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지지자들에 연설하고 있다(왼쪽). 미국 뉴욕 렉싱턴 애비뉴에 있는 블룸버그타워. [flickrs, vornado rt]
미국 시청률 조사회사인 닐슨은 당시 중계방송을 본 시청자 수는 1억200만 명으로 역대 슈퍼볼 중 10위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미국 전체 인구가 3억2950만 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3명 중 한 명꼴로 시청한 셈이다. 이처럼 높은 시청률 때문에 슈퍼볼의 TV 광고 단가는 매우 비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선에서 재선을 노리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30초짜리 광고 2개를,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나선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은 60초짜리 광고 1개를 각각 1100만 달러(약 132억 원)에 구입했다. 초당 2억 원이 넘는 금액이다.
1월에만 2654억 원 지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이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블룸버그 페이스북]
부동산 재벌인 트럼프 대통령의 자산은 31억 달러(약 3조7549억 달러)로 세계 부자 순위275위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지난해 11월 뒤늦게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 뛰어들면서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저지하기 위해 돈을 얼마든지 쓰겠다”며 “대선후보로 선출되지 않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을 이기기 위해서라면 민주당 후보 지원에 10억 달러 이상 쓸 수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선거 자금을 일절 모금하지 않고 오로지 자비로만 선거운동을 벌이고 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대규모 자금을 선거운동에 투입하면서 미국 전역의 TV 정치 광고 단가가 최근 두 달 새 20%나 폭등했다. 미국 선거의 특징은 선거운동 방법에 대한 규제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선거운동에서 표현의 자유를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때문이다.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표현의 자유는 어떤 가치에도 우선한다. 후보들이 가장 선호하는 선거운동 방법은 TV에 정치 광고를 내보내는 것이다. 각 후보는 TV 광고를 통해 자신의 정책 등을 홍보하는 것뿐 아니라 상대 후보를 정책적으로 비난할 수 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그동안 미국 전체는 물론 각 지역 TV 방송사의 황금시간대 광고를 싹쓸이했다. 이 때문에 텍사스주에선 TV 광고 단가가 무려 45%나 뛰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이 TV 광고에 엄청난 돈을 쏟아붓자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경선주자들도 앞다퉈 TV 광고에 선거 자금을 지출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민주당 경선주자들이 1월 기준으로 지금까지 사용한 광고 총액은 5억4000만 달러(약 6301억 원)로, 이는 2016년 대선에서 같은 기간 집계된 광고 총액의 10배에 해당한다. 이런 현상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은 ‘블룸버그 전 시장의 물량 공세가 2020년 대선의 틀을 바꿔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블룸버그 전 시장은 또 매머드급 선거운동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캠프 본부는 뉴욕 맨해튼에서 가장 비싼 타임스스퀘어에 있으며, 전국적으로 125개 사무소가 있다. 캠프에서 일하는 직원은 1000여 명으로, 이들은 최대 1만2000달러(약 1400만 원)의 월급을 받고 있다. 그는 최근 온라인 선거 유세를 위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부대’를 만들고 500명에 달하는 인력을 모집했다. 이들은 SNS에서 블룸버그 전 시장에 관한 홍보 글을 올리거나 가족, 지인에게 문자메시지 등을 보내는 방법으로 선거운동을 한다. 근무시간은 일주일에 20~30시간으로, 평균 월급은 2500달러(약 297만 원)다. 그는 이와 함께 자선활동을 바탕으로 구축한 정치 네트워크라 볼 수 있는 블룸버그재단을 통해 간접적인 선거운동까지 하고 있다. 자산이 90억 달러(약 10조5000억 원)인 블룸버그재단은 보조금과 기술 지원, 정치 연수 프로그램 등을 통해 196개 도시에 자금을 투입해 신진 정치인을 키워왔다. 이 재단의 후원을 받은 이들이 현재 선거운동 캠프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다.
슈퍼 화요일 경선에 화력 집중
미국 민주당의 대선 경선주자들이 2월 21일 TV 토론회를 하고 있다(왼쪽).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NBC, flickrs]
역대 후보나 경선주자들이 선거운동 자금에 신경 쓸 수밖에 없는 이유는 대선이 ‘머니 파워’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국 대선은 자금 모금 능력과 당선이 정비례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미국에서 정치 자금은 ‘하드 머니(hard money)’와 ‘소프트 머니(soft money)’로 크게 구분된다. 하드 머니는 개인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인에게 내는 200달러(약 24만2000원) 미만의 후원금을 말한다. 소프트 머니는 개인과 기업 및 이익단체들이 ‘정치행동위원회(Political Action Committee·PAC)’를 만들어 후보자나 정당에 기부하는 돈이다. PAC의 기부 액수나 방법 등은 엄격하게 규제된다. PAC 중 모금액에 제한이 없는 ‘특별정치활동위원회’(Super PAC)도 있다. 미 연방 대법원은 2010년 슈퍼 팩에 대한 개인과 기업, 노조 등의 선거자금 기부 총액 제한을 폐지했다. 이에 따라 자금 출처를 공개할 필요도 없기 때문에 슈퍼 부자들은 물론 기업과 노조들이 사실상 특정 후보의 외곽 지원 세력으로 활동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슈퍼 팩은 특정 후보에게 직접 선거자금을 전달할 수는 없고 대신 TV 광고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지지해야만 한다. 석유업계 재벌이나 헤지펀드업계 거물 등과 대기업, 월스트리트, 전미총기협회 같은 막강한 이익단체들은 슈퍼 팩을 통해 특정 후보를 위한 ‘총알’을 쏟아붓는다.
슈퍼 팩 지원 없는 후보
2007년 당시 부동산 재벌이던 트럼프가 마이클 블룸버그 뉴욕시장과 만나고 있다. [polari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