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50 수출, 죽 쒀서 록히드 주나

박근혜 대통령은 2015년 12월 17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에서 열린 미국 수출형 공군 고등훈련기(T-X) 공개행사에 참석해 깊은 관심을 보였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미국 공군의 훈련기 교체 사업에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국내 최초 초음속 고등훈련기 T-50으로 출사표를 던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몸소 행사장을 찾아 축사까지 낭독하는 등 깊은 관심을 보였다. 최대 100조 원에 달하는 훈련기 시장이 이번 기회로 열릴 수 있다는 희망 섞인 관측까지 나온다. 그러나 아직 미국에 대한 기술 의존이 심한 편이라 미국 수출이 성사되더라도 그 파급 효과를 국내 산업이 온전히 누리기는 어려워 보인다.
KAI와 미국 록히드마틴은 2015년 12월 17일 KAI가 위치한 경남 사천에서 공군 고등훈련기 T-50의 미국 수출형 시제기 공개행사를 가졌다. 이날 행사에는 박 대통령이 직접 참석해 축사를 낭독했다. 사실 미 공군의 훈련기 교체(T-X) 사업은 아직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축사를 낭독했다는 것은 방위산업 수출에 대한 박 대통령의 기대를 읽을 수 있다.
박 대통령은 축사에서 T-50 덕택에 “우리의 자주국방 능력이 한층 높아졌고, 지금까지 4개국에 56대를 수출해 국가 경제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운을 뗀 후 “이 훈련기의 미국 수출이 성공한다면 우리 항공산업과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T-X 사업의 수출물량은 350대, 10조 원 규모로 4만3000명 수준의 일자리 창출과 7조3000억 원의 산업 파급 효과를 낳을 것으로 분석된다고 박 대통령은 덧붙였다. 미 공군 외에도 이후 미 해군의 훈련기 교체 수요가 발생할 경우와 미국의 선택으로 우방국들이 연이어 T-50을 훈련기로 채택하면 최대 2000대, 사업비 100조 원 규모의 시장이 열린다는 것이 KAI 측 전망이다.
우리나라 공군도 기체 노후화로 많은 곤란을 겪고 있지만 미국 공군도 훈련기 노후화 문제가 심각하다. 미 공군은 현재까지 고등훈련용으로 T-38을 사용하고 있다. 세계 최초 초음속 훈련기였던 노스롭의 T-38은 1961년 처음 도입된 기종으로 그만큼 노후됐다. 현재 미 공군이 운용하는 500여 대의 T-38은 기체 평균 연령이 50년에 육박한 상태. T-X 사업은 이러한 노후 훈련기를 교체하는 사업이다.
미 공군은 2011년부터 공개적으로 T-X 사업을 추진했지만 연방정부의 재정 감축으로 여태껏 제대로 시동을 걸지 못했다. 미 공군은 2015년 3월에서야 신규 기체에 대한 요구사항을 발표할 수 있었다. 사업 기종은 2017년 말까지 선정할 예정이다.
이번에 T-X 사업에 선정되는 기종은 F-22와 F-35 조종사 양성에 사용될 것이다. 군사항공의 선도국인 미국의 고등훈련기로 선정되면 F-35를 구매하는 다른 국가들도 자국 훈련기로 T-X 사업 기종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최대 2000대, 사업비 100조 원 규모’를 말하는 KAI의 전망이 매우 희망적인 수치이기는 하나 결코 허황된 것은 아니다. 당연히 경쟁자들도 정신 바짝 차리고 달려들고 있다.

최대 100조 원 규모 훈련기 시장 열린다

보잉-사브 컨소시엄과 노스롭그루먼-BAE 컨소시엄은 가장 유력한 경쟁자로 꼽힌다. 보잉-사브는 미 공군에는 기체 형상을 공개했으나 일반 및 언론에는 기능 등의 정보에 대해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노스롭그루먼은 현재 미 공군이 사용하는 T-38을 개발한 업체이기도 한데, 처음에는 BAE의 호커(Hawker) 훈련기를 개조한 형상을 제시했으나 2015년 초 계획을 전면 수정해 완전히 새로운 형상의 기체를 준비했다. 기존 호커 훈련기 형상으로는 성능이 너무 뒤떨어지는 것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노스롭그루먼은 2015년 12월 12일 일부 언론인에게만 새로운 형상을 공개했으나 사진 촬영을 금했기 때문에 알려진 것은 별로 없다. 그 밖에도 이탈리아 알레니아 아에르마키가 자사의 기존 M-346 기체를 기반으로 한 T-100을 준비하고 있으나 초기 미국 협력사였던 제너럴 다이내믹스가 2015년 3월 사업 참여를 포기해 의미 있는 경쟁을 보여줄 개연성은 낮다.
분명 T-50에는 강점이 있다. 미 공군이 요구하는 성능을 충족하는 데다 경쟁자 가운데 유일하게 실제로 완제품이 존재하는 기종이다. “T-X 사업에서 경쟁력 자체로만 보면 KAI와 록히드마틴은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 (T-50은) 이미 검증된 기체로 안전성과 성능이 입증됐다. 다른 경쟁업체들은 신규 디자인으로 개성을 내세우겠지만 훈련기에서 신규 디자인의 장점을 어필하기란 쉽지 않다.” 김민석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의 의견이다.
T-50 개발에 기술지원을 한 록히드마틴이 미 공군의 주력기종인 F-22와 F-35의 제조사라는 것 또한 강점이다. 또한 T-50은 인도네시아, 필리핀, 태국에 수출 실적도 보유하고 있다. 한국도 과거 T-38 30대를 미국으로부터 임대해 훈련용으로 사용하다 2009년 T-50이 도입되면서 반납했기 때문에 교체 운용과 유지, 보수 경험 측면에서도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KAI의 T-X 사업 전망이 마냥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현재 미 공군은 T-X 사업에서 1차로 350대 물량을 교체할 계획이다. 그러나 여전히 재정 감축 압박을 받고 있는 미국 정부가 사업 규모를 축소할 가능성도 있다. 게다가 T-X 사업은 ‘전투기’를 위한 훈련기를 교체하는 사업인 데 반해, 전투기 자체는 미 공군 전력의 핵심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민석 연구위원은 “미 공군 전력의 핵심이 전투기에서 드론(무인기)과 폭격기 중심으로 바뀌면서 전투기 중심으로 만들어진 훈련기의 수요가 수백여 대나 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미국 공군이 기존에 사용하던 훈련기 T-38 탈론의 모습. 40년 넘게 사용하면서 기체 노후화 문제가 대두됐다. 본래 2017년까지 모두 교체할 계획이었으나 미국 연방정부의 재정난으로 2023년으로 미뤄졌다. 사진 제공 · US Air Force

