즌 전체 승률(0.535)보다 강했다는 건 나머지 점수 차 경기에서는 약했다는 뜻이 됩니다. 1점 차 승부 결과가 좋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는 ‘행운’인 셈입니다.
행운은 언젠가 제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입니다. 이해 한화 전후반기 성적을 나눠 봐도 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한화는 전반기에 1점 차 승부에서 14승 6패(승률 0.700)를 기록했지만 후반기에는 6승 7패(승률 0.462)로 기록이 나빠졌습니다. 그러면서 전체 승률도 0.580(51승 38패)에서 0.464(26승 30패)로 나빠졌습니다.
행운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면 팀 전력을 다시 끌어올리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용덕 당시 한화 감독은 송광민(37), 이용규(35) 같은 베테랑과 갈등을 일으켰고 김 전 감독 시절 자유계약선수(FA)시장에서 영입한 권혁(37), 배영수(39), 정근우(38)까지 여러 이유로 팀에서 내보내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가 지난해 9위, 올해 18연패로 나타난 셈입니다.
요컨대 한화는 ‘겉보기 등급’(실제 승률)에 눈이 멀어 ‘절대 등급’(피타고라스 승률)이 어느 정도인지 제대로 따지지 못했습니다. 그 탓에 항상 팀 전력보다 너무 높은 곳을 목표로 잡았고, 그 목표를 향해 무리하다 보니 결국 탈이 나고 말았습니다. 이 똑같은 과정을 10년 동안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화나 이글스’는 결국 ‘매일져리그’ 팀이 되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