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리 슈틸리케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뉴시스
울리 슈틸리케(61·독일)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1월 17일 라오스 비엔티안에서 열린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G조 6차전 라오스와의 원정경기를 5-0 승리로 장식하며 2015년 A매치 일정을 모두 마무리했다.
올해 A매치 20경기에서 슈틸리케호가 거둔 성적은 16승3무1패. 1월 2015 호주아시안컵에선 27년 만에 준우승을 차지했고, 8월 중국 우한에서 펼쳐진 2015 동아시안컵에선 7년 만에 우승컵을 탈환하는 등 국제대회에서도 빼어난 성적을 거뒀다. 6월부터 시작된 월드컵 2차 예선에서도 6경기 전승(23득점·0실점)을 거두는 등 승승장구하고 있다.
20경기에서 실점은 4골뿐
2014 브라질월드컵 이후 위기에 빠진 한국 축구의 ‘구원투수’로 선택된 슈틸리케 감독은 지난해 10월 부임 이후 단기간에 분위기를 확 바꿔놓았다. 16승3무1패, 승률 80%는 1980년 이후 최고 기록이고, 한 해 16승은 1975년(18승1무4패)과 78년(18승2무)에 이어 최다승 2위다. 연간 17경기 무실점은 한국 축구사에 없었던 신기록이다.또 20경기에서 4골만 내줬다. 경기당 0.2실점으로 국제축구연맹(FIFA) 209개 회원국 가운데 올해 경기당 최소실점 1위에 올랐다. 고질적 병폐 가운데 하나로 꼽혔던 수비 불안을 말끔히 해소한 덕분이다. 슈틸리케 감독은 “공격을 잘하는 팀은 이길 수 있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할 수 있다”며 탄탄한 수비를 강조했고, 이는 올 한 해 동안 슈틸리케 감독이 일군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취임 이후 이동국과 이근호(이상 전북), 김신욱(울산), 박주영(서울), 염기훈(수원) 등 한국 축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에게 적어도 한 차례 이상씩 기회를 줬다. 그러나 자기 스타일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다시 부르지 않았다. 전임 홍명보 감독이 브라질월드컵 멤버를 구성하면서 고집스러울 정도로 몇몇 선수에게 의존하던 모습과 달리, 그는 여러 선수에게 골고루 기회를 주면서 검증의 시간을 가졌다. “모든 이에게 대표팀 문은 열려 있다. 그러나 나가는 문도 항상 열려 있다”는 말 속에 슈틸리케 감독이 선수들에게 바라는 모습이 함축적으로 담겨 있다. 명확한 철학과 선수단 운용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의 자발적인 투쟁 의지를 이끌어냈다.
슈틸리케 감독은 K리그 클래식(1부 리그)은 물론 챌린지(2부 리그)와 아마추어 현장까지 직접 누비며 새 얼굴 발굴에 힘썼다. 어느 때보다 K리그 선수에게 많은 기회를 줬고, 그라운드에서 그들의 잠재력을 일깨웠다. 이는 대표팀의 체질 개선과 함께 포지션별 경쟁구도로 이어졌고, 전반적인 전력 상승이란 값진 열매를 맺었다. 무엇보다 슈틸리케 감독이 높게 평가받는 또 다른 근거는 K리그의 젊은 선수들을 발탁해 한국 축구를 살찌운 점이다. 이정협(부산), 이재성(전북), 권창훈(수원), 황의조(성남) 등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젊은 선수들은 슈틸리케 감독 밑에서 한국 축구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시선은 당장 A매치 한 경기에 머물지 않는다. 2018 러시아월드컵 본선을 겨냥하고 있다. 긴 항해를 하다 보면 풍랑을 만날 때도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대표팀 구성원뿐 아니라 한국 축구에 ‘어떤 위기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17경기 무실점이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뚜렷한 성과라면 ‘자신감 회복’은 슈틸리케 감독이 한국 축구에 건넨 ‘보이지 않는’ 선물이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이 11월 12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미얀마와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경기를 했다. 한국이 미얀마에 4-0으로 승리한 뒤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동아DB
2016년 슈틸리케호 항해 일지
내년 시즌 슈틸리케 감독의 ‘타임테이블’은 벌써 나와 있다. 이미 2015년 일정을 마무리했지만, 슈틸리케 감독은 K리그 클래식과 챌린지의 잔여 일정은 물론이고 승강 플레이오프까지 가능한 한 많은 경기를 직접 지켜볼 계획이다. 모두 내년 대표팀의 밑그림을 그리기 위함이다.슈틸리케 감독은 12월 중순 이후 해외파 점검 등을 위해 잠시 유럽에 다녀온 뒤 내년 1월 카타르에서 열리는 2016 아시아축구연맹(AFC) 23세 이하(U-23) 선수권도 현장에서 직접 지켜보며 미래 한국 축구를 이끌어갈 젊은 피들의 기량을 점검할 생각이다.
대표팀은 월드컵 2차 예선 나머지 2경기를 치르기 위해 내년 3월 재소집된다. 3월 24일과 29일 홈에서 각각 레바논, 쿠웨이트와 만난다. 현재까지 확정적으로 잡혀 있는 2016년 A매치 일정은 이 2경기뿐이다. 6전 전승으로 G조 선두를 달리고 있는 한국은 큰 이변이 없는 한 조 1위로 최종예선에 오를 전망이다.
4월에는 2018 러시아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조추첨이 열린다. 12개 팀이 참가하는 최종예선은 8월 29일부터 9월 6일까지 예정돼 있는 A매치 주간에 시작된다. 각 조의 1, 2위 4개 팀이 러시아월드컵 본선에 직행한다. 각 조 3위 팀은 맞대결을 벌이고 여기서 승리한 팀이 오세아니아주 1위 팀과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최종예선은 2차 예선과는 차원이 다른 무대다. 최종예선은 2016년 5경기, 2017년 5경기를 치르는데 내년 9월 2경기, 10월 2경기, 11월 1경기가 예정돼 있다.
슈틸리케 감독은 “올해 치른 A매치 가운데 내 축구 철학에 부합하는 가장 만족스러운 경기는 바로 자메이카전”이라며 “어느 경기보다 수월하게 상대 문전에 접근해 득점 기회를 만들었다. 실점은 물론 이렇다 할 위기도 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8-0 대승으로 끝난 9월 라오스전이 아닌 10월 자메이카전(3-0승)을 ‘넘버원’ 경기로 꼽은 것은 상대 전력도 감안했기 때문이다. 올해 줄곧 아시아권 국가들과 맞붙었던 대표팀은 모처럼 만난 비아시아권 국가인 자메이카를 상대로 월등한 경기력을 과시하며 3-0 완승을 거뒀다.
슈틸리케 감독은 최종예선 시작에 앞서 내년 5월 말부터 시작될 A매치 기간이 한국 축구가 한 단계 더 성장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아시아권 팀들을 상대로 우리 실력을 입증했다. 강한 상대와 경기할 기회가 오면 좋겠다”는 슈틸리케 감독은 “적어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25위 이내 팀과 평가전을 했으면 좋겠다. 네덜란드처럼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16 예선에서 탈락한 팀이나 덴마크, 스코틀랜드 같은 팀과 경기를 해도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슈틸리케 감독은 비록 패하더라도 우리에게 득이 될 수 있는 강팀과 평가전을 갖길 바란다. 아시아 맹주로 끝나는 것이 아닌,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세계 축구 중심으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유럽 등 강국과의 승부를 통해 한 단계 도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