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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테의 지옥에 神話가 있었네”

단테의 ‘신곡’, 만주족 신화, 신화의 정치학…12월 1일 신화의 향연 펼쳐져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8-12-07 17: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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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도균]

    [김도균]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은 깔때기 모양으로, 지구 내부에 북반구와 남반구에 걸쳐 자리하죠. 위에서 아래로 점점 좁아지는 9개의 원(circle, terrace)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당시 기독교적 시각으로, 지옥은 아래로 내려갈수록 더 중한 범죄를 저지른 혼령들이 벌을 받고 있죠. ‘신곡’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아 난해하지만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을 중심으로 읽는다면 비교적 쉽게 개관할 수 있습니다.” 

    12월 1일 서울 역삼동 KB손해보험본사 지하 2층 아트홀에 이른 아침부터 삼삼오오 방청객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서로 아는 사이인 듯 악수하거나 눈인사를 나누고는 그리스 신화를 주제로 이야기꽃을 피웠다. 이날은 ㈔세계신화연구소가 주최한 ‘신화와 문학’ 심포지엄이 열렸다. 매년 12월 첫째 주에 열리는데, 올해로 3회째다. 심포지엄은 딱딱한 연구 주제 발표 방식이 아니라, 대형 스크린을 통해 발표문과 그림을 보여주며 설명하는 대중 강연 형식으로 진행됐다. 

    ‘그리스 신화로 읽는 단테의 신곡-지옥 구조를 중심으로’가 발표 주제였던 김원익 소장은 단테의 생애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1300년 피렌체에서 프리오레(Priore·오늘날 총리)에 오른 단테(1265~1321)는 교황파인 겔프(Guelf)당 지도자로서 황제파인 기벨린(Ghibellin)당과 맞섰습니다. 겔프당은 다시 교황을 배제하려는 흑당과 백당으로 나뉘게 되죠. 그러나 단테는 흑당의 책모에 휘말려 황제 음모죄 등으로 결국 사형선고를 받고 사실상 영구 추방돼 죽을 때까지 이탈리아 전역을 떠돌며 망명생활을 했습니다.”

    케르베로스와 9개의 지옥

    ㈔세계신화연구소가 주최한 ‘신화와 문학’ 심포지엄에서 강연하는 김원익 소장. [김도균]

    ㈔세계신화연구소가 주최한 ‘신화와 문학’ 심포지엄에서 강연하는 김원익 소장. [김도균]

    이어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일리아스’의 저자 호메로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 ‘지옥 안내자’ 베르길리우스 등 예수 이전에 태어나 세례를 받지 못한 혼령들이 모인 1원을 시작으로, 지상에서 저질렀던 악행을 판별해 지옥으로 떨어뜨리는 미노스(Minos) 왕이 있는 2원(사음지옥), 머리 셋 달린 괴물 개 케르베로스(Kerberos)가 탐식의 죄를 지은 자들에게 고통을 주는 3원(탐식지옥), 탐욕과 낭비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 벌을 받는 4원(탐욕·낭비지옥), ‘분노의 화신’ 플레기아스(Phlegyas)가 보초를 서는 5원(분노지옥) 등 단테의 지옥에 대해 설명을 이어갔다. 김 소장은 이어 이단지옥(6원), 폭력지옥(7원), 사기지옥(8원)을 설명한 뒤 “제일 밑바닥 깔때기 끝에는 머리 셋 달린 ‘타락천사’ 루키페르(루시퍼)가 꽁꽁 언 코키토스(Cocytos)강에 하체가 얼어붙은 채 유다, 브루투스, 카시우스를 각각 입에 문 채 씹고 있다. 단테는 루키페르를 머리 셋 달린 괴물로 묘사했다”며 지옥을 그린 삽화를 스크린에 띄웠다. 방청객 100여 명은 지옥 모형과 그리스 로마 신화의 그림들을 보며 단테의 ‘신곡’과 신화의 세계에 빠져들었다. 



    김 소장은 “단테의 ‘신곡’에는 서양문화의 양대 축인 헬레니즘(Hellenism·그리스 로마 사상)과 헤브라이즘(Hebraism·그리스도교 사상)이 절묘하게 결합돼 있다”며 “르네상스 이전 사람인 단테가 수많은 신화 인물을 활용한 데는 당시 지식인들에게 헬레니즘이 뿌리 깊게 각인돼 있어 이를 적극 활용한 측면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 소장에 앞서 첫 번째 발표자로 나선 김영숙 미술 에세이스트는 고대 그리스 미술의 특징을 △도자기 표면에 추상적 문양이 주를 이룬 기하학적 시기(Geometric period·기원전 8~7세기) △남성 누드상인 쿠로스(Kuros)와 여성 착의상인 코레(Kore) 등 인체 조각상이 등장한 아르카익 시기(Archaic period·기원전 7~5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제국 건설로 젊고 생명력 넘치는 남성 누드상과 위엄·절제의 영웅적인 모습의 조각상이 등장한 고전 시기(Classic period·기원전 5~4세기) △민주주의의 그리스 폴리스와 전제주의적 오리엔트 요소가 섞인 헬레니즘 시기(Hellenistic period·기원전 4~1세기)로 나눠 설명한 뒤 “고대 그리스 조각상은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표본이 돼 인간을 선동했지만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으로 남았다. 그 꿈은 인간 이성에 대한 절대적 신념, 즉 보편적 진선미(眞善美)를 추구하는 서양인의 의지에 영원히 각인됐다”고 마무리했다.

    영원히 이룰 수 없는 꿈

    축사를 하는 연극인 정동환 씨. [김도균]

    축사를 하는 연극인 정동환 씨. [김도균]

    이날 오후 발표자로 나선 김선자 연세대 교수는 ‘빛과 어둠의 신들의 전쟁-만주족 창세서사시 천궁대전(天宮大戰)’을, 류재국 중앙대 교수는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곡 ‘개구리’로 본 신화의 정치학’을, 곽민석 연세대 교수는 ‘프랑스 현대시 오르페우스와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권석우 서울시립대 교수는 ‘로고스와 뮈토스에 대한 단상’을 주제로 각각 발표를 이어갔다. 

    방청객으로 참여한 김윤태 우석대 교수는 “엄중한 분위기에서 발표하는 ‘그들만의 심포지엄’이 아니라, 신화를 좋아하는 발표자와 청중이 모여 신화를 논하는 ‘신화의 향연(饗宴)’ 느낌을 받았다”며 “일반인이 관심 있어 하는 주제로 ‘문화 향연’이 많이 열렸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모와 함께 참여한 배성재 군(서울 석계초 5)은 “책에서 보던 그리스 로마 신화가 다양한 주제로 연구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며 “앞으로 체계적으로 신화를 공부해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한편 축사에 나선 연극인 정동환 씨는 “단테의 ‘신곡’과 ‘파우스트’ ‘오이디푸스’ 등 수많은 고전작품에 출연했지만 서양 고전의 뿌리인 그리스 로마 신화를 잘 몰라 배역을 소화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며 “김 소장을 만나 신화에 대해 공부하고, 그리스 현지를 탐방하면서 서양문화를 이해하게 돼 지금도 다양한 서양 고전작품에 출연하고 있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이번 심포지엄은 KB손해보험과 도서출판 메티스가 후원했으며, 김요한 영남대 교수의 사회로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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