美 사업 규모 축소 가능성

게다가 미 정부는 자국 도입 무기는 자국 생산을 요구하고 있어 향후 T-50이 선정되더라도 박 대통령이 언급한 정도의 산업 파급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록히드마틴은 이미 2010년쯤부터 사업을 수주하면 한국이 아닌 미국에 T-50 생산 공장을 새로 지을 방안을 갖고 있었다. 이 부분에 대해 KAI 측도 “(미국 정부의 요구사항이기 때문에) 최종 조립은 미국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인정했다. 록히드마틴 측은 ‘주간동아’의 질의에 “아직 구체적인 사업 계획이 수립되지 않았다”며 답을 피했다.
최종 조립은 미국에서 하더라도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기체인 만큼 부품도 우리나라에서 생산할 것이니 어느 정도 산업 파급 효과가 있지 않을까. 그러나 산업연구원이 2007년 말 간행한 보고서 ‘한미 간 T-50 항공기 공동개발을 위한 전략적 제휴 분석과 정책과제’를 보면 전망은 비관적이다. ‘T-50 항공기는 체계종합 위주의 개발로 부품 국산화율이 55% 내외에 불과하며(KAI 측은 부품 국산화율이 60~65%라고 밝혔다), 상당수 부품이 해외에서 직수입돼 장착됐다.’

박근혜 대통령(왼쪽)이 2015년 12월 17일 경남 사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본사에서 열린 미국 수출형 훈련기 공개행사를 마친 뒤 제작 중인 훈련기를 살펴보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산업연구원의 지적은 이어진다. ‘이 결과 가격 경쟁력 및 AS(애프터서비스) 등에서 상당한 취약점을 안고 있으며 해외 수출에서도 상당한 장애 요인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는 T-50 개발에 필요했던 핵심 기술 대부분을 미국(록히드마틴) 측 협력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T-50 개발로 확보된 기술의 소유권은 온전히 대한민국과 KAI에게 있는 게 아니다. 미국의 제약을 받는다. 일례로, 미 국무부의 서면 승인 없이는 기술자료와 노하우를 외국 소유 항공기나 수출 목적의 항공기 성능 개량에 사용할 수 없다.
주간동아의 공식질의에도 KAI 측은 별다른 반론을 내놓지 않았다.
T-50 개발로 “항공기술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가 항공선진국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됐다”는 박 대통령의 축사는 옳다. 그러나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부터 한국 방위산업에 면면히 내려온 ‘자주국방’의 기치를 잣대로 두고 볼 때 T-50 개발은 한편으로는 쾌거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술적으로 미국의 종속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는 한계를 보여준 ‘절반의 쾌거’라 할 수 있다.
박 대통령은 “항공산업은 군용기술과 민간기술의 상호 전환이 용이하고, 이종산업 간 융합도 활발하기 때문에 커다란 부가가치 창출이 기대되는 창조경제의 핵심 분야”라고 T-50의 쾌거를 한껏 치켜세웠지만, 항공산업이 진정으로 커다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기술 축적이 필요하다. 미국의 주요 기술이전 거부로 한동안 엄청난 잡음을 몰고 다녔던 한국형전투기(KFX) 사업을 떠올려보라.
박 대통령이 진정으로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창조경제의 핵심 분야가 되길 바란다면 차기전투기(FX) 사업의 이해할 수 없는 기종 선정 등으로 기술협력 부분이 엉망이 돼버린 KFX 사업을 적극적으로 정리해야 한다. 한국 항공산업을 이대로 방치하면 ‘죽 쒀서 록히드마틴 주는’ 창조경제를 면하기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