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운데)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4주기였던 2015년 12월 17일 0시 평양 금수산태양궁전을 찾아 허리를 숙여 참배하고 있다. 이곳엔 김일성 주석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시신이 안치돼 있다. 사진 출처·노동신문
이러한 대내외적 정상화를 성공적으로 과시하고자 평양은 당대회를 개최하기에 앞서 주변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을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대내적으로는 당대회를 축제로 만드는 차원에서 주민들의 경제 동원과 각 분야 증산을 독려할 것임을 쉽게 추론할 수 있다. 당대회 전에 장거리로켓 발사나 4차 핵실험 같은 이벤트를 벌일 가능성도 예상해볼 수 있다. 대외적으로는 김정은의 방중이 성사될 가능성이 있다. 당대회에서 경제와 안보 분야 성과를 극대화할 카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2016년 4월 초 개최될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우선 헌법 개정이나 국가기구 조직을 개편할 개연성이 있다는 점이다.
주석, 대통령, 총통
공식적으로 북한은 당 국가 체제를 채택한 나라다. 최고지도자는 당 최고직책과 함께 이에 합당한 국가 차원의 직책 모자가 필요하다. 김일성은 당에서는 총비서였지만 국가적으로는 주석이었다. 주석이라는 모자를 쓰고 국가수반으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대표한 것이다. 김정일은 김일성 사후 3년이 지난 1997년에서야 당 총비서 자리에 올랐고, 98년에는 헌법 전문에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명명했다. ‘영원한 주석’이 따로 있으니 김정일 본인은 이 직함을 사용할 수 없게 됐다. 주석제와 중앙인민위원회, 정무원을 폐지하는 대신, 사실상 국가 최고권력자인 국방위원장 자리에 올랐다. 권한과 소임이 강화된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군을 앞세워 북한을 끌고 가는 비정상적인 국정운영을 지속한 것이다.김정은의 경우 김정일 생전에 이미 헌법(2009)과 당 규약(2010)을 정비해 이 같은 비정상적 운영 상태를 정상적인 당 국가 체제로 되돌리기 위한 조치를 취해왔다. 그 덕에 김정은으로의 권력 승계는 2011년 12월 17일 김정일이 사망하자마자 이미 준비된 개정 헌법과 당 규약에 따라 제도적으로 매우 신속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2011년 12월 30일 김정은은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직에 올랐고, 2012년 4월에는 김정일을 ‘영원한 총비서’이자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받들었다. 그 대신 김정은 본인이 택한 직함은 노동당 제1비서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었다. 이로써 김정은은 북한의 당·정·군 모두에서 최고 위치에 올라 김정일이 사망한 지 4개월 만에 권력 승계를 완료할 수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이 오로지 당을 통해서만 정권 안정과 체제 유지를 지속하기에는 한계에 직면할 개연성이 높다. 특히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강화된 당적 지도하에 있는 국가의 기능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이에 상응하는 국가 차원의 최고지도자 직책이 필요해진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생존하려면 당 조직이 아닌 국가 조직을 통해 국가 대 국가의 관계를 형성하는 작업이 필연적이다. 예컨대 경제발전을 위해 해외자본을 유치하는 경우를 상상해보자. 일각에서 설명하는 대로 최근 김정은이 해외투자 유치를 지시하면서 “100만 달러 이상 투자자는 직접 만나 투자 보호 약속을 하겠다”고 말한 게 사실이라면, 김정은에게는 더더욱 당이 아닌 국가를 대표하는 모자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재 김정은에게는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기묘한 타이틀뿐이다. 국가 조직을 대표하는 최고지도자의 명칭으로 국제적 인식이 확보된 명칭, 예컨대 영어의 ‘President’에 해당하는 사람은 북한에 존재하지 않는다. 헌법상으로도 대외적으로 북한을 대표하는 자리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다. 실질과 형식의 불일치다.
여기까지 상황을 정리해놓고 나면 2016년 예상해볼 수 있는 북한의 변화 가운데 하나는 김정은 본인의 국가 직책상 호칭 변경이다. 어떤 직함을 사용할지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최소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라는 직함이 갖는 한계는 명확하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정상적인 국가’로 나서기를 희망하는 최근 북한의 행동 패턴을 감안하면 ‘President’로 번역될 수 있는 새로운 직함을 만들 개연성이 있다.
남한과의 차별화, 국제사회에는 ‘정상 국가’
북한 최고인민회의 제13기 3차 회의 모습을 담은 ‘노동신문’ 2015년 4월 10일자 1면 사진. 사진 출처·노동신문
이렇게 보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대안은 총통뿐이다. 총통이라는 명칭에도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당 국가 체제와 그나마 가장 부합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경제 문제는 내각 총리 책임하에 진행하고 있듯, 북한은 과거부터 경제 문제에 있어서 만큼은 최고지도자에게 책임을 지우지 않으려는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이러한 특수성에 고유의 당·정 관계까지 감안한다면 대외적으로 ‘President’로 번역할 수 있는 명칭으로는 다른 선택이 마땅치 않아 보인다.
그럼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명칭과 국방위원회는 어떻게 될까. 이 부분 역시 평양으로서는 고민스럽지 않을 수 없다.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만든 뒤 주석제를 폐지한 것은 사실이지만, 김정일을 ‘영원한 국방위원장’으로 내세웠다고 해서 국방위원회를 폐지하리라 단정하기는 일러 보인다. 이 기구가 일면 우리의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기능적으로 유사하다는 점에서 어떤 형태로든 존속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기억해야 할 부분은 이러한 변화가 2016년 5월 7차 당대회가 아니라 그보다 앞선 4월 최고인민회의를 통해서만 이뤄질 수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조치는 당 차원의 변화가 아니라 국가 조직 체계의 변화인 만큼 입법부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 소관이기 때문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 상상의 나래를 펼치자면, 이 자리에서 북한의 영문 공식국호를 DPRK(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에서 DPRC(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Corea)로 변경하는 일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역시 남한과의 차별화라는 점에서 북한이 오랜 기간 고민해온 사안이기 때문이다.
날이 갈수록 격렬해지는 미·중 간 대립 속에서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국제관계가 빠르게 복잡해지고 있다. 남북이 더욱 가까워져야 상황의 주도권을 쥘 수 있다는 견해가 적잖지만, 현실은 같은 경도선에서 시간마저 30분을 달리 살아가는 두 나라다. 만에 하나 철자마저 다른 2개의 코리아와 2명의 프레지던트가 마주 선다면 우리로서는 반가워할 수 없는 이유다. 더 깊은 단절의 시기가 올지 모른다는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